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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을 걱정하는 일은 기우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인공지능이라는 통합적 지성이 조금씩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실리콘 밸리에서 다양한 화제를 몰고 등장한 가정용 로봇들과 아마존, 소니와 같은 유명 유통, 가전 업체들이 내놓은 인공지능 스피커들은 그들이 얼마큼 우리의 사적인 일상에까지 침투하고 있는지 단번에 느끼게 해주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그뿐인가 작년 바둑판 위에서 이세돌과 놀라운 격돌을 보였던 알파고와 미국의 한 퀴즈 게임 쇼에서 모든 인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IBM의 왓슨(Watson)이 보여준 우월한 지적 능력과 학습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과거 산업혁명 시기 급진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기계는 이미 인간의 신체 능력을 초월한 노동력을 부여받은 바 있다. 이후 대량생산에 근거한 물리적 실행력은 기계의 것으로, 창의적 사고(creativity)와 의식(conscious)의 영역은 인간의 전유물처럼 간주되었다. 하지만 이제 단순 연산 능력을 뛰어넘어 자가학습(self-learning) 마저 가능해진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결합으로 인간은 의식 영역마저 도전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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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인공지능의 발전과 개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최근 별세한 스티븐 호킹과 같은 학자들은 강한 자의식을 지닌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하였으며, 일부 제조업에서 진행 중인 생산공정의 자동화, 로봇화 시스템은 이미 산업계 전반에 걸쳐 필수불가결한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연스레 인공지능과 로봇에 인한 급진적인 노동력 대체, 즉 직장에서 인간들이 내쫓기게 될 사태를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 예측이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진행형인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미디어(new media)의 발전과 영향력은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말처럼 사회 기구 모든 곳에 침투되고 포화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디자이너들도 그들의 생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해야 할 시점도 올 것이다. 흔히 말하는 디자인이라는 영역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일부 제한된 기능에 지나지 않지만, 이미 시각디자인 영역에 침투해있는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 플랫폼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만 넣으면 다양한 형식으로 기업의 로고 디자인을 완성해주는 자동 서비스는 초기의 조악했던 성능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특정 알고리즘을 통해 명함이나 광고 리플릿 등 기업의 홍보물을 즉석에서 디자인해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역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작년 콘퍼런스를 통해 공개된 어도비(Adobe) 사의 다양한 인공지능 시각 보정 기술 역시 과연 디자인이라는 직업적 전문성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지 의문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이제 더 이상 특정 프로그램이나 관련된 기술의 습득 능력 보유 여부로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정의와 역량을 평가하는 날은 그리 남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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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미래 디자이너들의 직업적 불확실성이 마치 사진 기술의 등장으로 의해 그 존재적 기로의 의문을 받았던 17세기 화가들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재현적 묘사와 사실적 표현만을 주목적으로 했던 평면회화 미술가들은 은판에 맺힌 대상을 그대로 옮겨 인화하는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1점 소실 법과 원근법에 의지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던 자신들의 작업이 무용해짐을 깨달았다. 그렇게 빛에 대한 분석과 인간이 추상하는 다양한 시점에 대한 구상의 구현을 의식하게 된 미술계는 모네(Monet), 세잔(Cezanne)과 같은 현대 미술의 개척자들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줄곧 산업과 시장에서 교환가치 생성이라는 일원적 목표 지향을 위해 존재했던 디자인계 역시 새로운 지평으로의 진보와 패러다임 확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화가가 아무리 그림을 정밀하게 그릴 수 있어도 사진이 가진 효율성과 복제성을 따라잡을 수 없듯, 디자이너 역시 주관과 불확실성이 포함된 판단력과 분석 능력으로 시장에서 인공지능의 경쟁을 이길 수는 없다. 다행인 것은 디자이너들은 회화와 같이 순수성에의 고민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목적이 분명한 디자인의 특성상 늘 첨단 기술과 뉴미디어에 우호적인 방법론을 산업계와 사회에 먼저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인공지능을 경쟁자로서 보다 동반자로서 공존을 도모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다행히 인지 불행인지 아직 공개되어있는 인공지능 디자인 플랫폼의 상당수는 완성도에 있어 문제를 보이고 있다. 시각물 이면의 내적 가치와 추상적 의미론 전개와는 별개의 정렬된 이미지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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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이 가진 포괄적이고 분석적인 특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그 단점을 극복하는 일이 가까운 미래 디자이너에 대한 역량 평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니즈(needs)의 구체적인 리서치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문화적이며 개인적인 차원의 경험들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경우의 수를 추론해 현실 세계와 유사한 시뮬레이션(simulation)으로 오류를 보완해내는 인공지능에게 부족한 것은 결국 축적된 정보들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 즉 정보로서 독자적 시점으로 구축해내는 일이다.


기존의 디자인직에서 대개 행해졌던 단순 시각화 내지는 상품 구체화 작업은 인공지능의 몫으로 돌아가고 현재 포화에 가까운 디자이너 노동시장은 침체기를 맞겠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구별되는 다른 의미로서의 디자인 영역이 등장할 것이다. 언급했듯, 데이터 수집과 그것을 근거로 보기 좋게 상품을 만드는 일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대신 디자이너 혹은 창작가들은 다층적으로 축적된 데이터들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가로서 이 새로운 직업적 정의에 적절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시각, 건축, 패션, 제품 등과 같은 기존의 산업적 카테고리의 구분도 무의미해진다. 역설적이게도 특정한 분야에서 창작자들에게 요구되었던 특화된 실무 기술 능력과 데이터 분석 능력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고 창작자들은 오직 그들의 개성과 발상을 실현시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수년간의 교육과 실무 습득의 과정은 오히려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 기능적인 구체화 작업을 대신 맞음으로써 배움에 소요되는 시간을 극도로 단축하는 일은 곧 세상 누구나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로 연결된다. 그저 예측일 뿐이지만,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직종은 과거의 전화교환수나 인력거꾼과 같이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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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가진 지적 능력과 활용은 미래 산업과 사회, 개인의 영역 전 분야에 걸쳐 결정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다. 현재 약 150억 달러 규모로 알려진 인공지능 산업은 2020년에는 700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 중이며, MS나 구글 같은 굵직한 IT 전문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2600여 개의 수많은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인공지능 개발에 관련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화성 탐사, 차세대 에너지 자원 개발 같은 놀라운 신기술들과 더불어 인공지능 기술이 4차 산업혁명, 미래 산업의 혁신과 그 성과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기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신기술들의 융복합 과정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예측 불가능한 진화의 과정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종과 의미론 역시 상당한 변혁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디자인이라는 '의식적 행위'는 단순한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성, 환경 등과 같은 복잡하고 난해한 유동적 체계에 동시적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단번에 디자이너의 자리가 인공지능에 전부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 사회와 그 주동력이 될 신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능동적인 선행 학습의 태도는 뉴미디어의 확장으로 인해 나타날 감각의 손실과 재구성의 과정에서 일어날 불균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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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러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나름의 조정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은 대학을 비롯한 교육계와 시장의 흐름의 대번에 읽을 수 있는 디자인에 관련된 매체, 관련 전시, 공모 등의 행사가 될 것이다. 기 본지페(Gui Bonsiepe)가 단언했듯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는 분야는 미래가 없다. 산업계와의 오랜 공생관계로 인해 고착되어온 디자인 교육은 다학제적인 커리큘럼을 통한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 디자인을 다루는 다양한 형태의 매체와 이벤트들도 관망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소비와 경제적 이슈 만이 아닌 기술과 정책 등 관련한 학문 전반에 대해 기민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뿐 아니라 학생들의 다채로운 창작 작업을 독려하는 국제디자인공모전과 같은 플랫폼의 역할은 점차 변화무쌍하게 진화할 디자인계의 담론 성숙의 전초기지로써 더욱 중요하게 역할론은 부여받을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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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문화 전문 집필가

metafaux design 대표,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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