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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실험적인 디자이너라 평가받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녀의 브랜드를 생각하면 반항, 혁신, 펑크 이 세 글자를 떠올릴 수가 있는데요.

이 놀라운  디자이너가 사실은 17살 될 때까지 극장 한번 못 가본 시골뜨기 소녀였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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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 평범한 주부

 

1941년 4월 8일 영국의 공업지대 더비셔(Derbyshire)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장녀로 태어난 비비안 웨스트우드. 예술 서적, 대중매체 등을 접해 보진 못했지만, 교복 스커트를 나만의 스타일로 개조해 입는 등 센스가 남다른 소녀였습니다.

16살에 가족들과 런던으로 이사한 후, 아트 스쿨에 잠시 다니기도 하였지만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서 안정된 길을 선택하기 위해 사범대학에 진학,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21살에 결혼, 평범한 주부의 삶을 걷게 됩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한 남자 : 말콤 맥라렌 (Malcolm McLaren)

 

이토록 평범했던 그녀의 삶은 1965년 말콤 맥라렌을 만나면서 격변하게 됩니다. 중산층의 예술학도였던 맥라렌은 기성문화를 거부하고 섹스와 마약, 로큰롤에 빠져 있던 유명한 반항아였습니다.

비비안은 맥라렌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후, 평범했던 삶을 버리고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들은 비비안이 서른 살이 되던 1971년, 런던 킹스로드에 ‘렛 잇 락(Let It Rock)’이라는 패션 샵을 오픈합니다.

이듬해에 가게명을 ‘살기엔 너무 빠르고 죽기엔 너무 어리다(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로,  1974년에는 ‘SEX’로 변경, 펑크스타일부터 기이한 페티시즘 스타일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녀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맥라렌이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던 록그룹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입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가죽과 체인, 도발적인 메시지의 티셔츠 등은 펑크족들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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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다!

 

페티시즘을 담은 파격적인 펑크스타일을 유행 시켜 ‘펑크의 여왕’으로 불리던 그녀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올려놓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맥라렌과의 결별 후에 열린 1983년 파리 컬렉션에서였습니다.

서구 패션 역사상 처음으로 비대칭 겹쳐 입기를 시도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블라우스 위에 브래지어를 덧입는 란제리 룩, 엉덩이 부분을 부풀린 스커트 미니 크리니(mini-Crini), 거대한 높이의 플랫폼 슈즈 등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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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함에 순수함을 더한 묘한 에로티시즘

 

그녀의 패션은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특히 그녀가 사랑하던 18세기의 패션, 살롱 문화 그리고 장식품들은 그녀의 창조적인 영감의 좋은 재료가 됩니다.

타탄체크, 트위드, 왕관 등의 영국의 전통 패션을 변형하고 재창조해낸 패션은 영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도 거침없이 표현하였습니다. ‘로코코 시대의 고급스러운 고전미와 파격적인 펑크가 조화된 그녀만의 독특한 패션’은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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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거침없는 기행.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패션계의 여왕’, ‘살아있는 국보’로 수십년간 가장 영국적인 디자이너로 사랑받아온 동시에 날카로운 비평과 행동으로 패션계의 ‘마가렛 대처’로 불립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녀의 기행이 과격해진다는 것입니다. 

1992년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기 위해 켄싱턴 궁을 방문했을 때,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속이 비치는 드레스를 입었었고 카메라 플래시 탓에 거의 나체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그녀 나이는 51세.

이듬해에는 26살 연하의 제자와 결혼, 현재까지도 잉꼬부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0대 후반인 현재도 백발을 새빨간 레드로 염색하고 펑크패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패션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아픔이나 불편함도 참아야 한다. 패션에 타협은 없다.”

 

남들과 같은 것을 거부하고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선보여 끊임없이 패션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파격적인 디자이너.

그린피스 대사로도 임명될 만큼 환경운동가로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있는 그녀가 또 어떤 새롭고 기발한 기행을 보여줄 것인지,

 

어떤 그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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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라쿠텐 모바일 마케터 정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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