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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디자인 어워드 특집 연재 ]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디자인씬 혹은 디자인 산업이라는 전문적인 직군의 영역을 이루는 말은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등장한 것으로, 현대성(modernity)이라 일컬어지는 나름의 특성과 양식의 역사는 채 100여 년에 불과하다. 디자인의 시초가 되는 연구와 학문으로서 이해하려는 일 역시 2백 년에 남짓할 뿐이며, 대부분의 경우 독자적인 학문으로서 보다 문화, 역사적인 맥락과 시장 경제와의 관계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만큼 디자인이라는 영역은 초기 그것이 의식되었던 당시부터 경제적 특성과 여타의 기초, 인문적 학문과 깊이 관계해오고 있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게의 경우 시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역사적인 사조, 혹은 운동(movement)의 근간이 되는 ‘시대 정신’ 혹은 ‘거대 담론’에 관해서도 디자인은 예술계와 철학, 건축계 등에 크게 신세를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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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했던 올리비에 모그(Olivier Mourgue)의 의자

 

 

특히 중세 르네상스 이후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큰 파급력을 미친 모더니즘(Modernism), 즉 근대주의의 경우 디자인의 태동과 함께 한 것으로 그것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일이 디자인의 연원을 이해하는 일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근대주의자들은 정치와 사회, 종교, 개인, 예술, 경제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전통적인 구조의 사회와 의식적으로 분절을 선언하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근거로써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물론 후대에서 이러한 ‘의식의 전복과 사회적 개혁’의 시도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줄곧 실패라 규정되고 강력히 비판되었지만, 개인의 주체성 자각과 사회적 규모로 일어났던 계몽주의는 기술의 진보를 근거로 한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도시라는 전에 없던 경관을 완성하며, 개인의 복리후생과 빈곤 구제 등 우리의 일상에 기여했음에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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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보치니의 <States of Mind: Those Who Go>

 

 

이러한 사회적 격변기, 인간이 기계라는 인공의 피조물로서 나름에 지평의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그에 대한 미학의 찬사가 이어지던 시기, 파리를 중심으로 한 미술계는 모방적 회화에서 벗어나 빛에 의해 다르게 감지되는 색채를 표현하는 인상주의와 시점을 분석적으로 해체해 다시 조립하는 입체주의에 주목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현대 미술의 복합적인 영향을 받은 미래파가 1909년 밀라노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기계의 속도감과 장엄함을 그들의 작품에서 전면에 다루고자 했다. 미래파 혹은 미래주의라고 불리던 이들은 그리스 시대부터 미의 결정으로 고전 미술계에서 연구되던 인간의 피부밑에 감춰진 근육과 비례의 아름다움, 자연과 절대자의 심오함에서 발견되던 숭고미에 도전했다. 또한 인간이 온전히 감지하지 못할 섬광 같은 속도와 ‘새로운 세계’를 지배하는 기계라는 창조된 장엄한 존재의 힘과 강력함에 대한 찬사를 마지않으며, 기계의 각축장이 된 ‘미래적’ 일상을 이상으로 여기고 전쟁을 불필요한 전통을 파괴하고 순수, 자유로 돌아갈 수 있는 의식(ceremony)으로서 생각했다. 그러나,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고, 전쟁의 실상은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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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덤 루이스의 <The Crowd>

 

 

독일의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와 같은 많은 현대 미술 기틀에 중요한 축을 맞았던 젊은 미술가들이 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잃었고, 피카소와 입체주의를 선도하던 영국의 조르지오 브라케(George Braque) 같은 작가들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미래파를 이끈 장본인이었던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역시 전쟁터에서 비명횡사하며 역설적이게도 미래파는 전쟁 속에 사라진다. 전쟁의 상흔은 기계주의를 찬미하던 인류에게 상실과 쓰라린 교훈만을 남겼다 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계의 관점에서 전쟁은 오히려 다시금 기계의 우월함과 힘을 과시하고 기술을 축적하는 기회가 되었다. 전쟁의 화포 속에 미래파 주의자들은 사라졌지만, 영국에서는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를 통해 여전히 기술과 기계의 힘, 속도, 파괴성을 영감으로 하는 미술, 이른바 블라스트(Blast) 혹은 소용돌이파(Vorticists)가 등장했다. 디자인계 역시 전쟁에서 얻은 막대한 산업 생산력과 다양한 엔지니어링 기술을 바탕으로 국제 시장 경제와 공리성을 추구하는 사회 개혁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평면 회화에서 주로 이뤄지던 기계와 공장들에 의해 재편되는 도시의 풍경과 기계주의의 찬미는 점차 일상품 속에서도 디자인으로 표현되기 시작하며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했다.

 

냉정히 보자면 이는 미래파가 의식하던 기계에 대한 미학 탐닉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인류는 과거 만물의 인과관계에 위치한 절대자의 일원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창조해낸 기계와 그것이 생산하는 가치 체계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양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미국은 유럽의 기계주의적 미론에서 영향을 받은 아르데코가 산업, 건축, 디자인 전반에 걸쳐 꽃을 피웠고, 193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스트림라인 운동(stream line movement)이라 불리는 과학적 신화(myth)를 추종하는 독자적 디자인 운동마저 등장한다. 떨어지는 물방울의 형상을 의식해 탄생한 스트림라인이라는 조형 개념은 당대 미시적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찰이 부족했던 디자인계의 단면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실 자유낙하하는 물방울은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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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과거의 미래주의 형식에서 벗어나 보다 정제되고 단순화된 디자인 형식을 발견하는데 일조한 스트림라인 운동은 전화나 시계, 라디오, 자동차, 가구, 가전용품에 이를 것 없이 모든 소비재 디자인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우수한 엔진과 무기 생산을 위해 시도되었던 공기역학(aerodynamic)의 연구가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의 최대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은 또 다른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유려한 곡선을 한 일상 제품과 자동차, 거대한 기차의 모습은 당시 주목받았던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나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 같은 당대의 미국 디자이너들의 작업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후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 같은 독일 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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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다소 경직되어 보였던 아르데코적 기계주의 형식을 지나 새롭게 등장한 스트림라인이라는 과학 맹신적 양식은 미국 소비주의 시장에 철저히 헌신한다. 동시에 당시 미국에 등장하기 시작한 유럽의 이민 귀족층과 신흥 경제 세력을 이르는 유한 계급(leisure class)은 이러한 현대적인 시장의 흐름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쟝 보르디야르가 그의 저서에서 ‘소비의 사회’에서 언급하듯 이들은 전통적인 고가구와 가문의 내력으로서 전해지던 건축과 유산을 처분하는 대신 새로운 현대적인 소비를 추구함으로 자신들의 위세를 돋보이게 했는데, 이것이 소위 상류 계층의 소비 성향이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이후 부르쥬아라는 이념적 단일 계층의 취향 형성에도 상당 부분 작용하게 된다. 굳이 기능이 다르지 않고 성능이 우수하지 않아도 외형적 형태의 변화만으로 시장의 소비는 지속되었으며, 이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실체 없는 이상향과 문화적 신화론(mythology)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어 갔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과거에 유행했던 양식이 다시금 복기 된다는 사실인데, 이러한 문화적 회귀, 재현 현상은 경제적인 논리 이면에도 개인의 수집(Collection)에 대한 욕구와 과거의 향수(Nostalgia), 문화적 진본(Authenticity)에 대한 신화론을 근거로 한다. 최근에는 복합적이고 파편화된 시장 체계와 소비자들의 취향을 다루는 수많은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의도된 마케팅으로써 이용되기도 하며, 단순한 피상적인 스타일의 재해석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례로 80년대 국제 디자인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던 멤피스 디자인(Memphis design movement)의 패턴과 유사한 느낌의 패키지 디자인이 재조명받고, 북유럽 특유의 가구 디자인이 거의 매년 회자 되는 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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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미래주의의 영향도 다분화 된 최근의 디자인 경향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련되고 우람한 금속질의 근육을 뽐내는 슈퍼카의 외형뿐 아니라, 거대한 팔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장의 로봇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드론들의 군집, 운전자 없이도 자율 운행으로 움직이는 고속 도로의 전경에서도 미래주의는 발견된다. 심지어 인간의 모습과 점차 닮아가며 인간성의 유효와 존재적 의문을 더해가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존재는 그야말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가 가진 우월성을 근거로 일상을 재편하려던 미래파가 꿈꾸던 것 그대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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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며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학장이기도 한 샘 제이콥(Sam Jacob)는 흔히 말하는 ‘미래주의 디자인’이라는 것은 이미 7, 80년대에 사라진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당시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던 가구와 패션 등 다양한 실험적인 미래 스타일의 디자인들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이 되었으며, 기술의 진보와 문화적 확장은 과거의 모든 것을 옛것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시대적 운동의 중요점은 그 형식만이 아니라 내면의 정신이다. 그런 면에서 퓨처리즘은 모더니즘의 너머 기술, 문화와의 궁극적인 융복합을 이루고자 하는 현대 디자인계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이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인류가 기계를 대하는 의식으로서 또한 미래라는 불분명한 시제적 문화의 특수를 이해하기 위한 기점으로서 다시금 회자 될 것으로 보인다.

 

 

[ 본 기고는 K-디자인 어워드를 준비하는 디자이너가 좀 더 깊이 있는 디자인 컨셉을 구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에 관련한 전반적인 담론을 시리즈 형식으로 진행하는 기획연재입니다. 기술, 환경, 문화를 3가지 대주제로 한주씩 관련된 소식이나, 전문적인 담론을 쉽게 풀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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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문화 전문 집필가

metafaux design 대표,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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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장 카림라시드 /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