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 보스턴의 샤크닌자(SharkNinja)에서 제품디자인부 시니어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이규섭입니다. 샤크닌자는 미국의 대표 가전회사 중 하나로써 가전제품 및 주방용품 분야에서 혁신적인 제품들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저는 2011년 Pratt Institute에서 제품디자인 전공 후 십여 년간 뉴욕과 보스턴에 위치한 Consumer product 회사들에서 제품디자이너로 일해왔습니다. 헤드폰, 이어폰, 스피커, 충전기, 헤어드라이어, 청소기 등 생활 속에서 사용하게 되는 실용적 상품들을 디자인해 왔고, 그 제품들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마켓에 출시되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중소기업진흥원 USA에서 진행했던 청년창업지원 프로그램에 멘토 및 세미나 강사로 초청되어 창업자들을 위한 교육지원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 Lemonade Story를 설립하여 미국의 세일즈 랩 파트너와 함께 한국 중소기업들의 제품들을 미국 마켓에 출시하도록 연결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들려주세요!
삶을 디자인하다. 36살, 꽤 늦은 나이에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41살에 디자인학교를 졸업 후, 현재 성공적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많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죠. 이 과정에서 제가 얻은 교훈은 제품 디자인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작품을 디자인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기에 큰 보람과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디자인 스쿨 졸업 후 1년간이었습니다. 몇 군데의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컨트랙으로 일하면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죠. 150여 곳의 디자이너 포지션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져서 제대로 된 풀타임 직업을 갖지 못했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할 정도로 막막한 생활이 이어졌어요. 그렇지만 끊임없이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취업 준비를 했고, 풀타임 잡을 가진 후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막막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주니어 디자이너와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삶을 내버려 두지 말고, 혁신적이고 참신하게 미래를 디자인해 보라"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참으로 멋지고 행복한 일입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은 무엇인가요?
샤크닌자가 추구하는 디자인/제품 개발 방향은 사용자 중심 개발입니다. 제품의 기능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테스트를 반복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 부분은 굉장한 도전을 받게 되죠. 가장 실용적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의 적절한 경계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저 무난한 디자인이라 평가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샤크닌자의 제품 개발 과정은 다른 생활가전 용품회사들과 동일합니다. 1. 제품을 디자인하기 전, PD로부터 제품의 정의, 가치, 포지셔닝, 상품성, 필수기능 등에 대한 정보를 받습니다. 2. 디자인 리서치, 마켓리서치 등을 거쳐 초기 디자인 컨셉을 만듭니다. 3. 엔지니어링 팀의 기능적 구조 위에 선택된 컨셉을 적용합니다. 4. 엔지니어들과 협업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5. 프로토타입 모델을 만들고 테스트 과정을 통해 해결점을 발견합니다. 1~5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대량생산을 위한 디자인과 구조를 완성해 갑니다. 6. 금형을 만들고 대량생산 전까지 여러 차례의 샘플을 리뷰하면서, 판매를 위한 제품의 퀄리티를 높입니다. 또한 저는 그 속에서 “깊이를 더하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프로젝트에 따라서 요구되는 디자인이 달라지지만, 저만의 스타일대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스타일이든 그 디자인에 깊이를 더하려고 노력합니다. 디자인의 깊이는 디테일이나 디자인적 요소들의 조화에서 나오게 되죠.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요?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먼저 BMW 최초의 미국인 Chief of design이었던 Chris Bangle입니다.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의 이야기가, 늦은 나이에 디자이너로 도전한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한 때 감리교 목사를 꿈꾸며 위스콘신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는데, 뒤늦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자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아트센터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디자이너의 삶을 살게 되었죠. 저도 감리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다녔던 터라 그의 이색적인 이야기가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Chris Bangle은 BMW에서 그의 삶만큼이나 혁신적인 디자인을 주도하며 기업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전통적인 BMW 디자인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수립하고 도전하면서, 수많은 자동차 전문 에디터들에게 큰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 BMW 자동차 역대 판매량을 갱신하면서, 질타했던 전문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린 일화는 아주 유명하죠.
Chris Bangle의 삶이 저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이끌었다면, 디자인 역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디자이너는 Pratt Institute의 교수인 Linda Celentano 입니다. 3D Sculpture / Form Study 수업을 통해서 디자인 요소들의 관계, 서페이스의 심미성 등을 심도 있게 배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래전 그의 스승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전통을 계승 받았고, 수십 년간 제자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아름다움을 분석하라”, “디자이너는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은 현업에서 일하는 현재까지도 매일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입니다.
10년 뒤, 디자인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요?
제품 디자인 영역에서는 지금처럼 획일화된 대량생산 제품이 여전히 대세를 이룰 것이지만, 반면에 퍼스널 커스터마이징 제품 시장이 더 활성화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현재 온라인으로 신발을 주문할 경우 각 부분의 색이나 그래픽 등을 선택해서 나만의 신발을 디자인할 수 있는데, 10년 뒤에는 이것이 다른 제품 분야에서도 요구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Convergence 즉, 기기 간의 연결성, 연동 기능이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통합 기능을 가진 하나의 기기를 선호하기보다는 각각의 특별한 기능을 가진 기기 간의 연결성이 지금보다 더 요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 번째는 Virtual, Digital 화로 인해 물리적인 제품의 디자인은 점점 심플해질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제품 디자이너들에게는 심플함 가운데 디자인의 깊이를 더하는 역량이 요구되겠죠. 이런 변화에서 저는 디자인의 스타일에 상관없이 디자인의 깊이를 더하는 능력을 계속해서 키울 것입니다. 어떤 스타일이 되었든 그 스타일의 디자인을 수행할 때 디자인의 깊이를 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본인만의 신념과 앞으로의 비전
적절함. 혁신적이거나 독창적이란 표현이 디자이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일 텐데 저는 오히려 적당한, 적절한이라는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무난한 디자인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수의 사람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가 유니크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꿈이 있다면,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