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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당스 조중현 대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작업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가치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브랜드·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네이버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IT 프롭테크 기업에서 CDO를 거쳤습니다. 또한 D.CAMP(은행권청년창업재단/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서 디자인 자문을 맡아 초기·성장 단계 팀의 브랜드 문제를 진단하고 실행 로드맵을 돕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듀당스(DeuDance)를 만들어 여러 IT기업의 리브랜딩과 브랜딩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디자인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당위성(Why)’을 만드는 일입니다. 협업을 많이 했다는 서술보다, 왜 이런 형태·언어가 비즈니스에 유효한지를 논리와 데이터, 쓰기(writing)로 증명합니다. 그 위에서 “서로 돕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본값으로 두고, 시각 언어를 작동하는 도구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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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종종 ‘한국적’이라는 평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적’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것이 본인의 스타일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입니다. 유학 배경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해외에서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 시선 속에서 제 작업의 ‘한국성’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한국적 디자인의 핵심은 속도·혼종성(일명 ‘짬뽕 문화’)·과밀한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읽히는 복잡성(legible complexity)이라 생각합니다. 빠른 생활 리듬에서 오는 과감한 정보 배치, 높고 촘촘한 색/질감의 레이어링, 그리고 실용주의적 결단이 한국적 정서의 골격을 이룹니다. 저 역시 대담한 대비–높은 밀도–엄격하지 않은 위계를 기본 문법으로 삼아, 복잡하지만 읽히는 구조를 설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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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은 외부 문화를 빠르게 수용하면서도 재해석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식 재해석’이 본인의 작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씀해 주세요.

 

제 세대 디자이너는 인터넷의 발달로 해외와 실시간 비교·학습이 가능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저 또한 포스터 작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국제적 눈높이를 의식하게 됐고, 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정보·형의 밀도(density)를 올리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밀도를 무작정 높이진 않습니다. 맥락에서 당위 있는 단어나 문장(writing)으로 주제·톤·메시지를 먼저 고정하고, 그래픽 에센스(오브젝트)는 제 삶과 주변 작업실의 사물, 자전적 경험 혹은 한국의 하위문화(간판, 일상적 기표, 일회용 라이터 같은 도시 사물)에서 끌어와 배치합니다. 저는 전통 문양만을 한국성이라 보지 않습니다. 오늘의 도시에서 체감되는 기표들, 그리고 한글·영문의 적극적 혼용 자체가 동시대의 한국성을 더 정확히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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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워크샵을 참여하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나 차이점을 느끼신 경험이 궁금합니다.

 

 

국내 디자이너들과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 그룹 WKSP을 결성해 주도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초청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그중 러시아 모스크바의 미술대학, 대만 곤산과학기술대학 초청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러시아는 구성적 조형감과 대담한 색의 대비, 대만은 드로잉·오프라인 공정의 비중이 높았고, 한국은 비교적 디지털 내에서 완결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포스터 디자인 워크숍에선 낯선 한글의 조형을 각자 포스터로 재해석하도록 미션을 부여했는데, 러시아 참가자들은 기하·그리드 기반의 단단한 조형, 대만 참가자들은 스크립트적 흐름이나 드로잉을 통해 한글을 받아들였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일부 결과물에서 안상수 선생님의 ‘탈네모틀’ 실험이 상기되는 조형적 태도(네모틀을 깨고 글자 구조 자체를 실험하려는 시도)와, 박우혁 선생님의 '시'같은 조판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는 것입니다. 즉, 지역 고유의 미감이 처음 접한 한글 조형에도 구조적 실험과 레이어링으로 전이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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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작업에서 한글과 한자, 기호(예: 등록상표 기호 ®)를 결합한 타이포그래피 실험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시도가 시작된 배경과,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글자를 정보의 최전선으로 끌어올리는 디자이너입니다. 메시지의 ‘핵심 서사’를 먼저 쓰기로 고정하고(문장 → 그리드/행간/자간으로 변환), 그다음에 그래픽을 얹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자 체계(한글·한자·라틴)와 기호(®™, →, №, (), [] 등)를 물성처럼 다루되, 읽기 경로와 위계는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이 태도는 “문자를 전면으로 세우고, 정보 구조를 후행한다”는 원칙과 같습니다. 왜 기호까지 적극적으로 쓰는가?는 기호는 형태(조형)일 뿐 아니라 신뢰의 신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신규 아이덴티티라도 ®·™ 같은 ‘제도적 언어’를 적소에 배치하면 운영 규범이 갖춰진 브랜드라는 인지를 빠르게 심을 수 있습니다. 저는 기호를 장식이 아니라 네비게이션 언어로 취급합니다. 화살표·번호·괄호는 정보의 길 찾기를 돕는 작은 UI가 되고, 문자 혼용의 복잡도는 위계·리듬·공간(여백)으로 정리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보여주기용 혼잡’뿐만이 아니라 읽히는 복잡성(legible complexity)을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관객은 혼합된 문자·기호의 층위를 순서대로 해독하며, 그 과정에서 브랜드의 논리를 체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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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에서 한글 사용이 시각적·문화적으로 갖는 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타트업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에서 한글 로고로의 전환이 매출·투자 등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에 대해 설명 부탁 드립니다.

 

한글의 모아쓰기 구조는 형태적 독자성과 문화적 공명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초·성장기 스타트업은 제한된 리소스로 즉시 인식과 회상(Top-of-Mind과 같은 인지 경로)을 뽑아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여러 프로젝트에서 워드마크의 한글화를 우선 검토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1. 발음-인지의 단순화: 영문 표기가 ‘한국어로 읽히길 원하는 이름’일 때 오독·오해(브랜드 명칭의 발음 난수화)가 자주 발생합니다. 한글 워드마크는 그 장벽을 제거합니다.

 

2. 상단 퍼널의 정리: 검색·직접 유입에서 브랜드명 일치율이 올라가고, SNS에서의 해시태그·멘션 표기가 한 방향으로 수렴됩니다.

 

3. 조직적 합의의 형성: 내부 커뮤니케이션에서 브랜드 언어의 기준선(사운드·스펠링·적용 규칙)이 빠르게 확정됩니다.

 

실제 ‘탈잉’은 한때 영문 ‘Taling’을 전면에 뒀지만, 발음 인지의 혼선(탈링/톨링/털링 등) 때문에 한글 로고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그 배경과 전략은 공개 자료에서도 확인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전환은 브랜드 인지뿐 아니라 자본의 투자 관점에도 긍정 효과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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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철학 속에서 ‘무경계’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문화·언어·디자인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실제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무경계’는 문화·언어·형식의 경계를 넘나들되 정보의 질서를 잃지 않는 상태입니다. 한국적 혼종성(짬뽕 문화)을 강점으로 삼아 외부에 활짝 열리면서도 뿌리를 놓치지 않는 태도이고, 저는 디자인을 그런 문화의 축소판으로 다룹니다. 실천적으로는 다국어·다기호 시스템과 실험 매체, 디지털과 물리 환경을 하나로 읽히게 묶는 일에 가깝습니다. 핵심은 섞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섞어도 한 번에 읽히게 만드는 규칙을 세우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브랜드마다, 그리고 각 프로젝트(포스터 등)마다 ‘운영체계’를 별도로 설계합니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무질서해 보여도 읽힘과 판단을 보장하는 규칙(타이포그래피 스켈레톤, 문자·기호의 계층, 리듬·밀도의 수치화)을 먼저 확립하고, 작업의 성격에 맞게 변주하며 브랜딩합니다. 한마디로, 무질서를 허용하되 읽힘의 질서를 선행하는 것.. 제가 말하는 ‘읽히는 복잡성’의 운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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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중현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아시아 디자인 레거시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시아 디자인의 레거시는 번역과 혼종의 미학입니다. 서로 다른 문자·기호·기술을 흡수·개조·재배열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능력이고, 저는 이를 빠른 리듬과 높은 밀도로 전개해 온 경험을 ‘읽히는 복잡성’으로 체계화하고자 합니다. 중요한 것은 차용이 아니라 상호운용·상호성에 기반한 대등한 교류이며, 무엇보다 이 교류가 특정 계층·그룹에 의해 독점되지 않도록 계층을 구분하지 않는 개방형 구조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글·라틴·한자의 가변 폰트/멀티스크립트 그리드 같은 문자 상호운용성 연구를 이어가고, 도시의 간판·표지·생활 기표를 기록해 운영 가능한 디자인 규칙으로 전환하며, 로컬 리서치의 언어를 재료로 다루는 타이포–브랜딩–시스템등을 교류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에디터 이용혁

Archive. Design. Es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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