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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Anuthin Wongsunkakon

Cofounder of Cadson Demak

 

 

 

"태국 방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Cadson Demak은 태국 타이포그래피의 현대화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다. 2002년 설립 이후 커스텀 폰트 개발, 타이포그래피 교육, 디지털 미디어 실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으며, 특히 태국 문자체의 시각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Cadson Demak의 공동설립자 아누틴 웡순가콘(Anuthin Wongsunkakon) 디렉터를 통해, 문자 디자인을 넘어 문화와 맥락을 설계하는 스튜디오의 태도와 철학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전통을 단순히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어온 Cadson Demak의 여정은 서로 다른 지역성과 언어를 지닌 아시아 디자이너들이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시각적 기준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

 

 

 


 

 

 

Cadson Demak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스튜디오의 비전, 배경, 디자인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Cadson Demak이 태국 및 아시아 디자인 맥락에서 가지는 고유한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이름 ‘Cadson Demak’은 재미있는 일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원래는 한 클라이언트의 홈 데코 스토어 이름을 브레인스토밍하던 중 탄생한 후보 중 하나였는데, 그들이 선택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그 이름을 너무 마음에 들어해 스스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Cadson Demak’은 태국어로 ‘최고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이는 매우 큰 약속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기대감이 매일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탁월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상기이자, 우리 자신과의 약속이죠. 이 다짐은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태국 타이포그래피를 다시 흥미롭고 매력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대중에게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인식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30년 전만 해도 태국어 서체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드물었고,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피 실험은 영어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잡지 레이아웃에서도 태국어 폰트를 24~32pt 이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당시 태국어 서체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고, 이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서체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아트 디렉션에 딱 맞는 ‘재료’를 스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 전체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가 서체를 직접 디자인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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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son Demak은 언제 설립되었으며,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Cadson Demak의 공식 설립은 2002년이지만, 그 창작 여정은 훨씬 이전부터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매체에 국한되지 않는 스튜디오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처음에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출발했으며, 곧바로 타이프 디자인 영역까지 확장하며 태국 최초의 디지털 폰트 파운드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당시 디자인 생태계의 혼란과 인프라 부재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체계적인 타이포그래피 교육도, 전문적인 작업 환경도 부족했던 시절이었지만, 다행히도 초기부터 신뢰를 보내준 클라이언트들의 지지 덕분에 실험과 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대를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태도는 지금도 Cadson Demak의 핵심 가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족함을 결핍으로 보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이 스튜디오를 움직이는 철학의 기반이 되어왔습니다. 교육이 부족하면 콘텐츠를 만들고, 강연은 글이 되어 책으로, 책은 다시 팟캐스트로 확장되는 방식. 말 그대로 ‘길이 없으면 스스로 만든다’는 정신이 Cadson Demak의 창작 기반을 이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커스텀 폰트의 힘을 사회적으로 다시 조명하려는 시도도 이어졌습니다. 단지 폰트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브랜드와 미디어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는 점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증명해낸 것입니다. 최근에는 서체 디자인을 넘어,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이 결합된 실험 영화까지 제작하면서 크리에이티브의 경계를 넓히고 있습니다. 형태가 무엇이든, 모든 프로젝트에 진정성과 명확한 목적을 담아내는 것이 Cadson Demak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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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Cadson Demak이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활동은 무엇인가요? 상업적 의뢰에서부터 문화적 또는 교육적 프로젝트까지, 최근 진행 중인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최근 저희가 가장 크게 집중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동남아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서체 시스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실 이건 그동안 Cadson Demak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방향의 연장선이라고 보셔도 좋아요. 태국에서 디지털 타입 디자인의 기반을 다지던 초창기부터 시작해, 지금은 이 지역 전체의 타이포그래피 인프라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죠. 10년 넘게 저희가 운영해온 BITS라는 타이프 디자인 컨퍼런스를 통해 지역 전반의 과제도 많이 보게 되었어요. 대표적인 게 서체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리고 아예 독립적인 서체 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수 문자 기반의 서체 개발이 굉장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브랜딩이나 디자인 업계에서는 분명히 필요로 하고 있고요.

 

지금 저희가 하려는 건, 이 문제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다뤄보자는 겁니다. 동남아 주요 문자들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고품질 서체 패밀리가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커스텀 서체를 직접 의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브랜드를 차별화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쓸 만한 서체 자체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도 많고요. 요즘은 많은 브랜드들이 Noto 같은 범용 서체에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그 자체가 이 분야에 개선의 여지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Cadson Demak은 그 공백을 메우는 방향으로 발을 넓히고 있어요. 이건 단순히 어떤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이 지역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반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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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클라이언트나 기억에 남는 협업 사례를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태국이든 해외든, 특별히 인상 깊었던 파트너십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Cadson Demak이 초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몇몇 주요 기관들로부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신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태국 최대 통신사 AIS와의 협업은 저희에게도, 또 태국 타이포그래피 업계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어요. 그 당시에 대부분의 경쟁사는 색상이나 그래픽 요소만으로 브랜드를 구분 짓고 있었는데, AIS는 서체를 통해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고, 이게 대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계기로, 많은 기업들이 “아, 커스텀 폰트도 강력한 브랜드 전략이 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죠. 이후에는 Vogue Thailand, GQ Thailand, Wallpaper* 등 유명 잡지들과의 협업이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는 인쇄 매체가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과도기였는데, 저희는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의 미감과 현대 디자인 요구 사이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Cadson Demak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브랜드의 얼굴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복잡한 타이포그래피 인프라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일로 확장됐죠. 지금은 단순히 예쁜 서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고객의 투자에 대한 실질적인 효과와 성과를 보장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특정 매체에만 최적화된 폰트가 아니라, 인쇄물부터 모바일 플랫폼, 디지털 운영 환경까지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죠. 이런 흐름 속에서 Bangkok Bank, Krungthai Bank, Kasikornbank 등 태국의 주요 금융기관들과도 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모바일 뱅킹이나 주식 거래 플랫폼처럼 기술적으로 복잡한 환경 속에서 서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굉장히 실무적인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고 있죠. 뿐만 아니라 Google, YouTube, Apple, Microsoft, Grab, LINE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도 다양한 캠페인 및 서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저희가 꾸준히 목표로 삼는 건 단순합니다. 태국 사용자들이 더 신뢰할 수 있고 더 안정적인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게 Cadson Demak이 서체를 통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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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볼 때, 태국 문자체의 주요 타이포그래피 또는 시각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글, 한자, 중국 문자 등 아시아의 다른 문자들과 비교했을 때, 태국 타이포그래피만의 독창성은 어떤 점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태국 타이포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프로젝트에 어떤 분류의 서체가 필요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바로 루프드(Looped) 스타일과 루플리스(Loopless) 스타일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며, 종종 서로 다른 사용자 층과 소통하게 됩니다. 루프드 스타일은 둥근 ‘머리’를 특징으로 하며, 전통적이고 이상화된 형태로 간주됩니다. 외국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았을 때, ‘아, 이건 태국 문자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시각적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그 곡선과 구불구불한 획들은 오랫동안 태국 시각문화의 일부로 자리해왔기 때문에 이를 ‘전통적’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반면 루플리스 스타일은 이 머리 부분을 제거하고 단순화한 형태로, 오늘날에는 대중 공간이나 공공 간판 등에서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스타일은 현대적인 발전이나 영향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죠. 물론 여기에 ‘라틴화(Latinization)’가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긴 논쟁이 이어지고 있고, 매우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개인적인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문자 형태는 늘 쓰기 도구, 속도, 편의성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루프드가 늘 ‘고리타분한 전통’, 루플리스가 언제나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시선입니다. 실제로 루프드 서체도 좋은 디자인과 정제된 조형을 갖추면 매우 현대적이고 우아한 인상을 줄 수 있고, 루플리스라도 조악하게 설계되면 싸보이고 낡은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조합에 있어서도 간단한 규칙을 하나 소개하자면, 루프드 서체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라틴 서체 모두와 조합이 가능합니다. 반면 루플리스는 세리프 라틴 서체와는 시각적으로 부조화가 커서 조합이 어렵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충돌을 노리는 디자인이라면 또 다를 수 있겠지만요. 일반적으로는 루플리스 서체는 산세리프와만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조합 원칙은 ‘루프드 = 세리프, 루플리스 = 산세리프’라는 단순화된 오해를 바로잡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루프의 유무가 아니라 전체 디자인의 완성도입니다. 프로젝트의 성격과 대상에 따라 어떤 서체가 최적의 선택인지 판단해야 하고, 바로 그런 판단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현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입니다. 요즘 들어 루프드와 루플리스 스타일을 모두 지원하는 서체 패밀리에 대한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사용자들이 이제는 두 스타일 모두 나름의 목적과 중요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서로 다른 서체 패밀리를 억지로 조합하려 애쓰지 않아도, 하나의 패밀리 안에서 자연스럽고 균형 있는 조합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흐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태국어가 외국인에게 어려운 언어인 이유 중 하나는 문장 내에 단어 사이 공백이 없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연속된 글줄 속에서 단어 단위를 머릿속으로 구분해내야 하고, 이건 디스플레이 타이포그래피나 ‘타입 플레이’ 작업 시에 흐름을 끊거나 단어의 순서를 시각적으로 왜곡할 가능성도 높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슈입니다. 또한 자모와 성조 부호들이 위아래로 겹쳐 쌓이는 구조 때문에, 줄 간격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전체 가독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처럼 태국어는 문장 끝에만 띄어쓰기를 하기 때문에, 한글이나 영어처럼 규칙적인 자간 공식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수작업으로, 페이지 전체의 ‘공기감’을 시각적으로 균형 있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제는 라오 문자나 크메르 문자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태국어가 이들과 유사한 타이포그래피 역사와 구조를 공유하기 때문에 이 도전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죠. 저는 오히려 이 점이 큰 기회라고 봅니다. 서로 유사한 문자 체계를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이 경험을 공유하고, 솔루션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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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시각 언어는 Cadson Demak의 디자인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Cadson Demak의 디자인 접근 방식이 태국의 더 넓은 문화·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반영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태국의 문화 정체성과 시각 언어를 무언가를 단순히 ‘읽는’ 항목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튜디오의 결과물 자체가 이미 그 문화적 힘의 정수이자 자연스러운 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요소를 문자 그대로 끼워 넣는 방식은 저희가 지양하는 접근입니다. 대신 Cadson Demak은 문화를 현재진행형으로 해석하고 여과해내는 필터 같은 존재로 작동하길 바랍니다. 현대 디자인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오래된 요소들을 새로운 형태에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동하는 시각 언어를 포용하는 일입니다. 대중문화도 그 중요한 일부입니다. 어떤 시각 언어가 진정한 문화 정체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하고, 이 반복은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동시대의 창작 안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때로는 과거를 다시 참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미학을 단순히 복제해 현재에 옮겨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도전은 잘 설계된 전통의 원리를 오늘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있습니다. 디자인이 빠르게 동질화되고 전 세계적으로 유사해지는 흐름 속에서, 저희는 언어와 문자가야말로 로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색이나 이미지 스타일 같은 요소들도 물론 지역성을 담을 수 있지만, 서체 디자인은 그보다 더 뚜렷하고 지속적인 정체성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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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dson Demak을 대표하는 프로젝트를 하나 소개해 주세요. 그 프로젝트의 개념, 디자인 접근 방식, 그리고 태국 디자인 환경 또는 글로벌 담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예시로 Thonglor 서체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디지털 스크린 환경에서의 가독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시작된 작업입니다. 초기 설계 브리프 단계에서부터 ‘읽기 편한 화면용 타이포그래피’를 목표로 삼았고, 그에 따라 루프드(머리 모양이 있는) 타이 문자의 구조를 보다 컴팩트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를 위해 글자 내부의 여백을 넓혀 시각적으로 더 열린 구조를 만들었고, 이 결정은 이후 다양한 굵기와 스타일 확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 태국 학생들의 필기체에서 자주 나타나는 ‘큰 머리 루프’ 비율을 분석하여 현대적인 타이 필기 구조에 기반해 글자의 비례를 정교하게 조정했습니다. 루프의 크기와 줄기의 굵기 증가를 정밀하게 조율하면서, 다양한 굵기의 확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초기 버전은 현대 타이 루프드 서체의 굵기 체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테스트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이 서체의 출시는 사용자들에게 타이 루프드가 단지 Light, Regular, Bold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였습니다.

 

비례에 있어서도 실험이 있었습니다. 인쇄 기술의 발달과 함께 얇고 길쭉한 형태가 주류가 되었던 이전의 표준 비례 대신, 전통적인 비문(碑文)에서 볼 수 있었던 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례를 되살렸습니다. 이는 다른 언어와의 혼합 사용 시에도 조화롭게 작동하며, 가독성과 레이아웃 안정성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Thonglor는 단순히 읽기 좋은 서체일 뿐 아니라, 사용자 경험 전체를 고려한 설계로 완성되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글자를 욱여넣지 않고 여유롭게 구성함으로써, 처음에는 조금 느리게 읽히는 듯해도 결국 독자는 되돌아 읽을 필요 없이 더 빠르게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루프드 서체가 본문에만 국한되지 않고, 헤드라인이나 제목에서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기존에는 헤드라인에는 루플리스, 본문에는 루프드라는 경향이 강했지만, Thonglor는 이 관행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현재 Thonglor는 다양한 용도에 대응할 수 있는 대규모 서체 패밀리로 자리 잡았으며,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을 위해 약간 축약된 버전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요구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가변 폰트(variable font) 기술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Cadson Demak은 국제적인 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아 디자인 커뮤니티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각국과의 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시아 디자인 커뮤니티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와 함께 창작의 여정을 나누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초대일 겁니다. Cadson Demak은 타이포그래피에 뿌리를 두고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 경계를 넘어 실험 영화나 음악 제작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도 활동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탐색을 통해 우리가 가장 크게 배운 건 이것이에요. 인프라는 미리 갖춰진 무언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실행하면서 동시에 생겨나는 거라는 점이죠.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만 갇혀 있으면 오히려 그 가능성을 놓치게 돼요. 자기 비전을 직접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프라 구축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디지털 폰트라는 아직 젊은 산업 안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굉장히 협력적이고 따뜻한 편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왜 타이포그래피가 중요한지”를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공통된 고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 일을 빠르게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앞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계속 유지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시아 디자인 커뮤니티 간의 협업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연결고리는 자립성과 유연함이라고 봅니다. 협업이라는 단어는 자주 들리지만, 실질적인 협업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는 생각보다 부족하죠. 협업이 좋은 아이디어인 건 분명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협업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협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예요. 진정한 크로스보더 협업을 위해선 신뢰와 신용이 필수이고, 특히 지역적 맥락에 대해서는 그 지역 디자이너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파트너와 협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협업이 잘 작동하려면, 서로의 가치관이나 일하는 방식이 맞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모든 디자인 프로젝트는 명확한 목적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 상업적인 프로젝트든, 순수 디자인 탐구든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클라이언트가 단순히 특정 작업만을 요청했다면, 우리는 언제든 더 빠르고 저렴한 대체자로 쉽게 교체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단순한 외주 업체를 넘어 ‘브랜드의 파트너’가 되려 합니다. 브랜드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이 일치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가치가 생기니까요. 디자인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인프라가 갖춰지길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주 말하듯, 길이 없다면 그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만든 길들이 언젠가 만나 연결되는 게 바로 협업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함께 도로망을 짜는 것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을까요?

 

 

 


 

 

 

에디터 이용혁

Archive. Design. Essence.

  • Founder: Do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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