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의 피트니스 섹터를 발칵 뒤집어 놓은 메가딜이 성사되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계열의 글로벌 사모펀드 ‘L 카테톤’이‘하이록스(HYROX)’의 지분을 전격 인수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거래의 실질적 구조다. 대형 사모펀드가 브랜드를 일방적으로 집어삼킨 그림이 아니다. 2022년부터 60% 지분을 쥐고 있던 기존 모기업 다롄완다그룹(인프런트)이 엑시트하는 과정에서 창업자들이 L 카테톤을 재무적 파트너로 끌어들여 지분 51%를 재취득하며 단독 경영권을 되찾아온 '경영진 주도 인수(MBO)'였다. 이번 거래에서 평가받은 하이록스의 기업가치는 약 6억 유로, 한화 약 1조 원에 육박하는 7억 달러에 달했다.
2018년 독일의 한 박람회장에서 불과 650명의 참가자로 첫 상업 대회를 열었던 하이록스는 8년 만에 연간 140만 명 이상의 참가자와 100개 이상의 대회를 여는 거물급 IP로 성장했다. 그리고 연간 매출 역시 2억 유로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피트니스 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 폭발적 성장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이록스는 대형 실내 컨벤션 센터에서 치러지는 글로벌 피트니스 레이스다. 경기 포맷은 직관적이다. '1km 러닝'과 '1개의 기능성 체력 측정 스테이션'을 번갈아 가며 총 8회 반복하는 구조다. 참가자는 총 8km를 달리는 사이사이에 스키에르그, 썰매 밀기, 썰매 당기기, 버피 브로드점프, 로잉머신, 파머스 캐리, 샌드백 런지, 월볼 등 8개의 고강도 운동 스테이션을 완수해야 한다. 기존 피트니스 종목들과 비교하면 하이록스의 영리함이 확연히 드러난다.

마라톤과의 차이: 달리기가 극단적인 심폐지구력과 하체 중심의 운동이라면, 하이록스는 1km마다 상·하체 근지구력과 폭발력을 요구하는 기능성 부하를 배치해 '전신 복합 체력(Hybrid Fitness)'을 검증한다. 크로스핏과의 차이: 크로스핏은 스내치, 클린앤저크 같은 고난도 올림픽 역도와 링 머슬업 등 기계체조 동작이 필수적이라 부상 위험과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다. 매일 '오늘의 운동(WOD)'이 무작위로 바뀌는 불확실성도 크다. 반면 하이록스는 역도와 체조 동작을 철저히 배제하고 밀기, 당기기, 던지기 등 인간의 원초적 움직임으로만 종목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하이록스는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경기 순서, 장비, 무게 규격이 완전히 동일하다. 완주 제한 시간을 두지 않아 참가자의 약 98%가 결승선을 통과하지만, 모든 기록은 전자 칩을 통해 1초 단위로 측정되어 글로벌 단일 통합 리더보드에 영구 박제된다.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하이록스의 씨앗은 2017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뿌려졌다.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 기획 베테랑인 크리스티안 퇴츠케(Christian Toetzke), 올림픽 필드하키 2연패 금메달리스트 모리츠 퓌르스테(Moritz Fürste), 그리고 마케팅 전략가 미하엘 트라우트만(Michael Trautmann) 등 3인이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포착한 피트니스 시장의 결핍은 명확했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현대인이 매일 헬스장을 찾아 땀을 흘리며 스쿼트와 달리기를 반복하지만, 러너들의 '마라톤'이나 철인들의 '아이언맨 대회'처럼 자신의 훈련 성과를 공식적으로 증명할 표준화된 경쟁 무대가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퇴츠케는 이를 "수백만 명이 골프 연습장에서 열심히 스윙을 연습하지만, 정작 필드에 나갈 골프 코스나 공식 대회가 아예 없는 꼴"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운동 초심자부터 엘리트 선수까지 누구나 도전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피트니스의 마라톤(The Marathon of Fitness)'을 직접 창조하기로 결심했다. 2018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회(참가자 650명)로 닻을 올린 하이록스는, 팬데믹 시기 인프런트의 자금을 유치하며 체력을 비축한 뒤, 엔데믹 전환과 함께 가파른 폭발 곡선을 그렸다. 그 이면에는 철저히 계산된 비즈니스 전략이 자리잡고 있었다.
첫째, 체육관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자산 경량화(Asset-Light)' 모델이다. 크로스핏이 엄격한 단독 가맹 체육관(Box) 설립을 강제하며 기존 헬스장들과 대립각을 세웠다면, 하이록스는 기존 헬스장, F45, 크로스핏 박스를 그대로 흡수했다. 연간 약 1,500달러(월 약 130달러) 수준의 라이선스 비용만 내면 공식 제휴 클럽 자격을 부여했다. 체육관들은 큰 시설 투자 없이도 하이록스 준비반을 열어 회원을 모을 수 있었고, 이는 전 세계 1만 개 이상의 체육관이 자발적으로 하이록스의 전초기지가 되도록 만들었다.
둘째, 독점 장비 표준화와 글로벌 메이저 브랜드의 유치다. 컨셉트2(Concept2) 에르고미터와 센타우르(Centaur) 썰매만을 공식 규격으로 지정해 글로벌 장비 락인(Lock-in) 효과를 구축했다. 여기에 푸마(Puma)와의 2030년 장기 파트너십 체결, 아디다스(Adidas)의 하이록스 전용 레이싱화 출시 등 글로벌 스포츠웨어 공룡들의 기술 격전지로 자리잡으며 막대한 스폰서십을 유치했다. 레드불, 어메이즈핏, BYD 등 비스포츠 글로벌 기업들의 후원도 줄을 이었다.
셋째, '소셜 화폐'가 된 커뮤니티의 축제화다. 화려한 조명, 심장을 울리는 DJ 음악, 수천 명의 관객 함성이 어우러진 실내 경기장은 지옥 같은 체력 레이스를 '도심 속 거대한 페스티벌'로 탈바꿈시켰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공유되는 피땀 어린 완주 기록표는 현대 중산층의 규율과 웰니스를 증명하는 가장 트렌디한 소셜 화폐가 되었다.

현재 하이록스의 시선은 올림픽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하이록스는 특정 사기업 브랜드명을 올림픽 종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올림픽 헌장의 장벽을 넘기 위해 세계트라이애슬론연맹(World Triathlon)과 손을 잡았다. 종목 명칭을 '하이애슬론(Hyathlon)'으로 공식화하고,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을 목표로 로드맵을 가동 중이다. 근대 5종을 잇는 21세기형 신규 글로벌 공인 스포츠로의 도약이다. 그러나 급격한 양적 팽창 이면에는 브랜드 신뢰도를 위협하는 구조적 숙제도 적지 않다.
코스 바닥재의 물리적 편차: 전 세계 코스가 표준화되어 있다고 홍보하지만, 각 컨벤션 센터마다 깔리는 바닥 카펫의 재질, 하부 콘크리트 강도, 실내 습도에 따라 썰매의 마찰 저항값이 크게 달라진다. 이는 1초 차이로 순위와 세계 기록이 갈리는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서 기록의 공정성 논란을 끊임없이 낳고 있다.
심판 판정의 일관성 결여: 대회가 폭증함에 따라 현지에서 투입된 단기 심판 및 자원봉사자의 숙련도 차이가 불거지고 있다. 버피 동작 시 가슴 접촉 여부나 월볼의 스쿼트 깊이에 대한 노랩(No-rep) 판정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불만이 반복된다.
비용 인플레이션과 상업화 피로도: 개인전 참가비만 15만~20만 원에 육박하고 동반 관람객 티켓까지 유료화되면서 '돈 내고 고강도 노역을 하러 간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커뮤니티의 피로도가 누적될 경우 재등록률이 꺾일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한 잠재 리스크다.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관찰하는 이의 시선에서 볼 때, 하이록스의 성공은 피트니스 업계의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현대 도시인이 갈망하는 원초적 심리 결핍'을 정밀하게 타격한 결과다.

첫째, '완벽한 통제감과 객관성'의 제공이다. 알고리즘과 경제적 불확실성에 휩싸여 노력과 보상의 인과관계가 희미해진 시대, 하이록스는 "흘린 땀의 양만큼 1초 단위로 정직한 기록을 돌려주겠다"는 명료한 약속을 건넨다. 모호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완벽히 통제된 규격과 글로벌 리더보드는 가장 확실한 자기효능감을 선사한다.
둘째, '배제'가 아닌 '포용과 연대'의 브랜딩이다. 기존 크로스핏이 고난도 역도와 체조 기술로 상위 엘리트를 선별해내는 '선망의 스포츠'였다면, 하이록스는 98%의 완주율을 보장하며 평범한 헬스장 이용자도 결승선을 통과하는 주인공으로 만든다. 남을 꺾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며 느끼는 원초적 연대감을 파는 것이다.
결국 하이록스는 단순한 운동 경기 플랫폼이 아니다. 헬스장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고립된 채 덤벨을 들던 개인들에게, 스스로를 '훈련하는 운동선수(Athlete)'로 재정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과 거대한 축제의 무대를 팔고 있다. LVMH 계열의 스마트 머니가 이 거대한 땀의 제국에 7억 달러라는 거액을 베팅한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