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교수
디자인에 '웨이브(WAVE)'를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유려한 물결 모양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파동이 시작되고, 전달되며, 끝내 확산되는 유기적인 작동 방식을 제품이나 공간의 뼈대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파동에는 분명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출발점, 전달 매체, 그리고 그것이 도달하는 최종 대상이다. 물결은 물을 통해 이동하고, 빛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정보는 사람과 매체를 거쳐 퍼져나간다. 훌륭한 디자인 역시 이와 같은 구조를 지닌다. 사용자의 시선과 행동이 어디에서 촉발되어 어떤 경로로 흐르고, 마침내 어떤 경험으로 귀결되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2026 수상작들에서도 빛과 곡선, 흐름과 확산, 성장과 연결을 아우르는 웨이브의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단편적인 조형의 유행이 아니다. 고정된 사물을 빚어내는 것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움직임과 관계 자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거대한 신호라고 볼 수 있다. VINE, Luminous Library, THE WAVE 세 작품은 각각 에너지, 지식, 놀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파동의 구조로 탁월하게 번역해 낸 대표적 사례다.
에너지의 흐름을 건축물의 표면에 적용하다

< VIN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VINE은 땅에서 싹을 틔워 벽을 타고 오르며 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덩굴의 생명력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덩굴의 외형을 모방한 것에 있지 않다. 핵심은 그 '작동 방식'이다. 덩굴은 주변 환경을 감각하고, 지지대를 삼아 가장 빛이 강한 곳으로 기어오른다. VINE은 이 경이로운 자연의 원리를 건축물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치환했다. 인공지능과 3D 프린팅,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기술이 덩굴의 패턴 안에서 하나로 얽힌다. 건물의 피부는 태양광을 머금고 이를 에너지로 전환하며, 반복되는 곡선은 에너지가 이동하는 궤적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흔히 태양광 설비는 건축물 위에 덧붙여진 이질적인 기계 장치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VINE]은 기술을 억지로 숨기거나 기계적으로 과시하지 않는다. 덩굴이 빛을 향해 자라나는 익숙한 자연의 방식을 빌려, 건물이 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복잡한 기술적 개념을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납득하게 만든다. 여기서 웨이브는 '에너지의 파동'이다. 자연의 형태가 기술의 기능과 완벽하게 맞물리며 건축물 고유의 정체성을 빚어낸 것이다.
지식의 확산을 공간의 구조로 표현하다

< Luminous Library,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지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책이나 디지털 콘텐츠에 기록할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사유가 타인에게 가닿고 새로운 질문으로 번져가는 과정 자체는 일정한 형태가 없다. Luminous Library는 이 추상적인 지식의 팽창 과정을 빛의 파동으로 번역해 낸 공간이다. 도서관 중심에 응집된 빛은 지식의 발원지를 의미한다. 그곳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동심원은 지식이 타인에게 전달되고 뻗어나가는 경로를 암시한다. 이 구조는 단순히 은유적인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학습 공간의 구획을 나누고, 사용자의 시선을 이끌며, 공간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명확한 방향키 역할을 수행한다. 이 디자인의 미덕은 도서관의 본질적 목적과 공간의 형태가 완벽하게 호응한다는 점에 있다. 사용자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빛이 모이는 곳으로 시선을 둔 뒤 동심원의 궤적을 따라 자연스럽게 다음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여기서 웨이브는 '지식의 파동'이다. 정보가 개인에게 스며들고 타인에게 확산되는 경이로운 과정을 빛과 공간의 질서로 시각화한 것이다.
물의 리듬을 아이들의 행동으로 치환하다

< THE WAV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일반적인 놀이터는 미끄럼틀, 그네, 오르기 시설 등 개별적인 기구들이 기능별로 흩어져 있는 집합체다. 하지만 공동주택 중앙의 수경 시설 물결에서 모티프를 얻은 THE WAVE는 개별 시설 그 자체보다 시설과 시설 사이의 '연결'에 집중한다. 이곳의 세 가지 놀이 구역은 마치 수면에 파장이 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한 아이의 움직임이 다음 구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곡선의 형태는 걷기와 달리기, 오르기와 내려오기의 다채로운 동선을 빚어낸다. 이는 아이들의 놀이 특성을 정확히 꿰뚫은 결과다. 정해진 순서 없이 한 아이의 행동이 다른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놀이의 반경이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는 현상은, 작은 파장이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물결의 속성과 꼭 닮아 있다. 낮에는 형태로서 유려하게 흐르던 이 물결은 밤이 되면 선형 조명을 통해 빛의 파동으로 변모하며 아이들의 안전한 동선을 지켜준다. 하나의 디자인 언어가 시간에 따라 유연하게 제 몫을 다하는 것이다. 여기서 웨이브는 '행동의 파동'이다. 물의 움직임을 놀이 시설로 변환하고, 그것을 다시 아이들의 뜀박질로 연결한 탁월한 치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