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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주머니 속에서 하얀 유선 이어폰 줄을 천천히 풀어 귀에 꽂는다. 최신 스마트폰 대신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손바닥만 한 콤팩트 디카를 쥐고 손가락 끝으로 딸깍거리는 전원 스위치를 젖힌다. 요즘 10대와 20대 손끝에서 흔히 마주하는 이 풍경을 두고 기성세대는 ‘Y2K 열풍’이나 ‘복고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을 붙이며 의아해한다. 하지만 여기엔 모순이 있다. 지금의 10대는 2000년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 며칠 동안 기다려본 적도 없고, MP3 플레이어 용량이 부족해 노래 스무 곡을 골라 담던 시절을 알 리 없다. 겪어보지도 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낡은 기계는 흘러간 추억의 조각이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인터페이스다. 스마트폰이라는 사각형 기기 하나가 일상을 장악하면서, 산업디자인이 수십 년간 쌓아온 물리적 조형 문법은 단숨에 사라졌다. 기능에 맞춰 존재하던 물리적 구조와 굴곡은 단순한 터치스크린 뒤로 숨어버렸다. 볼륨을 조절하기 위해 휠을 돌릴 일도, 모드를 바꾸기 위해 금속 다이얼을 딸깍거리며 맞출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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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Duo. 버튼과 굴곡을 지우고 매끄러운 유리판 하나로 모든 기능을 수렴시킨 현대 스마트폰의 정점.

< 이미지 출처 : Apple >

 

 

 

모든 조작은 매끄러운 유리 표면 위에서 지문 하나 남기지 않고 미끄러지는 픽셀을 가볍게 탭하는 동작으로 통일되었다. 마찰 없는 편의성을 얻은 대가로 사물과 손끝이 맞닿으며 느끼던 물성은 사라졌다. 본래 손은 사물의 무게와 결, 단단함과 저항을 탐색하는 감각 기관이다. 하지만 현대 하드웨어는 그 감각을 전부 지운 채 유리판 위를 미끄러지는 스와이프 하나로 단순화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 매끄러움을 기본값으로 써온 세대에게, 터치스크린은 신기술이 아니라 아무런 자극도 없는 지루한 평면일 뿐이다. 디자인 역사에서 영원한 정답으로 남은 양식은 없었다. 조형이 한쪽 극단으로 치달으면, 새로운 세대의 취향은 늘 그 반대편의 결핍을 파고들었다. 장식을 덜어내던 모더니즘 끝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파격이 튀어나왔듯, 모든 버튼을 화면 뒤로 감춰버린 극단적인 미니멀리즘 끝에서 10대들은 손끝에 걸리는 마찰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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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 iFP-10. 과거의 아이코닉한 프리즘 폼팩터와 물리 휠 인터페이스를 복원한 MP3 플레이어

< 이미지 출처 : 아이리버 >

 

 

 

기성세대가 불편하다고 버렸던 요소들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살아있는 조작감으로 다가온 셈이다. 에어팟의 블루투스 연결은 편리하지만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다. 반면 3.5mm 이어폰 단자를 구멍에 맞춰 밀어 넣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체결감은 기기와 직접 연결되었다는 물리적 피드백을 준다. 주머니에서 무선 케이스를 떨어뜨려 잃어버릴까 조마조마한 것과 달리, 유선 케이블은 몸과 기기를 잇는 선이 되어주며 남들과 다른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두툼한 콤팩트 디카를 쥐었을 때 느껴지는 부피감, 휠을 돌릴 때 걸리는 둔탁한 저항, 셔터를 눌렀을 때 손끝을 때리는 반동은 조작하는 맛을 준다. 사진을 옮기기 위해 기기 뚜껑을 열고 SD카드를 꺼내 리더기에 꽂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만질 수 없는 클라우드와 구독 서비스 세상에서, 이 손이 가는 단계들이 모여 ‘내가 이 물건을 직접 다루고 소유한다’는 실감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여주는 결점 없는 화질에 대한 피로감도 더해진다. 최신 폰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AI가 개입해 피부 모공을 지우고 그림자를 끌어올려 최적화된 결과물을 내놓는다. 실패 없이 다듬어진 이미지는 편리하지만 단조롭다. 반면 20년 전 구형 CCD 센서가 내놓는 자글자글한 노이즈, 손이 흔들려 번진 잔상, 플래시 불빛 아래 허옇게 뜬 색감은 통제된 디지털 화면에서 보기 힘든 날것의 맛을 준다. 기계적인 완벽함보다, 기기의 한계 때문에 생기는 거친 결과물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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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보지 않은 시대의 유물은 추억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된다

< 이미지 출처 : Unsplash >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기를 얇게 깎아 화면 뒤로 숨기는 것만이 하드웨어 디자인의 유일한 진보일까. 소프트웨어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산업디자인의 본질은, 결국 손가락이 사물과 맞닿는 물리적 접점을 설계하는 데 있다. 패션의 유행이 돌고 돌듯,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영원한 정답이나 고정된 ‘좋은 디자인’의 정의는 없다. 과거에는 거추장스러운 버튼을 지우고 매끄럽게 다듬는 미니멀리즘이 최고의 혁신이었지만, 모든 게 평평해진 지금은 오히려 손끝에 걸리는 묵직한 마찰과 저항감이 새로운 가치가 된다. 시대가 무엇을 과잉으로 느끼고 무엇에 결핍을 느끼느냐에 따라 좋은 디자인의 기준 역시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손끝에 닿는 버튼의 반발력, 휠의 묵직한 회전감, 시간이 지나며 손때가 묻어가는 외관의 마감까지. 매끄러운 유리에 질린 세대가 낡은 하드웨어를 다시 집어 드는 진짜 이유는, 편리함 뒤로 지워버린 손맛과 사물의 실체를 되찾고 싶어서다. 아무리 매끄럽고 완벽한 형태라도 인간의 감각과 부딪히는 마찰을 잃어버린 디자인은, 결국 돌고 도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가장 먼저 손끝을 빠져나가 잊힐 뿐이다.

  • Founder: Doyoung Kim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454-86-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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