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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9월 초,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뒤늦은 여름휴가로 발리를 다녀왔다. 사실 발리에 다녀왔다기보다는 짐바란에 위치한 ‘아야나(AYANA)’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3박 4일 동안 리조트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만 휴가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리조트 안을 돌아다녔는데도 다 둘러보지 못했을 정도로 이곳은 넓었고, 그 안에서 즐길 거리도 많았다. 가족과 함께 너무나 잘 쉬고 돌아오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 브랜드가 더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나의 리조트가 며칠의 휴가를 온전히 채울 만큼 커졌고, 그 안에 이토록 다양한 경험을 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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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소개를 찾아보니 현장에서 느꼈던 규모가 숫자로도 실감이 났다. 아야나 발리 전체 부지는 약 27만 2,000평에 이르고, 그 안에 네 개의 호텔과 약 1,000실에 달하는 객실과 빌라가 들어서 있으며, 수영장만 14개에 식당과 바도 약 30곳이나 된다. 숙소 하나를 예약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호텔과 즐길 거리가 모여 있는 작은 휴양 도시를 찾아간 셈이었다. 그런데 규모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곳이 원래 ‘리츠칼튼’이었다는 사실이다. 2009년 그 이름을 내려놓고 아야나로 새 출발을 했는데, 당시 객실 290개와 빌라 78채를 갖추고 있던 리조트가 지금은 약 1,000실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의 간판을 내리고도 이렇게 커질 수 있었다면, 그 뒤에는 ‘아야나’만의 성장 방식이 있지 않았을까.

 

 

 

이 브랜드 시작, 과연 어땠을까?

 

‘아야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6년 문을 연 ‘리츠칼튼 발리 리조트 앤 스파’를 만나게 된다. 당시 시설을 소유한 회사는 ‘PT 카랑 마스 스자흐트라(KMS)’였고 운영은 리츠칼튼이 맡고 있었으니, 호텔을 가진 주인과 그 호텔을 운영하는 브랜드가 서로 다른 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근 ‘불가리 리조트’ 운영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소유주 측은 ‘리츠칼튼’이 가까운 곳에서 경쟁 리조트까지 운영하는 것이 계약상 권익을 침해한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이 분쟁은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2009년 4월 1일 ‘아야나(AYANA)’라는 이름으로 전환했으니, 지금의 독자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에는 오랜 사업 파트너와의 결별이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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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선택한 ‘아야나(AYANA)’는 회사가 산스크리트어로 ‘안식처(a place of refuge)’를 뜻한다고 설명하는 이름이다. 2009년 브랜드 전환 발표에서도 이 의미를 직접 밝히며 앞으로 이곳에서 만들어갈 경험과 연결했는데, 아야나라는 이름에는 손님이 편안히 머물며 쉴 수 있는 장소가 되겠다는 방향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소유주 ‘루디 술리아완’이 새로운 운영을 맡긴 사람이다. ‘웨스트 페이시스 호텔 그룹’을 이끌던 ‘호르스트 슐츠’였는데, 그는 리츠칼튼의 창립 멤버이자 전 사장이기도 했다. 아야나는 새 이름을 선택하면서도 세계적인 호텔을 운영해본 사람의 경험을 가져왔고, 당시 약 950명이던 직원도 대다수를 유지했다. 이름이 바뀌더라도 고객을 맞이하는 사람과 서비스의 기반은 이어가려 했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 아야나가 이후 무엇을 더해왔는지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을 만든 성장 전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는 아야나라는 이름을 사람들의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을 만든 것이다. 독립한 해인 2009년 문을 연 ‘락 바(Rock Bar)’가 대표적인데, 절벽 아래 바다와 맞닿은 바위 위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이곳은 아야나가 어떤 호텔인지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 풍경만으로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리츠칼튼이라는 익숙한 이름을 내려놓은 아야나에게, 자신을 상징하는 공간을 갖게 된 것은 브랜드 성장의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총지배인 ‘샤를 드 푸코’도 2009년 말 락 바의 개장이 발리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아야나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새 이름을 알려야 했던 시기에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 보고 싶어 하는 장소가 생겼고, 그곳의 풍경을 아야나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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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방식도 흥미로운데, 리조트에 투숙하지 않는 사람도 예약할 수 있도록 하면서 투숙객에게는 일몰 시간 우선 예약과 전용 구역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 아야나를 처음 경험할 기회는 넓게 열어두되, 이곳에 머무르면 그 경험을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연결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락 바는 호텔 안의 부대시설인 동시에, 아직 아야나에 묵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취향의 여행객이 같은 단지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숙소를 고를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아야나는 2013년 ‘림바(RIMBA)’, 2022년 ‘세가라(Segara)’를 열면서 숙박 선택지를 넓혀왔는데, 현재는 발리 전통의 분위기를 살린 아야나 리조트와 숲속의 가족 여행에 어울리는 림바, 현대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여행객을 위한 세가라, 사적인 휴식을 위한 빌라까지 네 가지 성격의 호텔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호텔들이 트램으로 연결되어 있어 고객은 자신의 여행 목적에 맞는 곳에 머물면서 단지의 여러 식음 공간과 체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처럼 아이와 함께 온 가족도,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신혼부부도 아야나 안에서 각자의 휴가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확장 방식은 아야나를 선택할 수 있는 고객의 폭을 넓히면서, 이미 찾아온 고객에게도 더 많은 공간을 경험할 기회를 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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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리조트 안에서 휴가의 시간을 채울 수 있도록 즐길 거리와 배울 거리를 꾸준히 더해왔다는 점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2024년 공식 출범한 ‘사카 뮤지엄(SAKA Museum)’으로, 리조트 안에 발리의 명절인 ‘녜삐’와 전통문화 등을 다루는 박물관을 세웠다는 사실부터 눈길을 끈다. 이곳은 같은 해 ‘타임’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장소’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박물관 자체가 아야나를 찾아갈 또 하나의 이유가 될 만하다. 같은 해 문을 연 ‘테바나 가든’은 정원만 약 6만㎡에 이르는데, 이렇게 산책할 공간과 문화를 배울 장소가 더해지면 리조트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도 다양해진다. 수영을 하고 식사를 하는 일정 사이에 정원을 걷거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넣을 수 있으니, 머무는 동안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이 그만큼 풍성해지는 것이다. 아야나가 커져온 과정은 객실을 늘리는 일과 함께, 고객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이유를 쌓아온 과정으로도 읽힌다.

 

브랜드를 관찰하는 입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더해진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며 아야나를 선택할 이유를 늘려준다는 점이다. 락 바의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호텔을 고르고, 그 안에서 박물관과 정원까지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니, 각각의 시설이 모여 아야나에서 보낼 휴가 전체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나도 락 바의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 시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절벽의 바위 위에 자리한 식당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DJ 부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어우러지니 그곳에서 식사하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여행하는 동안 여러 레스토랑을 경험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곳의 음식이 가장 맛있었으니 풍경과 음악, 음식이 함께 남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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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대표적인 제품이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야나처럼 머무는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라면 그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의 공간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락 바는 아야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이 3박 4일을 리조트 안에서만 보내고도 다 둘러보지 못했던 경험을 돌아보면, 아야나가 그 넓은 땅 안에 무엇을 쌓아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락 바에서 바라본 노을과 음악, 맛있게 먹었던 저녁 식사까지, 여행을 마친 나에게는 아야나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장면들이 생겼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아야나를 찾아갈 이유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오고 싶은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때 이곳은 리츠칼튼이라는 이름으로 고객을 맞이했고, 그 이름에 담긴 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던 리조트였다. 아야나로 다시 출발하면서는 그동안 쌓아온 서비스와 사람들의 경험 위에, 자신을 상징하는 공간과 새로운 방문 이유를 하나씩 더해갔다. 그렇게 아야나라는 이름에도 고객이 기대할 만한 풍경과 경험이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야나의 성장 과정을 보며, 자신만의 브랜드로 선다는 것은 결국 자기 이름을 선택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하나의 결정이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구체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발리에 다녀왔다기보다 아야나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하게 된 이번 휴가는, 하나의 이름이 어떻게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되는지를 직접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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