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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교수

 

 

 


 

 

 

우리는 매일 많은 정보를 접한다. 기후위기, 음식물 쓰레기, 사망 원인, 사회적 갈등, 외모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까지 대부분 처음 듣는 문제는 아니다. 관련 통계와 뉴스도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문제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보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보가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숫자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지만, 숫자만으로는 사람의 관심을 오래 붙잡기 어렵다. 음식물 쓰레기가 매년 얼마나 발생하는지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문제가 나의 생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체감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국가별 성형수술 통계 역시 현상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사라지는지까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지점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시작된다. 디자인은 정보를 보기 좋게 정리하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복잡한 정보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고, 멀게 느껴지는 문제를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2026 수상작 가운데 planet code EArTh, THE LIGHT OF REINCARNATION THROUGH DEATH, MIMIC GIMMICK, VS: Science, Religion, and Us는 이러한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데이터를 그대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문제에 적합한 상징과 이야기를 선택하고, 관람자가 정보를 보고 만지고 해석하도록 만든다. 정보는 디자인을 통과하면서 지식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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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et code EArTh,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NER >

 

 

 

planet code EArTh는 음식물 쓰레기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다. 음식물 쓰레기는 생산과 유통, 소비와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한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이나 해결책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일반적인 캠페인은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나 환경적 피해를 숫자로 보여주고 절약을 요청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익숙하다는 데 있다. 익숙한 경고는 쉽게 지나치게 된다. 이 작품은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하는 대신,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꾼다. “음식을 남기면 지옥에서 남긴 음식을 모두 먹어야 한다”는 한국의 전통 설화에서 출발해 EArTh라는 가상의 행성을 만들었다. 관람자는 이 행성에서 시각화된 데이터를 접하며 음식물 쓰레기의 발생 구조를 살펴본다.

 

여기에서 세계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복잡한 정보를 연결하는 하나의 인터페이스다. 관람자는 통계자료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탐색하는 참여자가 된다. 무거운 환경문제를 가상의 행성과 이야기 구조로 바꾸면서 접근 장벽을 낮추고, 정보를 발견하는 과정 자체에 흥미를 더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핵심은 명확하다. 사람들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정보를 반복하기보다 정보가 전달되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같은 데이터라도 어떤 장면과 이야기 안에 놓이는가에 따라 사람의 반응은 달라진다.

 

 

 

사망 통계에 기억할 수 있는 형태를 부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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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IGHT OF REINCARNATION THROUGH DEATH,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NER >

 

 

 

THE LIGHT OF REINCARNATION THROUGH DEATH는 1998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사망 원인과 사망률을 연꽃등의 형태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사망 통계는 정확하지만 추상적이다. 숫자의 크기는 비교할 수 있어도, 각각의 숫자 뒤에 존재하는 삶의 의미까지 느끼기는 어렵다. 이 작품은 차가운 통계를 불교의 연꽃등과 결합한다. 불교에서 연꽃등은 단순한 추모의 상징이 아니라 깨달음과 공덕의 빛을 의미한다. 작품은 연꽃등의 층위와 색상, 밀도를 통해 사망 원인과 데이터의 차이를 보여준다. 관람자는 숫자를 읽는 대신 빛과 형태의 변화를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이해한다.

 

중요한 점은 통계를 감성적인 이미지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의 구조와 상징의 의미를 연결했다는 데 있다. 연꽃등의 겹쳐진 형태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나타내고, 색상 대비와 밀도는 통계적 차이를 전달한다. 형태가 의미를 설명하고, 의미가 데이터를 기억하게 만드는 구조다. 정보디자인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은 목적이 아니다. 사람들이 정보를 더 정확하게 구분하고 오래 기억하도록 만드는 수단이다.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통계가 가진 무게를 놓치지 않는다.

 

 

 

데이터를 촉감으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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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IC GIMMICK,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NER >

 

 

 

MIMIC GIMMICK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모방 중심의 성형문화를 미믹 옥토퍼스에 비유한다. 미믹 옥토퍼스는 생존을 위해 다른 해양생물의 모습을 따라 한다. 작품은 이러한 생물학적 특징을 타인의 외모를 모방하는 현대사회의 현상과 연결했다. 외모 획일화는 말로 설명하면 쉽게 도덕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옳지만 익숙하다. MIMIC GIMMICK은 당위적인 문장을 앞세우는 대신, 8개 국가의 성형수술 데이터를 촉수 형태의 그래픽으로 전환한다. 특히 이 작품은 데이터를 인터랙티브 팝업북에 담았다. 관람자는 절개된 페이지와 움직이는 차트를 직접 조작하며 데이터를 확인한다. 정보를 읽는 행위가 페이지를 열고, 당기고, 비교하는 행동으로 바뀐다.

 

관람자의 손이 움직일 때 정보도 함께 변한다. 이러한 물리적 상호작용은 장식적인 재미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바라볼 때보다 직접 조작할 때 구조와 차이를 더 구체적으로 인식한다. MIMIC GIMMICK은 성형수술 통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모방과 정체성 상실의 관계를 스스로 발견하게 만든다. 여기서 디자인은 결론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관람자가 데이터를 탐색하고 결론에 도달하도록 순서를 설계한다.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 이해가 발생하는 과정을 만든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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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S Science Religion and Us,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NER >

 

 

 

VS Science Religion and Us는 과학과 종교의 역사적 관계를 통해 현대사회의 갈등과 위험을 살펴본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단순히 대립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충돌뿐 아니라 조정과 공존의 역사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복잡한 관계를 투우 경기라는 장면으로 압축한다. 과학은 사회적 인식과 기존 질서에 영향을 주는 황소로, 종교는 변화에 대응하는 투우사로 표현된다. 투우사의 망토는 종교가 변화에 반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투우라는 비유는 갈등의 긴장과 상호작용을 한 장면 안에서 이해하게 한다. 황소와 투우사는 서로 대립하지만, 어느 한쪽만으로는 장면이 완성되지 않는다. 두 주체의 움직임은 상대의 행동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이 구조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일방적인 승패가 아니라 충돌과 조정을 반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비유는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용을 지나치게 축소하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 투우는 과학과 종교를 단순히 적대적인 관계로 규정하기 위한 이미지가 아니다. 갈등이 관계와 협상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모델이다.

 

 

 

사람은 설명보다 구조를 기억한다

 

네 작품은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지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추상적인 문제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을 선택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가상의 행성으로, 사망 통계는 연꽃등으로, 모방 성형은 미믹 옥토퍼스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투우 경기로 바뀐다. 다음으로 관람자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순서를 설계한다. 이야기를 따라 이동하거나, 빛과 형태를 비교하거나, 팝업북을 직접 조작하면서 정보의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정보가 하나의 결과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 안에서 단계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접근은 이중부호화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파이비오는 인간이 언어적 정보와 시각적 정보를 서로 연결된 두 체계로 처리한다고 보았다(Paivio, 1986). 문자와 숫자로만 전달된 정보보다 언어와 이미지가 연결된 정보가 이해와 기억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네 작품은 시각 이미지를 추가하는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세계관, 빛, 상징, 물리적 조작을 통해 관람자가 정보와 관계를 맺게 한다.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정보를 탐색하고 해석하도록 만든다.

 

 

 

디자인의 경쟁력은 편집에서 시작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정보를 생산하는 것보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복잡한 데이터를 모두 보여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을 선택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적절한 상징을 부여해야 한다. 이 과정은 편집과 같다. 디자이너는 정보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필요하지 않은 요소를 제거하며, 사람들이 어디에서 관심을 갖고 어떤 순서로 의미를 이해할지 설계한다. 따라서 정보디자인의 품질은 그래픽의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그 해석을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 경험으로 바꾸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planet code EArTh는 구조적 환경문제를 세계관으로 바꾸었다. THE LIGHT OF REINCARNATION THROUGH DEATH는 사망 통계를 빛과 상징으로 전환했다. MIMIC GIMMICK은 데이터를 손으로 조작하는 경험으로 만들었다. VS: Science, Religion, and Us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하나의 강한 비유로 압축했다.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현대의 디자인은 정보를 장식하는 일이 아니라, 정보가 사람에게 도달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다. 좋은 디자인은 더 많은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중요한 내용을 발견하고 이해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결국 디자인이 바꾸는 것은 정보의 형태만이 아니다. 정보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다. 숫자를 장면으로, 통계를 이야기로, 사회문제를 자신의 경험으로 바꾸는 순간 정보는 비로소 행동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갖는다.

  • Founder: Doyoung Kim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454-86-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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