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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교수

 

 

 


 

 

 

2026년 일본 디자인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재료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디자인은 오랫동안 절제된 형태와 높은 완성도, 자연과의 관계를 강점으로 보여왔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떤 형태를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재료를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2026–2027 아시아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의 일본 수상작 데이터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확인된다.

 

일본 수상작 프롬프트의 상위 10개 어휘는 space(119), room(94), large(92), wall(88), area(85), wooden(81), modern(76), side(64), interior(63), white(62)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단어는 wooden이다. 한국과 중국 데이터에서는 white, text, room, space처럼 공간과 시각 표현을 설명하는 단어가 상위에 나타났지만, 일본에서는 재료를 직접 가리키는 wooden이 6위에 올랐고 modern보다 높은 빈도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디자인에서 목재가 단순한 장식이나 분위기 연출의 수단이 아니라, 공간과 제품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디자인이 현대적인가를 설명하기 전에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먼저 설명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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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는 이러한 흐름을 Material Memory, Site Bound Architecture, Calm Density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세 키워드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지만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재료, 장소, 생활 방식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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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yaki Monogatari,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첫 번째 흐름인 Material Memory는 재료를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라 사용자의 기억과 시간이 축적되는 요소로 다루는 방식이다. Keyaki Monogatari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의뢰인의 본가 정원에 있던 느티나무를 새 집의 구조 기둥으로 다시 사용하면서 기존 재료를 새로운 공간 안에 연결했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나무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료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생활 공간의 일부로 다시 사용했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디자인에서 나무와 돌 같은 자연 재료는 표면의 질감을 만드는 역할을 넘어, 공간의 역사와 사용자의 경험을 연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디자인을 평가하는 기준에도 변화를 만든다. 제품이나 공간이 처음 완성되었을 때 얼마나 새롭고 깨끗해 보이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한다. 목재의 색이 변하거나 표면에 사용 흔적이 남는 과정도 제품의 수명 안에 포함된다. 일본 디자인에서 재료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시간의 변화까지 디자인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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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vate villa ten KUMANO, ASIA DESIGN PRIZE 2026 GRAND PRIZE >

 

 

 

두 번째 흐름인 Site Bound Architecture는 건축을 주변 환경과 분리하지 않고 지형과 풍경을 설계 조건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private villa ten KUMANO는 산과 바다가 가까이 만나는 위치를 활용해 주요 공간에서 수평선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EWALU, FONTAINE BLEAU SENGOKUTEI 역시 건축물을 독립적인 오브제로 강조하기보다 주변 풍경과의 관계를 우선한다. 건물의 방향, 창의 위치, 빛이 들어오는 각도, 외부 조망을 함께 고려해 장소가 가진 특성을 공간 경험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은 산의 경사, 바람, 일조량, 식생처럼 이미 존재하는 조건을 설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데 있다. 건축이 장소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환경이 가진 장점을 사용자가 더 잘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일본 건축에서 재료와 장소가 함께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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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NTAINE BLEAU SENGOKUTEI,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NER >

 

 

 

세 번째 흐름인 Calm Density는 일본 특유의 절제된 공간에 실제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흐름이다. 과거의 일본 미니멀리즘이 사물을 줄이고 공간을 비우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필요한 행동을 더 편리하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차를 마시는 작은 카운터,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주방, 장작 난로, 욕실과 휴식 공간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활동을 공간 안에 구체적으로 배치한다. 공간을 비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 세 가지 흐름을 함께 보면 2026년 일본 디자인의 특징이 보다 명확해진다. Material Memory는 재료의 수명을 길게 보고, Site Bound Architecture는 건축과 장소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며, Calm Density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사용 방식을 공간에 반영한다. 공통점은 새로움을 강조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어떻게 더 오래, 더 적절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일본 디자인이 다시 재료에 주목하는 첫 번째 배경은 제품과 공간의 수명을 길게 보려는 시장의 변화다. 빠르게 구매하고 교체하는 소비 방식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과 공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때 재료는 디자인의 수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낡아 보이는 재료와 사용 흔적이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재료는 제품의 장기적인 가치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일본 디자인은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설계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 배경은 재료에 대한 정보가 디자인 가치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목재라도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 어떻게 건조하고 가공했는지에 따라 품질과 사용 방식이 달라진다. 소비자는 제품의 외형뿐 아니라 재료의 출처와 생산 방식, 유지 관리 방법까지 함께 확인하기 시작했다. 재료가 단순한 생산 요소에서 브랜드와 제품의 차이를 설명하는 정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배경은 기존 건축물과 자원을 다시 활용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다. 일본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새로운 공간을 계속 만드는 것만큼 기존 주택과 지역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오래된 집을 개보수하고, 기존 재료를 다시 사용하며, 지역의 환경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디자인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료를 다시 바라보는 흐름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도 연결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접근도 달라지고 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 수리가 가능한지, 기존 재료를 다시 활용할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도 사용 가치가 유지되는지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일본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재료로의 회귀’는 이러한 조건을 제품과 공간의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자이너의 역할에도 영향을 준다. 이전에는 새로운 형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안하는지가 중요한 역량이었다면, 이제는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공간을 설계할 때도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기존 자원, 사용자의 생활 방식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디자인의 완성 시점을 제품이나 공간이 처음 공개되는 순간에만 두지 않고, 실제 사용 기간 전체로 넓게 보는 것이다. 일본 디자인의 이러한 흐름은 작은 생활용품에서도 확인된다. 그릇, 다관, 트레이처럼 매일 사용하는 물건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하기보다 재료의 촉감과 관리 방법, 반복 사용에 따른 변화를 중요하게 다룬다.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제품에 흔적이 남지만, 그것이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보다 사용자의 경험을 축적하는 요소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 점은 일본 디자인이 재료를 단순한 외관 요소가 아니라 제품의 사용 기간 전체를 관리하는 요소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2026년 일본 디자인이 다시 ‘재료’로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의 디자인 방식을 반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Material Memory는 기존 재료의 가치와 사용 기간을 확장하고, Site Bound Architecture는 장소가 가진 조건을 건축에 활용하며, Calm Density는 필요한 기능을 남기고 생활의 편의를 높인다. 세 가지 흐름은 모두 새로운 것을 계속 추가하는 방식보다 이미 존재하는 자원과 환경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일본 디자인이 다시 재료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재료가 제품의 외형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 기간, 공간의 관계, 유지 관리,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결정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이 질문이 2026년 일본 디자인에서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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