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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싸이드 시티 전우성 대표. 브랜딩 디렉터.

<마음을 움직이는 일>,<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핵심경험론> 저자

 

 

 


 

 

 

필자는 몇 해 전, 한 디자인 회사에서 강연을 할 기회를 얻었다. 강연을 준비하며 그 회사 대표에게 물었다. “저는 디자이너가 아닌데, 직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드리면 좋을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의 언어가 아니라, 당신이 보는 관점에서 브랜딩을 이야기해 달라.”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브랜딩은 디자인의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브랜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브랜딩은 마케팅이나 디자인의 하위 개념처럼 여겨졌다. “로고를 바꾸자”, “컬러 시스템을 정리하자”, “통일된 디자인 매뉴얼을 만들자”는 프로젝트가 곧 브랜딩으로 불렸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단순하다. 브랜드가 세상에 드러나는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이 바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로고, 심벌, 패키지, 광고 비주얼 등은 한눈에 들어오고, 소비자가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경영자와 실무자들은 브랜딩을 곧 디자인으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브랜드가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외형은 눈길을 끌 뿐, 마음을 붙잡는 것은 그 너머의 철학과 태도, 경험이다.

 

물론 세상에 디자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 앞에 서는 브랜드는 없다. 간판 없는 가게가 없듯, 디자인은 브랜드가 세상에 보여지는 첫 인상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로고, 색, 형태, 심벌은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문 앞의 간판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디자인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브랜딩은 남들과 나를 구분짖는 나만의 가치를 설계하고 이 가치에 공감하고 또 열광하는 팬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아우른다. 그렇다면 팬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우리가 누군가의 팬이 되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의 말투, 태도, 가치관, 행동, 생각등이 그 사람의 호감도를 결정한다. 아무리 멋진 외모를 가졌더라도 일관성 없는 태도, 공감하지 못할 행동을 보인다면 그 사람에게 끌리기는 어렵다. 브랜드도 이와 같다. 디자인은 단지 외모이고, 브랜딩은 그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 삶의 방식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물론 외모가 매력적이라면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시선을 모으는 것과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브랜딩을 여전히 ‘매력적인 로고와 심볼을 만들고, 브랜드만의 고유한 색상과 폰트를 정의하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물론 이런 작업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브랜드 디자인’ 혹은 ‘비주얼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브랜딩이라는 말은 훨씬 더 큰 범주를 포함한다. 브랜딩이란 결국 브랜드의 철학과 정체성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 브랜드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가, 무엇을 지향하는가, 어떤 경험을 전달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과 태도로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가를 정의하고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브랜드는 자신만의 고유한 이미지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디자인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번역하여 보여주는 도구이지만 그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한 브랜드가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시각적 매력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시각적 요소 너머 그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와 경험을 기억한다. 애플을 떠올려 보자. 애플의 미니멀한 디자인은 분명 매혹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애플을 기억하고 선택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의 철학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Think Different’라는 메시지를 관통하는 혁신적 태도, 사용자가 느끼는 경험 중심의 사고가 애플을 다른 브랜드와 구분 짓는다. 애플 제품의 미려한 디자인은 그 철학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필자는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를 좋아한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파타고니아의 로고가 이쁘다거나 제품의 디자인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파타고니아에서 말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철학과 창업주 이본 쉬나드가 자신의 지분을 환경단체에 기부한 행위 등 그들의 환경에 대한 진심이 오히려 파타고니아를 구매하고 좋아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파타고니아가 뉴욕타임즈에 개제했던 유명한 광고인 ‘Don’t buy this jacket’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 광고를 보고 파타고니아를 단지 이쁜 디자인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주목하는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 

 

 

 

화면 캡처 2025-10-20 092056.png

< 이미지 출처 파타고니아 >

 

 

 

나는 강연 자리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브랜드의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지만, 그 옷을 입을 사람의 몸과 태도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옷을 잘 차려입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이 옷과 맞지 않으면 어색하다. 마찬가지로, 브랜드의 철학과 경험, 전달하고자 하는 그 브랜드만의 가치가 부실하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리브랜딩’을 한다면서 로고를 새로 바꾸고, 서체와 컬러를 정리하는데만 집중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 브랜드를 매력적으로 보게 하는 역할을 과연 하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브랜딩을 다시 정의해 보자. 브랜딩은 브랜드가 세상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브랜드만의 일관된 가치’을 경험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철학에서 시작해 제품, 서비스, 고객 응대, 사회적 활동까지 이어진다. 다시 말해 브랜딩은 단지 보이는 작업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다. 디자인은 그 과정의 일부다. 중요한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지 않듯, 브랜딩도 디자인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강연을 마치며 나는 디자이너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브랜딩을 디자인의 용어로만 보지 마십시오. 디자인은 브랜드가 세상에 드러나는 첫 모습일 뿐입니다. 브랜딩은 그보다 더 깊고, 더 넓은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단지 로고로 브랜드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브랜드가 보여준 태도, 경험, 철학을 로고와 연결시켜 그 브랜드를 기억합니다.” 다시 말해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외모만을 다듬기보단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알리고, 어떤 경험요소와 행동으로 그들에게 어필할지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시각적 모습만 가지고 그 브랜드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브랜딩은 디자인의 용어가 아니다. 디자인이 브랜딩의 필수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이 점을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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