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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박사 | 벨류포머 대표

 

 

 


 

 

 

같은 넷플릭스 계정이라도, 내가 보는 화면과 옆 사람이 보는 화면은 다르다는걸 눈치챈적이 있는가? 단순히 이는 추천 목록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 그대로 같은 드라마, 같은 영화의 썸네일 이미지 자체가 사용자마다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로맨스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는 커플이 포옹하는 장면이 썸네일로 뜨고, 코미디를 주로 보는 사람에게는 같은 작품이라도 배우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대표 이미지가 된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사용자가 콘텐츠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90초, 그 안에 시선을 붙잡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스크롤에 묻힌다.

 

흥미로운 건, 이 썸네일을 누군가가 하나하나 디자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한 편의 콘텐츠에서 수만 개의 프레임을 자동으로 추출하고, 클릭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미지를 자동 선택하며, 이 선택은 실시간으로 계속 바뀐다. 이것을 단순히 '기술'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ValueFormer에서 비즈니스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해온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기술 이전에 디자인 전략의 문제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략 안에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의 전환이 담겨 있다.

 

 

 

완성된 한 장 vs. 작동하는 구조

 

전통적으로 '좋은 포스터'란, 뛰어난 디자이너가 고민 끝에 내놓은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다. 구도를 잡고, 색감을 조율하고, 타이포그래피를 배치하여 작품의 본질을 한 장의 이미지에 응축시킨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다른 질문에서 출발했다. "최고의 포스터 한 장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모든 사용자 각각에게 최적의 이미지가 자동으로 도달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두 질문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전자는 결과물의 품질에 집중하지만 후자는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전 칼럼들에서 '관점의 구조'와 '구조로서의 디자인'을 다뤘는데, 넷플릭스의 썸네일은 그 연장선에서 한 가지를 더 보여준다. 디자인이 한 번의 실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스스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 — 이것이 디자인이 단순한 '제작'에서 '전략'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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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

 

 

 

넷플릭스의 포스터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이런 방식을 쓴 건 아니다. 2015년경까지는 영화 포스터나 DVD 커버를 그대로 썸네일로 사용했다. 넷플릭스의 기술 블로그에 따르면, 그 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극장용 포스터는 도로변 빌보드나 극장 로비에 맞게 디자인된 것이지, 모바일 화면의 작은 그리드 안에서 수십 개의 다른 작품들과 경쟁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문제는 포스터의 퀄리티가 아니었다. 아무리 훌륭한 포스터라도, '하나의 이미지가 모든 맥락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과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같은 이미지가 같은 매력을 가질 수 없다. TV 화면과 모바일 화면에서, 저녁 시간과 주말 오후에, 같은 이미지가 같은 효과를 낼 수도 없다.

 

넷플릭스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더 좋은 한 장'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스스로 최적화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디자인 전략적으로 흥미로운 이유는, 결국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정의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ValueFormer에서 우리가 '가치 형성(Value Forming)'이라 부르는 과정의 핵심도 이와 같다 — 보이는 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접근이 단순히 '자동화했다'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규모에 대한 부분이다. 넷플릭스에는 수천 편의 콘텐츠와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가 있다. 한 편의 드라마에서만 8만 6천 개 이상의 프레임이 추출된다. 이 조합을 사람이 감당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구조가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역량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디자인이 전략이 되는 순간

 

이 칼럼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관점을 디자인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디자인의 출발점이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글에서는 '구조를 디자인하라'고 했다. 표면이 아니라 이면의 구조를 보는 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넷플릭스의 썸네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디자인이 '전략'이라 불릴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다. 관점이 있고 구조가 있어도, 그것이 한 번의 실행으로 소진된다면 아직 전략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한 번 설계한 것이 반복적으로 작동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점점 더 정교해지는 구조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디자인은 전략의 영역에 들어선다.

 

넷플릭스의 썸네일은 작은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수억 명 각각에게 최적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밤새 고민하여 완성한 한 장의 포스터가 가진 가치도 매우 가치롭다. 다만 다른 관점에서 그 고민의 깊이와 감각이 구조 안에 녹아들어 반복적으로 작동할 때, 디자인은 제작을 넘어 전략이 된다. 그리고 그 전략의 설계가, ValueFormer에서 우리가 'Value Forming'이라 부르는 일의 본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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