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2024년 9월 23일 종가 기준) APR(에이피알)의 시가총액(5조 3756억 원)이 LG생활건강(5조 3336억 원)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이는 국내 뷰티 산업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의 평가는 단순한 기대감이 아닌,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폭발적인 실적 성장세에 뿌리를 둔다. 그 숫자들을 한번 살펴보자. 2022년 392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3년 1,041억 원을 기록하며 1년 만에 두 배 이상(약 165%) 증가한다. 그리고 그 성장세는 올해도 지속되고 있는데, 2025년 상반기 매출이 5,93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5.0% 성장이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상반기 전체 영업이익(약 1,494억 원)은 이미 6개월 만에 작년 연간 영업이익(1,041억 원)을 초과 달성했다.
APR은 경쟁사들이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독보적인 실적과 성장세를 입증한다. 전통 뷰티 기업들이 중화권 시장 의존도와 홀세일(Wholesale) 유통 구조의 한계로 흔들리는 시점에 APR이 단기간에 이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APR은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홈 뷰티 디바이스 등을 주력으로 하는 '뷰티 테크' 기업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 성장을 기여한 가장 중요한 브랜드는 바로 ‘메디큐브(Medicube)’. 2021년 메디큐브 내 홈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에이지알(AGE-R)'을 론칭하며, 현재의 폭발적인 성장의 핵심 동력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APR의 창업주이자 현 대표이사인 김병훈(1988년생)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인재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실직을 보고, '능력과 무관하게 라인 다툼에서 밀려 해고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닫고 "내가 지배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의 창업 여정은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APR 창업 전까지 그는 가상 착장 서비스 '이피다', 데이트 중개 앱 '길하나사이', 알람 앱, 커플 미션 앱, 소셜 커머스 등 5번에 걸친 실패를 경험한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남들이 안 하는 건 이유가 있다(블루오션은 데드오션일 수 있다)"는 값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 광고 대행업을 통해 제품 브랜딩과 마케팅의 힘을 체감하지만, 자신이 광고한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아 고객이 이탈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그는 이때 "직접 만들자"고 결심한다. 이 결심이 바로 2014년 APR의 전신인 '이노벤처스'의 설립과 천연비누 '매직스톤'을 첫 제품으로 내세운 화장품 브랜드 '에이프릴스킨' 론칭으로 이어진다.

김병훈 대표는 창업 초기 '에이프릴스킨' 외에도 패션 브랜드 '널디(NERDY)', 뷰티 브랜드 '포맨트', '글램디' 등 5~6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사업 영역을 넓힌다. 하지만 그는 곧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는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브랜드가 애플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히며, 이때부터 '메디큐브' 브랜드에 회사 역량을 집중한다. 그리고 2021년 메디큐브 내 홈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에이지알(AGE-R)'을 론칭하게 되었고, 이 브랜드의 성장으로 현재의 이례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는 3가지 전략이 있었다.
1. 홈 뷰티 디바이스 시장 선점과 혁신 (AGE-R 생태계)
APR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 홈 뷰티 디바이스이다. 2021년 '부스터 힐러' 출시로 뷰티 디바이스 시장에 진출한 APR은 20만~30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한다. AGE-R 제품군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은 2025년 6월 기준 400만 대를 돌파하며, 최근 5개월간 '매 13초마다 1대꼴'로 판매될 만큼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APR의 전략은 단순한 디바이스 판매를 넘어, 디바이스와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고마진의 화장품(소모품) 판매를 유도하여 고객을 자사 생태계에 ‘락인(Lock-in)’ 시키는 데 있다.
2. D2C 모델의 완성도와 고수익성 구조
APR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둥은 D2C(Direct-to-Consumer, 직접판매) 모델의 최적화이다. APR은 창립 이후 7년간 D2C 업계 1위를 목표로 자사 온라인몰 운영에 주력하며, 과거 매출의 70% 이상이 자사 온라인몰을 통해 발생한다. 이 D2C 모델은 중간 유통 단계를 제거하여 매출총이익률을 극대화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APR의 직전 12개월(TTM) 기준 매출총이익률은 75.06%에 달하며, 이는 경쟁사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압도적인 수익성 구조이다. 더 나아가, APR은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커머스 테크 기업'을 지향한다. '고객의 삶을 개선한다(Advance People Real life)'는 사명을 바탕으로, 자사몰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판매 데이터를 활용하여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2019년 하반기부터 IT 부서를 출범하고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등 국내 유수의 플랫폼 출신 개발자들을 영입하여 11 IT 역량을 강화하며, MZ세대를 겨냥한 후기형,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전개하는 기반을 구축한다.
3. '탈(脫) 중국' 전략과 글로벌 시장의 침투력
APR의 글로벌 전략은 기존 K-뷰티 기업들의 성공 공식이었던 중화권 집중을 탈피하고, 북미,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 D2C 방식으로 직접 침투하여 성공했다는 점에서 구조적 의의가 크다. APR은 합리적인 가격과 피부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는데, 그 결과 올 5월 미국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 검색 트래픽 TOP10 데이터에서 APR의 대표 브랜드 메디큐브가 40만 4,749건의 검색량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이러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성공에 힘입어 2025년 2분기 기준, APR의 해외 매출 비중은 ‘78%’ 를 기록한다. 이는 매출 구조의 글로벌 재편을 명확히 보여주며, 일본 시장에서도 메디큐브 5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19% 증가하는 등 시장 다각화에 성공하며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한다.
이번 사례를 살펴보며 느낀 것은 역시나 지금의 성공이 있기 전에 수많은 실패의 과정들이 쌓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주력하고 있는 홈 뷰티 디바이스 라는 것의 기술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APR이 AGE-R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이 리스크일 수도 있다는 것. 물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의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것 만큼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