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서울 성수동의 한복판에 SF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기이하고 독특한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새로운 사옥이자 복합 문화 공간인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다. 이 공간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소비자들은 쇼핑을 넘어선 예술적인 경험을 마주한다. 이곳에는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비롯하여 향에 집중한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 독창적인 디자인의 디저트를 선보이는 누데이크, 최근 론칭한 모자 브랜드 어티슈, 그리고 새로운 키친웨어 브랜드 누플랏까지 만나볼 수 있다.
2024년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매출액은 7,891억 원에 달하며, 영업이익은 2,338억 원을 기록하였다. 이는 제조업계에서 '꿈의 이익률'이라 불리는 30%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익률만 높은 것이 아니라 매출원가율은 또 엄청 낮다. 세계 최대 명품기업 LVMH가 32.4%인데,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작년 원가율은 15.7%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면, LVMH가 3배 남길 때, 젠틀몬스터는 6배를 남긴다는 것이다. 젠틀몬스터의 성공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40%를 해외에서 창출하였으며, 한국 매장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은 60~70%에 달한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소비 둔화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미국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성장이 전체 매출 상승을 견인하였다.
또, 최근 구글로부터 1,4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크게 인정받았다. 이는 구글이 과거 실패했던 스마트 안경 사업을 재개하며 젠틀몬스터의 독창적인 디자인 및 브랜딩 역량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기술과 패션이 결합된 새로운 웨어러블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은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준다. 젠틀몬스터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이식한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 역시 지난해 매출 1,600억 원을 달성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 보다도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 한국 브랜드. 종종 한국 브랜드인지 몰랐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젠틀몬스터의 시작은 매우 독특하였다. 창업자 김한국 대표는 금융 대기업을 그만두고 영어 교육 업체에 입사했다. 그리고 사내에서 신사업 공모전 같은 것이 열렸을 때, 김한국 대표는 ‘안경 사업’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당시 영어 교육 업체 대표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김한국 대표는 당시 시력 교정용 기능 제품으로 인식되던 안경을 패션 아이템으로 재정의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영어 교육 업체 사장님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5천만 원의 자본금으로 아이아이컴바인드가 탄생하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동안 다양한 투자를 받으면서 성장해온 ‘아이아이컴바인드’ 인데, 그 당시 영어 교육 업체의 사장이었던 오재욱 씨와 그 특수관계인들은 이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최대주주로 남아있다. 김한국 대표는 2대 주주.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고 지금까지 끌고온 김한국 대표도 대단하지만, 그 당시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투자를 했던 오재욱 대표도 대단다하는 생각이다.
김한국 대표는 자신의 경영 철학에 대해 “세상을 놀라게 하라”고 말한다. 그가 평범한 직장인이었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정말 찾기 어려운 김한국 대표의 인터뷰 중 유튜브 영상이 하나 있는데, 그 영상에서 김한국 대표는 100만 원으로 유럽을 횡단하며 구걸까지 해 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깨고 특별한 무언가를 시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3개월 만에 책 100권을 읽는 극한의 노력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에게 즐겁고 설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성공에 대한 철학을 심어주었다.
일반적인 한국의 안경 사업은 ‘납품업체’로서 전국 안경점 유통망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업을 안경업이 아닌 ‘브랜드업’으로 정의했다. 그렇기에 ‘젠틀몬스터’는 다르게 접근했다. 그 첫 시도가 2013년 서울 논현동에 연 쇼룸이었다. 마당에 배를 전시하고 뱃머리가 매장 벽을 뚫고 들어가는 기이한 연출은 곧 화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25일 간격으로 쇼룸의 전시를 바꾸는 ‘퀀텀 프로젝트’, 폐업한 목욕탕을 개조하거나 만화방을 재현하는 등 파격적인 공간 연출을 지속하였다.
2021년 문을 연 ‘하우스 도산’은 그 정점을 보여준다. 안경 매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초대형 설치 미술품으로 채워진 이 공간은 소비자들에게 '전시회'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경험을 극대화하였고, 이는 곧 SNS를 통해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도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한국 대표는 디자인팀에 패션, 주얼리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을 영입하여 기존 안경 업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제품들을 내놓았다. 또한 메종 마르지엘라, 몽클레르와 같은 해외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며 "서로의 정체성을 담아 시너지를 내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러한 형식 파괴적인 시도와 명확한 정체성은 젠틀몬스터를 유행의 가장 첨단에 선 '힙'한 브랜드로 만들었으며, K-패션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2022년 송길영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들이 가진 오랜 역사에 비해 젠틀몬스터의 역사가 짧다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없는 걸 아쉬워하면 뭐하겠어요. 우리 방식대로 역사를 만들고 있죠. 위대한 순간을 쌓으면 위대한 브랜드가 될 거라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