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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관 | 울산대학교 교수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AI는 건축과 디자인의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몇 줄의 텍스트만으로 건물의 형태와 분위기가 생성되고, 해외 플랫폼에서는 ‘자하 하디드’ 스타일이 가장 많이 검색되는 건축 키워드가 되었다. 건축이 이미지 중심으로 소비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AI 시대, 아시아가 고민해야 할 창의적 건축 디자인은 무엇인가?

 

Zaha Hadid Architects는 이미 생성형 AI를 설계 초기 단계에 적극 활용하며, 짧은 시간에 수백 개의 대안을 탐색하고 있다. AI는 사고를 확장하고 설계 효율을 높이며 창작 과정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빠른 생성 속도는 건축의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 건축의 창의성은 결국 시간이 축적된 이해, 그리고 깊은 고민과 해석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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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The studio is also working with Stable Diffusion >

 

 

 

최근 유행했던 AI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은 이러한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색감과 구도는 비슷했지만 지브리가 쌓아온 세계관·감성·장인정신은 담지 못한 채 일시적 유행으로 사라졌다. 자하 하디드의 곡선 조형 역시 AI가 시각적으로 모방할 수 있지만, 그 형태가 도시와 구조, 재료 속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는 따라갈 수 없다. 즉, 겉모습의 복제는 가능해도 건축 언어의 창조는 인간의 오래된 탐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AI에 대한 이슈는 국가나 지역마다 다르게 전개된다. 이 문제는 특히 아시아에서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구는 AI 시대의 위험을 저작권·윤리 문제에서 찾는다면, 아시아는 장소성, 재료, 기억, 공동체적 맥락의 약화를 더 크게 걱정한다. 아시아 건축은 자연·기후·지형·재료·사람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그 깊이는 연산만으로 대체될 수 없다. 건축의 언어를 새로 쓴 건축가들의 사례를 보아도 분명하다. 시게루 반은 종이 튜브를 구조재로 승화시켜 재난 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프라이 오토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 공간을 구현하는 경량 장력 구조를 개척했다. 류자쿤은 지진 잔해를 재생 벽돌로 재해석해 지역의 상흔과 기억을 건축에 담아냈다. 이들의 혁신은 화려한 형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재료와 장소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지속적인 고민과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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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프라이 오토 >

 

 

 

필자의 연구 또한 이러한 시선과 맞닿아 있다. 울산의 낙엽과 노을의 시간성을 건축적 표면으로 번역한 ‘영속적인 황금잎(The Perpetual Golden Leaf)’ 외장재는 자연의 순간과 산업 도시의 풍경을 하나의 패널 안에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이는 단순한 마감재 개발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과 지역성을 재료로 치환하려는 디자인적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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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영속적인 황금잎(The Perpetual Golden Leaf)’ 외장재 >

 

 

 

이러한 과정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AI는 종이 튜브, 텐션 구조, 재생 벽돌, 황금잎 패널의 외형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재료가 등장한 이유, 축적된 시간, 반복된 실패와 실험의 흔적은 재현할 수 없다. 재료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은 인간의 깊은 사고와 판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AI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AI는 창의성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창의성을 확장하는 기술이다. 핵심은 AI를 단순한 ‘이미지 생성기’로 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과 조합을 탐색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인지의 선택이다. AI가 넓혀주는 탐구의 폭은 건축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인간의 깊은 해석과 경험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새로운 건축 언어가 탄생한다. 

 

AI 시대에 아시아가 지켜야 할 창의적 건축 디자인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과정의 진정성, 기술의 자동화가 아니라 사람·자연·문화에 대한 해석, 모방이 아니라 자기만의 건축 언어를 구축하는 태도이다. AI가 제공하는 광범위한 가능성 위에 건축가의 깊은 고민과 축적된 이해가 더해질 때, 비로소 AI 시대의 아시아 건축은 진정한 ‘창의적 건축’을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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