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 Photo by Zulfugar Karimov on Unsplash >
AI가 디자인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우리는 사소한 궁금증이 생길 때도 자연스럽게 검색어를 입력하기보다 AI와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이미 AI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단순히 답을 얻는 수준을 넘어 사고의 과정 자체가 단축되고 있으며 우리는 점점 더 무비판적으로 결과를 수용하는 습관에 익숙해지고 있다. 만능처럼 보이는 AI는 동시에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윤리적 책임에 대한 질문이다. 디자인은 더 이상 단순히 그리는 행위가 아니다. 이제 디자인은 생성하고, 수용하며, 혹은 거부하는 선택의 과정이다. 만약 AI가 설계한 제품이 오류를 일으키거나 사회적 편향을 강화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것은 알고리즘에게 있는가, 아니면 데이터를 제공하고 최종 결과물을 승인한 디자이너에게 있는가.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결정을 이미 AI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무의식적인 편향 (Unconscious Bias)
디자인 분야에서 AI가 제기하는 첫 번째 윤리적 문제는 무의식적인 편향이다. AI는 학습된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데이터 속에 내재된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을 그대로 재현한다. 따라서 AI가 제시하는 ‘최적의 답’은 사실상 편향된 답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 음식을 요리하는 할머니를 묘사하면 비교적 정확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러나 단순히 ‘부엌에서 전통 음식을 요리하는 할머니’를 요청하면 결과물은 서구 문화권의 부엌을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AI 학습 데이터가 특정 문화권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 Generated by Midjourney(Prompt) : 좌) a grandmother in the kitchen cooking traditional food 우) a Korean grandmother wearing traditional hanbok, cooking kimchi in a Korean-style kitchen >

< Generated by Midjourney(Prompt) : premium minimal industrial design for a portable speaker >
휴대용 스피커의 디자인을 요청했을 때 AI가 대표적인 브랜드인 B&O를 닮은 형태를 반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편향은 이미지 결과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모빌리티 디자인의 경우를 살펴보면, AI는 탑승자의 신체 조건이나 운전 패턴을 고려해 좌석 형태와 에어백 위치를 최적화한다. 그러나 학습 데이터에 특정 인종이나 성별, 혹은 임산부와 같은 비표준적 사용자 정보가 부족하다면 AI가 제시하는 효율적 설계는 일부 사용자에게만 안전과 편의를 제공한다. 반대로 소외된 집단에게는 불편함이나 심지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얼굴 인식 서비스나 의복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 Generated by Midjourney(Prompt) : A woman on the cover of a high-fashion magazine >
특정 인종이나 체형이 기준으로 학습되면 다른 집단은 반영되지 못하고, 결국 왜곡된 표준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편향은 단순히 미적 결과물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거나 특정 집단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문화적 다양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면 세계는 점점 더 단일한 미학과 편향된 기준에 갇히게 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AI가 제시하는 형태의 미학을 넘어 그 안에 숨어 있는 윤리적 맹점을 발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모호해진 저작권과 책임 (Blurred Authorship and Shifting Responsibility)
AI의 도입은 저작권과 책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2024년 Figma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디자이너의 59%가 워크플로우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제시한 결과물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32%에 불과하다. 이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여전히 결과물을 수정하거나 검증해야 함을 의미한다.

<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이러한 변화는 책임의 위치가 창작자에서 관리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AI가 만든 디자인이 시장에서 실패하거나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최종적으로 결과를 승인하고 시장에 내놓은 디자이너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임의 소재가 복잡해지면서 윤리의 위치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제 질문은 ‘윤리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어디에 놓여야 하는가’로 모아진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만든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고 승인한 사람으로서 윤리적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프로젝트의 성패를 넘어 그 결과가 사회에 미칠 파급력까지 고려해야 하며 기술적 검증뿐 아니라 윤리적 검증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해야 한다.
디자이너의 존재 이유

<진화하는 Double Diamond Design Process : Impact Space>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에 추가된 ‘측정’과 ‘평가’ 단계는 윤리적 책임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선이다. 디자이너는 제품 출시 이후에도 그 디자인이 사회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의 가치와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적 가치가 충돌할 때 디자이너는 후자를 선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결국 AI는 책임을 질 수 없다. AI는 도구일 뿐 윤리적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AI에 내어주지 않고 디자이너가 관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곧 윤리적 리더십을 확보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AI 시대의 디자인 교육은 단순히 프롬프트 활용법을 가르치는 수준을 넘어 비판적 AI 리터러시를 다루어야 한다. 더 나아가 디자인 교육은 기술적 숙련뿐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과 도덕적 성찰을 함께 요구한다.
디자이너는 단순한 창작자를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와 문화를 조율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 미래의 디자이너는 기술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디자이너의 선택은 단순한 상품의 완성도를 넘어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사회의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힘을 가진다. 따라서 윤리적 리더십을 갖춘 디자이너는 단순한 창작자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책임지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디자이너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변화 속에서 조정자이자 비평가로서 역할을 확장해야 하며, 이는 곧 디자인을 사회적 합의의 도구로 만드는 과정이다.
AI는 무한한 창의성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인류의 디자인 역사가 직면한 가장 복잡하고 무거운 윤리적 경계선을 남겼다. 선택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기계가 내린 선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는 “무엇을 디자인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미래의 디자이너는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공정하고 책임 있는 사회를 설계하는 윤리적 전략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는 곧 디자인이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적 약속이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