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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AI가 완벽한 효율과 흠 없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손맛이 남은 불완전함에 끌린다. 디자인의 언어는 더 이상 매끄러운 표면과 정교한 계산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미묘한 떨림과 흔적을 통해 진정성을 전한다. 완벽함을 넘어서는 감정, 그것이 디지털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아날로그적 가치의 본질이다. 앞선 세 편의 칼럼에서 우리는 AI가 디자인 프로세스의 속도와 효율을 혁신하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윤리적, 감각적 도전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디자이너가 마주한 질문은 조금 다르다. AI가 계산할 수 없는 영역, 즉 인간 고유의 불완전성에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이다. 이 아날로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은 단순히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 소비자가 갈망하는 감성적 연결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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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im Rashid : Sketch of my livingroom for interior design magazine 2010 >

 

 

 

불완전함의 매력과 희소성

 

AI는 논리적 완벽성을 추구하며 흠 없는 형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획일화된 복제물에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그래서 최근의 디자인 흐름은 대량생산의 매끈함보다 손으로 빚은 질감, 우연한 비대칭에서 드러나는 개성을 가치로 본다. 이는 획일화된 미학에 대한 반작용이자 복제 불가능한 개체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다. AI가 정교한 대칭을 완성할 때 숙련된 장인의 손끝에서 생기는 미세한 떨림과 불균형은 오히려 감정의 증거가 된다. 그 흔적이 곧 공감의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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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ramic Collection, LRNCE, The Conran Shop >

 

 

 

예를 들어 수공예 도자기가 기계로 찍어낸 제품보다 비싼 이유는 기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휴머니즘의 흔적’ 때문이다. 이 불완전함은 희소성으로 이어지고, 대량생산된 제품이 가질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을 만든다. 디자이너가 이런 불완전함을 의도적으로 디자인 요소로 활용할 때 제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말을 거는 살아 있는 오브제가 된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AI의 효율적 결과물에 맞서 ‘감성적 일품’을 창조하는 장인의 정신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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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nran Shop Face Vase Terracotta >

 

 

 

진정성과 세월의 흔적이 담긴 이야기

 

디자인은 효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속도와 생산성이 극대화된 시대일수록 ‘시간’은 새로운 감성 자원으로 작동한다. AI가 즉각적인 결과를 내놓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느림의 미학과 시간의 축적은 오히려 희귀한 가치가 된다. 아날로그적 가치는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만지는 시간’, ‘깎는 과정’, ‘기다림의 서사’를 포함한다. 이 서사는 돈이나 효율로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의 구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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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ooks England Saddle: Photo Credit Nathan Pipenberg (via REI.com) >

 

 

 

세월이 흐를수록 색이 깊어지고 손때가 묻을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천연 가죽과 원목 소재가 다시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디자인은 이제 완성된 형태보다 사용자와 함께 변화하고 노화하는 과정을 미적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패스트 디자인’에 대한 반작용이며,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물건을 원하는 소비자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다. 우리가 낡은 가죽 지갑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쌓인 감정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AI가 1초 만에 만드는 이미지에는 이 ‘세월의 축적’을 담을 수 없다. 디자이너는 제품의 노화를 아름답게 설계하고, 시간의 흔적을 디자인 언어로 변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느린 디자인’의 철학이며,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또 다른 방향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의 새로운 주도권

 

이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AI 시대 디자이너의 감각을 단련하는 해답이 된다.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밤새워 목업을 만들고 스케치를 반복하며 실패를 경험하는 과정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다. 차가운 플라스틱과 따뜻한 나무를 직접 만지고, 미세한 차이가 감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이런 ‘몸의 지식’은 AI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인간 디자이너만의 무기다. AI가 아무리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도 ‘이 소재가 사용자에게 가장 따뜻한 감각을 줄 것이다’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디자이너의 경험과 감각이다.

 

AI는 훌륭한 도구지만 그 효율성에 압도되어 인간의 본질적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디자이너는 기술의 정교함과 인간의 진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조율자다. AI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대일수록, 디자이너는 그중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거부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의 축이 바로 인간적인 감정과 손의 흔적이다. 미래의 디자이너는 기술이 아닌 감각으로 시대를 해석하고, 손맛이 남은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인간적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디자인은 단순히 효율적인 형태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감성을 지켜내는 약속이 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아날로그적 가치의 재발견은 결국 AI 시대, 인간 디자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자 앞으로의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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