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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브랜드 최예나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새로 산 아이폰 박스를 열었을때의 그 느낌을 기억하는가? 그 순간을 잠시 떠올려보자. 박스 뚜껑을 들어 올릴 때 느껴지는 그 부드러우면서도 절제된 저항감. 마치 진공 밀봉된 듯한, 계산된 마찰력. 그리고 마침내 열렸을 때의 그 만족스러운 '쉭' 소리.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애플의 패키지 엔지니어링 팀은 이 0.3초의 경험을 위해 수개월간 테스트를 반복한다. 그들이 설계하는 것은 단순한 '박스'가 아니라, 소비자의 뇌에 '프리미엄'을 각인시키는 촉각적 메시지다. 최근 프로젝트로 진행한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의 리패키징 프로젝트에서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동일한 제품을 두 가지 다른 텍스처의 용기에 담아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하나는 매끄러운 플라스틱, 다른 하나는 미세한 엠보싱이 들어간 매트 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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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놀라웠다. 매트 마감 용기를 만진 소비자들은 제품의 품질을 현저히 더 높게 평가했고, 같은 내용물임에도 가격 추정치를 상당히 더 높게 책정했다. 손끝의 2초가 지갑을 여는 결정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인간의 촉각 수용체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다. 손가락 끝에는 약 100개의 촉각 수용기가 1cm² 면적에 분포되어 있으며 (출처: Johansson & Vallbo, 1979, Journal of Physiology), 전체 손가락 끝에는 약 250개의 기계수용기가 1cm²당 존재한다 (출처: ScienceDirect, 2017). 이는 시각 다음으로 많은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감각 채널이다.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촉각이 시각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고 감정적인 뇌 영역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정'으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특정 재질을 만졌을 때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이나 거부감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 원리를 가장 잘 활용한다. 샤넬의 립스틱 케이스를 생각해보자. 무게감 있는 금속,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표면, 뚜껑을 닫을 때의 정확한 '딸깍' 소리와 함께 오는 촉각적 피드백. 이 모든 것이 '나는 지금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손끝을 통해 뇌에 전달한다. 반대 사례도 분명하다. 몇 년 전 한 화장품 브랜드가 가격 경쟁력을 위해 용기 재질을 다운그레이드했다. 성분은 동일했지만 매출이 급감했다. 소비자들은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지만, 손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싸구려 느낌'이 구매 의욕을 꺾어버렸다. 이 전 작업인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프로젝트에서는 패키지 표면에 미세한 벨벳 코팅을 적용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부드러운 텍스처는 긍정적인 정서 반응을 유발하고, 이는 제품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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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매장에서의 '터치 앤 필(Touch and Feel)' 행동은 구매 결정에 결정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제품을 물리적으로 만지는 것은 더 높은 구매율과 연결되어 있다 손끝의 0.5초 경험이 구매 확률을 상당히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 글로벌 맥주 브랜드는 캔 표면에 특수 엠보싱을 적용해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을 강화했다. 실제 온도는 동일했지만, 소비자들은 이 제품이 더 시원하다고 느꼈다. 촉각이 온도 인식까지 왜곡시킨 것이다. 최근 트렌드는 '햅틱 브랜딩(Haptic Brand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을 넘어, 브랜드만의 고유한 촉각 시그니처를 만드는 것이다. 티파니의 블루박스를 만졌을 때의 그 두툼한 종이 질감, 루이비통 가방의 특유의 가죽 결. 이것들은 모두 시각적 로고만큼이나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다.

 

반면 친환경 식품 브랜드에서는 재활용 펄프 소재의 거친 텍스처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거친 표면은 저가 제품으로 인식되지만, 친환경 컨텍스트에서는 정반대로 작용한다. '자연스러움', '진정성',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메시지를 손끝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실제로 동일한 가격대의 경쟁 제품과 비교했을 때, 소비자들은 거친 텍스처의 제품을 더 '프리미엄 친환경 제품'으로 인식했다. 맥락이 촉각의 의미를 완전히 재정의한 사례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프리미엄 향수를 매트하고 무게감 있는 유리병에 담았다면, 박스 역시 그에 상응하는 촉각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병은 고급스러운데 박스가 얇은 판지라면? 그 순간 브랜드 신뢰도는 무너진다.

 

화장품 패키징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의 제품 평가는 주로 시각적 인식(60%)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촉각적 인식도 30%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 달간의 사용 후에는 촉각이 시각보다 더 중요해지며, 더 오래 지속되는 긍정적인 제품 경험을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무리 패키지 디자인이 아름다워도, 손에 잡는 순간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을 준다면 그 브랜드는 실패한다. 반대로 시각적으로는 평범해도 손끝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정확하다면, 그 제품은 소비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촉각 심리학을 브랜딩에 적용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재질'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소비자의 손끝을 통해 직접 뇌에 각인시키는 전략적 선택이다. 우리는 눈으로 제품을 보지만, 손으로 가치를 느낀다. 그리고 그 2초의 촉각 경험이 구매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성공적인 브랜딩은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사이의 완벽한 조화에서 탄생한다. 다음 번 매장에서 제품을 집어 들 때, 당신의 손끝에 주목해보라. 그 순간 당신의 뇌에서는 이미 구매 결정이 내려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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