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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소리 김도영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K-디자인 어워드> 창설자

 

 

 


 

 

 

모든 브랜드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계기나 취향의 표현일지라도, 그것이 브랜드의 서사로 발전하면 정체성이 된다. 오늘날 소비자는 제품보다 ‘이야기’를 구매한다. 기능은 금세 복제되지만, 스토리는 복제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들고, 브랜드의 방향을 정의한다. 작은 브랜드가 시장에서 존재감을 가지려면 먼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다니엘 웰링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브랜드의 시작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창립자 필립 타이산더(Philipp Tysander)는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한 영국 신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는 낡은 나토 스트랩에 클래식한 빈티지 시계를 차고 있었고, 그 모습에서 ‘절제된 세련미’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신사의 이름이 바로 다니엘 웰링턴(Daniel Wellington)이었다. 그 한 장면의 인상과 이야기가 브랜드의 핵심 철학이 되었다. ‘시간을 꾸미지 않는다. 시간을 담는다.’는 철학 아래, 다니엘 웰링턴은 복잡한 기능 대신 간결한 디자인과 클래식한 무드를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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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다니엘 웰링턴 >

 

 

 

흥미로운 점은, 다니엘 웰링턴이 거대한 자본을 가진 브랜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대량 생산된 저가 시계에 가까웠지만, 창립자는 제품이 아닌 ‘스토리’를 팔았다. 그는 SNS 시대의 문법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했다. 브랜드의 이야기를 인플루언서와 고객의 콘텐츠로 확장시킨 것이다. 다니엘 웰링턴의 마케팅은 광고보다 ‘공감’을 선택했다. 제품 사진보다 시계를 착용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시계를 구매할 때 단순히 디자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을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스토리 중심의 전략은 브랜드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불과 몇 년 만에 다니엘 웰링턴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개의 시계를 판매하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시계의 기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과 태도에 반응했다. 스토리는 제품을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를 존재하게 하는 본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킨케어 브랜드 이솝(Aesop) 역시 스토리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한 대표적 예다. 이솝은 제품의 성능보다 ‘감각의 서사’를 브랜드의 중심에 두었다. 광고를 하지 않고, 향과 질감, 패키지, 매장 공간, 그리고 언어를 통해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한다. 매장마다 인테리어가 모두 다른 이유도 그 지역의 문화와 맥락 속에서 ‘공간의 이야기’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제품을 구매하는 순간조차 철저히 ‘경험의 문장’으로 연출된다. 매장에는 판매 문구 대신 철학적인 문장이 걸려 있고, 제품 설명조차 마치 문학 텍스트처럼 서정적이다. 소비자는 이솝의 크림을 바르며 단순히 피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제안하는 ‘태도와 감각의 세계’에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 이솝은 화려한 마케팅 없이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브랜드 충성도를 가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솝의 사례는 브랜드의 스토리가 반드시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향, 언어, 경험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야기를 말하는 브랜드는 많지만, 이야기를 ‘살게 만드는’ 브랜드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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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

 

 

 

이러한 브랜드 스토리의 힘은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Asia Design Prize)의 여정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는 오직 하나의 가치, ‘공정한 심사(Fair Reviews Only)’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수많은 디자인 어워드가 화려한 시상식과 규모를 내세울 때,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자신을 정의했다. “오직 공정한 심사.” 그 단순한 스토리가 브랜드의 근본적인 신뢰를 쌓았고, 결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자인 어워드로 자리 잡게 했다. 공정성은 단순한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였다. 심사위원 선정부터 평가 방식, 결과 공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공정함은 절대적인 기준이자 정체성이었다. 그 원칙은 브랜드의 언어와 비주얼, 심사 가이드라인, 시상식 운영 방식에까지 일관되게 반영되었다. 그 결과,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는 ‘누가 상을 받았는가’보다 ‘가장 공정한 심사로 평가받았다’로 기억되는 드문 브랜드가 되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인 힘이 브랜드의 신뢰를 완성시킨 것이다.

 

스토리는 브랜드의 뼈대이자 철학의 언어다. 제품이 사라져도 스토리는 남는다. 다니엘 웰링턴이 그랬듯,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가 그러하듯, 브랜드를 정의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태도다. 작지만 단단한 스토리를 가진 브랜드만이 세대를 넘어 기억된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로 정체성을 세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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