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미국판 원효대사 해골물일까? 해골이 그려진 캔으로 물 시장을 점령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다. "Murder Your Thirst(갈증을 살해하라)"라는 슬로건과 펑크 록 미학이 가미된 캔 디자인은 언뜻 보면 물이 아니라 맥주 혹은 독약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파격적인 이미지가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고, 리퀴드 데스는 2024년 3월 기준 기업 가치 14억 달러(약 1조 9천억 원)를 인정받으며 유니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이들은 2023년 소매 판매액 2억 6,300만 달러에 이어, 2024년 매출 3억 3,300만 달러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존 생수 브랜드가 건강과 순수성을 내세울 때, 리퀴드 데스는 건강한 제품에 정크 푸드나 알코올에서 볼 수 있던 엣지 있고 반항적인 미학을 부여하여 전통적인 마케팅에 지친 젊은 세대(밀레니얼 및 Gen Z)에게 '쿨하게' 수분 보충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상징을 성공적으로 판매했다.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창립자 마이크 세자리오(Mike Cessario)의 이력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전직 넷플릭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펑크 록 및 헤비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던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다. 창업 아이디어는 2008년 음악 축제 Warped Tour에서 나왔다. 세자리오는 밴드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스폰서 요구에 따라 맥주 캔과 유사한 용기에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이 통찰은 '건강한 내용물에 쿨한 포장'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는 곧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문화와 영역 속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강력하고 독창적인 브랜드 DNA를 구축하는 핵심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리퀴드 데스가 주류 음료 시장을 뒤흔들며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에는 5가지 핵심 전략이 있었다.

1. 광고를 엔터테인먼트로 전환 : 전통적인 유료 광고 대신,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싶어 하는 충격적이고 유머러스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 덕분에 매출의 12%라는 낮은 마케팅 비용으로도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높은 효율성을 달성했다.
2. UGC(User-Generated Content) 생태계 구축 : 팬들에게 데스 메탈 노래 제작, 캔 디자인 공모, 극적으로 물을 마시는 '드라마틱 음수 영상' 등을 만들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단순 소비자가 아닌 브랜드 스토리의 '공동 협력자'로 전환되었고, 무료 구전 효과를 극대화했다.
3. #DeathToPlastic, 진정성 있는 사명 : 플라스틱 오염에 반대하는 환경적 사명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무한 재활용이 가능한 알루미늄 '톨보이' 캔을 사용했다. 나아가 캔 워터 판매 수익의 10% 를 환경 보호 단체에 기부하는 명확한 정책을 통해 반항적인 외피 속에 윤리적 진정성을 확보했다.
4. 시각적 차별화 및 충격 : 맥주나 에너지 드링크와 같은 16.9 온스 '톨보이' 캔과 해골 이미지 를 통해 물을 마시는 행위에 '쿨함'과 '반항'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사교 모임에서 알코올 없이도 돋보이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했다.
5. 옴니채널 유통 정복: 아마존 DTC(Direct-to-Consumer)로 시작하여 바이럴 수요를 증명한 후, 이를 지렛대로 삼아 Target, Walmart, Kroger, 7-Eleven 등 미국 전역의 주요 대형 리테일 채널을 빠르게 장악했다. 현재 전 세계 13만 3천 개 이상의 매장에서 판매되며 시장 접근성을 확보했다.
리퀴드 데스는 현재 국내에도 정식 수입되어 온·오프라인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2025년 8월경부터는 GS25 편의점에서도 판매를 시작하며 접근성을 넓혔다. 이보다 앞서 리퀴드 데스는 국내 최초로 서울 더현대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는데, 이는 미국 Gen Z 세대가 열광하는 이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직접 소개하고 문화적 접점을 확보하여 바이럴 모멘텀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리퀴드 데스의 성공은 새로운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들은 단지 물을 판 것이 아니라, 문화적 관련성과 정체성을 팔았다. 브랜드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고객의 정체성을 담고 고객이 기꺼이 참여하고 공유하는 '문화적 경험'으로 설계한 것이 바로 1.4조 원짜리 비즈니스를 만든 핵심 비결이다.

리퀴드 데스 현상은 현대 CPG(Consumer Packaged Goods) 마케팅의 성공 방정식을 재작성했다. 이들의 성공은 기업들이 제품을 팔기 전에 엔터테인먼트를 팔아야 한다는 명확한 교훈을 제시한다. 그들은 제품의 우수성 대신, 브랜드의 정체성을 고객의 정체성과 강력하게 연결시켜 단순한 소비 행위를 문화적 참여와 소속감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리퀴드 데스의 전략은 유료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고객이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토론하고 싶어 하는 스토리와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마케팅 자원을 집중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마케팅 비용 대비 높은 투자 회수율을 달성하며, 브랜드의 성공이 더 이상 전통적인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문화적 관련성(Cultural Relevance)과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에 의해 좌우됨을 보여준다.
리퀴드 데스의 미래 성공은 문화적 충격과 환경적 책임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축을 얼마나 균형 있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품 확장은 수익성을 담보하고, 지속적인 엔터테인먼트 제공과 UGC 중심의 커뮤니티 전략은 '쿨함'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영원히 '살해당하지 않도록' 지켜줄 핵심 전략이다. 리퀴드 데스 현상은 기존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소비자 관계를 구축하려는 모든 기업에 중요한 전략적 청사진을 제공한다. 이들은 제품의 기능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분리하지 않고, 반항적인 외피와 진정성 있는 사명을 결합하여 현대 소비자의 복잡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만들고 있는 브랜드는 어떤 문화와 연결 지을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