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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더넛츠 송창렬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2025년 김동률님의 ‘산책’ 콘서트를 보고 나오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긴 여운이 따라붙었다. 기술이 일상의 리듬을 다시 쓰고 AI가 감정의 구조까지 예측하는 시대에, 인간이 만든 음악이 이렇게까지 강한 ‘잔향’ (잔향은 2004년 4월에 발매된 그의 4번째 정규 앨범인 토로(吐露)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을 남긴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콘서트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음속에서는 묘한 대비가 일어났다. AI는 매일 더 똑똑해지고 더 정확해지고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방금 눈앞에서 마주한 이 공연은 그 모든 흐름의 반대편에서 고요하게, 그러나 압도적으로 서 있었다. 효율은 없었고, 편리함도 없었다. 대신 곡을 쌓아온 세월, 한 음을 지키기 위해 버틴 시간, 음악을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었다.

 

요즘 우리는 기술의 속도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원하면 곡을 만들고, 영상을 생성하고, 모든 순간을 손쉽게 기록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김동률은 공연 시작 순간부터 그 익숙함을 완전히 끊어냈다. 그는 초반에 “이 공연은 몸과 마음으로 즐겨주시고, 핸드폰이 아닌 기억에 남겨달라”고 말하며 모든 촬영을 금지했다. 순간을 남기려는 본능의 시대에 순간을 ‘살아달라’고 요청하는 공연. 기억의 심지를 밝히고 기계의 렌즈를 내려놓게 만든 태도. 마치 오래전 청음회에 들어온 듯한 무대였다. 소비가 아닌 체험, 저장이 아닌 체류, 기록이 아닌 감각을 선택하게 하는 공연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AI 시대, 잃어가던 감각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이어 “저는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주면 감사하고, 몰라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기술이 빼앗아갈 수 없는 인간적 지속의 방식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결과나 인정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 더 빠르고 정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시대에, 그는 더 깊고 느린 질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런 방식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집요함, 고집, 실패와 재도전이 쌓여 만들어내는 ‘삶의 결’은 데이터로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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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뮤직팜 >

 

 

 

그리고 공연 막바지, 고 서동욱님의 사진과 함께 “사랑하는 나의 벗 동욱이를 보내며”라는 문장이 스크린에 떠올랐을 때 공연장은 단숨에 숙연해졌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는 관객까지 있었다. 기술은 감정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상실을 대신 느껴줄 수는 없다. 누군가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이 깊고도 아린 감정,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떨리는 심장을 느끼며 연결되는 이 경험야말로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예술이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이 순간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감정적 진실이었다. 스크린에 떠오른 문장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서로에게 닿는 통로였고, 그 울림이 객석을 흔들고 공연을 하나의 거대한 호흡으로 묶어냈다. 그 장면은 AI가 넘을 수 없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올해 2월 진행했던 고 서동욱님의 추모 공연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선택이었는지, 그 순간 다시금 깊게 느껴졌다. 

 

AI는 생성하지만 인간은 축적한다. AI는 최적해를 계산하지만 인간은 본질의 가장 깊은 층에 도달한다. AI는 패턴을 모방하지만 인간은 감정을 살아낸다. 그래서 인간의 창작에는 여전히 기계가 넘어올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김동률의 음악은 그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그의 목소리와 연주의 결 속에는 인간의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감정의 무늬와 기억의 체온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오래된 시간의 결들이, 먼지 같은 디테일들이 모여 결국 ‘김동률’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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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뮤직팜 >

 

 

 

그래서 나는 김동률이 기술 시대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아무리 확장되어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기준점 같다. 인간의 감정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 예술이 출발하는 자리, 느림과 깊이가 여전히 가치가 되는 자리. 그 자리는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미래일수록 더 절실해질 자리다. 기술이 확장될수록 인간의 고유함은 더욱 희소해지고, 그 희소성은 더 큰 울림을 만든다. 김동률은 그 희소성을 가장 조용하고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해 보였다. AI로 무엇이든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어렵게 만들 것인가’이다. 무엇을 깊게 만들고, 무엇을 정성으로 남기고, 무엇을 인간의 시간으로 쌓아올릴 것인가. ‘산책’은 그 질문을 품격 있게 던진 공연이었다. 그래서 이 콘서트는 감탄으로 끝나는 공연이 아니라 사유가 시작되는 공연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김동률님의 노래, 말과 눈빛, 말투, 몸짓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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