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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교수

 

 

 


 

 

 

현대 디자인의 역할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나 기능을 ‘발명’하는 데만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형태와 익숙한 스타일을 정교하게 재구성하여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고, 구매 의도와 행동을 끌어내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디자인의 경쟁력은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물건을 이전과 전혀 다른 대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대부분 칼과 수저를 보관하는 도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음식물 처리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고 있으며, 화장품 패키지가 무엇을 담는 물건인지도 이미 알고 있다. 이 제품들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제품은 기능을 이해한 순간보다 바라본 순간 먼저 갖고 싶어진다. 필요성을 따지기 전에 그것이 놓일 공간을 상상하게 하고, 사용하기 전부터 달라질 생활의 장면을 그리게 한다. 그렇다면 소비자에게 “갖고 싶다”고 말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수상작 세 작품은 그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기능의 새로움 그 자체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능을 어떤 형태와 감각, 장면으로 구현했는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방 도구를 가구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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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ife car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Knife care는 칼과 가위, 수저와 커트러리를 하나의 멀티케어 박스 안에서 살균하고 건조하며 보관하는 제품이다. UV LED 살균, 열풍 건조, 전동식 칼갈이, 물받이 구조와 같은 기능을 결합해 주방 도구를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제품의 우수성은 여러 기능을 하나의 상자 안에 넣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지점은 주방의 위생 기기를 ‘보관해야 할 제품’이 아니라 ‘드러내어 놓을 수 있는 오브제’로 전환했다는 데 있다. 제품의 기본 구조는 단순한 박스 형태다. 여기에 테두리와 모서리를 잇는 크롬 장식선을 더하고, 하단에는 가구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조형을 적용했다. 전면의 LED 화면 역시 사용하지 않을 때는 완전히 감춰진다.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에는 가전제품 특유의 기계적인 인상을 지우고, 정돈된 하나의 가구처럼 공간 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링은 매우 전략적이다. 살균과 건조라는 기능은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가 매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살균 과정 자체가 아니라 제품이 주방 위에 놓였을 때 만들어지는 인상이다. Knife care는 보이지 않는 위생의 가치를 크롬의 정교함과 가구적인 비례, 감춰진 인터페이스를 통해 시각적으로 번역한다. 결국 소비자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살균 기능만이 아니다. 이 제품을 통해 더욱 위생적이고 정돈된 주방을 유지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전문적으로 관리되는 생활의 장면을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Knife care는 기능의 신뢰를 형태의 품격으로 치환함으로써 구매의 이유를 만들어낸다.

 

 

 

처리해야 할 기계를 곁에 두고 싶은 가전으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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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IX The Flender Food Waste Disposer, ASIA DESIGN PRIZE 2024 Grand Prize >

 

 

 

음식물 처리기는 소비자가 기능적으로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가까이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제품에 가깝다. 음식물 쓰레기와 냄새, 소음과 부피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식물 처리기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기능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제품을 둘러싼 부정적인 인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MINIX The Flender Food Waste Disposer는 이 문제를 크기의 축소와 감성적인 스타일링으로 해결한다. 1인에서 2인 가구의 작은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동급 제품보다 작은 크기로 좁고 복잡한 주방에도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분쇄와 건조 방식을 적용해 관리의 편의성을 높이고, 자주 사용하는 도어 버튼을 전면에 배치해 직관적인 사용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제품을 갖고 싶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작다’는 물리적 사실에 머물지 않는다. 전면과 후면을 둥글게 처리한 형태는 실제 부피보다 제품을 더욱 작고 부드럽게 인식하게 한다. 매트한 베이지와 그레이지 색상은 기계적인 존재감을 줄이고, 다양한 주방 인테리어 안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게 한다. 상단의 도어와 조작부, 필터 커버는 사용 순서에 따라 정돈되어 기능적 안정감까지 만들어낸다. 여기서 라운드 형태와 뉴트럴 컬러는 단순한 유행의 적용이 아니다. 음식물 처리기를 불쾌한 잔여물을 다루는 기계에서 작고 친근한 생활가전으로 바꾸는 감정적 장치다. 소비자는 제품의 형태를 통해 사용 과정의 번거로움과 불쾌감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실제 기능을 경험하기 전부터 디자인이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MINIX The Flender가 제안하는 ‘공간의 자유’ 역시 단순히 제품이 차지하는 면적의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기 싫은 기계를 감춰야 하는 부담, 복잡한 주방에서 설치 장소를 고민해야 하는 부담, 생활 공간의 분위기가 흐트러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부터의 자유에 가깝다. 이 제품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능과 함께 작은 생활을 더 정돈되고 여유롭게 만드는 이미지를 판매한다. 소비자는 하나의 가전을 구매하지만, 그 선택을 통해 더 간결하고 감각적인 주방 생활을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버려지는 용기에서 오브제로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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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FA Growth Ring Cosmetic Packaging, ASIA DESIGN PRIZE 2024 Winner >

 

 

 

ZFA Growth Ring Cosmetic Packaging은 화장품을 담고 진열하는 패키지에 축음기의 형태를 결합한 작품이다. 화장품 케이스이면서 블루투스로 휴대전화와 연결되는 음악 플레이어이고, 감정을 기록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층별 서랍에는 화장품 컬렉션이 배치되어 일상의 메이크업 과정을 편리하게 만든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화장품 패키지의 역할을 제품의 전달과 보호에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패키지는 내용물을 꺼낸 순간 기능의 대부분을 상실한다. 반면 ZFA Growth Ring Cosmetic Packaging은 포장을 버려지는 외피가 아니라, 사용 이후에도 생활 속에 남는 오브제로 설계했다.

 

축음기는 시간과 기억을 저장하는 상징이다. 디자이너는 그 익숙한 형상을 화장품 패키지에 이식함으로써 아름다움을 꾸미는 행위와 음악을 듣는 경험, 감정을 기록하는 시간을 하나의 서사로 연결한다. 투명한 상부와 층층이 구성된 서랍은 내용물을 보여주는 진열 기능을 수행하면서, 화장품을 소유하고 꺼내는 과정 자체를 작은 의식처럼 만든다. 여기서 소비자는 화장품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이 전시되는 방식과 음악이 흐르는 순간, 매일의 감정을 기록하는 경험까지 함께 소유한다. 패키지가 제품의 부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생활 장면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 역시 이 작품의 구매 매력을 강화한다.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한 투명 덮개, 재활용 목재와 폐가구를 활용한 서랍, 자연 분해가 가능한 식물 기반 내부 소재는 제품의 생애주기 전체를 고려한 설계를 보여준다. 사용이 끝난 뒤에도 수납 가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패키지를 보관할 이유를 제공한다. 과거의 친환경 패키지가 소비자에게 절제와 폐기를 요구했다면, 이 작품은 오래 갖고 싶은 마음이 곧 지속가능한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버리고 싶지 않다는 애착을 설계한 것이다.

 

 

 

기능보다 먼저 구매되는 것은 장면이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제품군에 속하지만 소비자의 욕망을 움직이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공통점을 보인다. Knife care는 위생 관리 기기를 가구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MINIX The Flender는 불쾌한 처리를 담당하는 기계를 감성적인 소형가전으로 바꾸었다. ZFA Growth Ring Cosmetic Packaging은 소모되는 포장을 기억과 취향을 담는 오브제로 확장했다.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발명하기보다, 기존 기능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다시 설계했다. 보이지 않는 위생은 정돈된 주방의 장면이 되었고, 음식물 처리는 공간의 자유를 만드는 생활 방식이 되었으며, 화장품 패키지는 시간과 감정을 보관하는 개인적 오브제가 되었다.

 

소비자행동 연구자인 홀브룩과 허시먼은 소비를 단순한 정보 처리와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만 보지 않았다. 이들은 소비 경험이 제품의 상징적 의미와 미적 감각, 그리고 “fantasies, feelings, and fun”의 추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Holbrook & Hirschman, 1982). 소비자는 제품이 수행하는 기능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며 경험하게 될 감정과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삶의 장면까지 함께 상상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이 드러난다. 오늘날 소비자는 기능만을 비교해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자신의 공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상이 어떤 장면으로 완성되는지를 함께 판단한다. 제품의 사양은 구매를 합리화하지만, 구매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감정과 상상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기능을 보기 좋은 형태로 감싸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소비자가 제품의 필요성을 자신의 생활 안에서 발견하도록 만드는 최초의 설득에 가깝다. 형태와 색상, 재질과 인터페이스는 모두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작동한다. “이 제품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왔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갖고 싶다’는 감정은 디자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에게 갖고 싶다고 하는 힘은 단순히 아름다운 외형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아름다움은 시선을 멈추게 할 수 있지만, 소유의 욕망은 제품과 자신의 삶이 연결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Knife care의 가구적인 외형은 정돈되고 위생적인 주방을 상상하게 한다. MINIX The Flender의 작은 크기와 부드러운 형태는 협소한 공간에서도 여유를 누리는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ZFA Growth Ring Cosmetic Packaging의 축음기 형상은 화장과 음악, 기억이 결합된 개인적인 시간을 그리게 한다. 세 작품 모두 제품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품 이후의 삶을 먼저 보여준다.

 

이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역량은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내는 발명가의 능력만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능을 소비자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 그것이 놓일 공간과 사용될 순간, 사용자가 느끼게 될 감정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조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좋은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이 제품은 우수하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이것이 나의 생활 속에 존재하기를 원한다”고 느끼게끔 한다. 필요와 욕망의 거리를 좁히고, 바라보는 행위를 소유의 상상으로 전환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디자인은 구매 행동을 만드는 실질적인 힘이 된다.

 

정리하자면, 현대 디자인에서 가장 강력한 발명은 이전에 없던 형태만이 아닐지 모른다. 이미 존재하던 사물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평범했던 기능 안에서 새로운 생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 소비자의 마음속에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장면을 발명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디자인이 만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새로움이며, 소비자에게 ‘갖고 싶다’고 말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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