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켓몬 정원의 인기가 한창이었다. 서울 숲 공원의 한구석을 차지한 이 포켓몬 정원은, 거대한 수목과 아기자기한 꽃과 함께 인기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를 체감할 수 있는 신선함으로 SNS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얼마전, 불꽃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가득했던 한강공원 역시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 곳곳에 배치된 휴게시설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을 만큼 유명한 공원이 되었다. 나아가 아파트 단지에 아름드리 나무가 속재되고 웅장한 폭포가 설치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처럼 현대의 조경은, 불과 5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 속 특별한 즐길 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조경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따지자면, 여전히 나무, 꽃, 잔디, 산책로 등 건물의 외부 공간을 꾸미는 요소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기도 하다. 도시에 식물을 심고, 길을 만들며 휴게시설을 설치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시각은 조경의 본질을 온전히 포착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우리의 고민은 ‘무엇을 심고 설치할 것인가’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 공간에서 사용자가 어떠한 경험을 영위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식물을 어떤 형태와 위상으로 배치할 것인가? 산책로를 내는 것이 사람의 통행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공간과 공간을 이으며 빛과 바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풍경을 제안하는 것인가? 나무 아래 있는 벤치에서 햇볕을 피할 것인가 혹은 시선이 머무는 곳의 의자에서 전망의 경험을 할 것인가? 즉, 조경의 본질은 사용자가 마주할 경험의 양상을 구상하는 데서 출발하며, 단순한 오브제의 배치를 넘어 사람과 자연, 그리고 건축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이다. 따라서 조경의 기점은 ‘사용자를 공간의 어느 위치에 위치하도록 할 것인가’ 로부터 비롯된다.

< K-디자인 어워드 2024 위너 수상작 - Slow Garden >
K-디자인 어워드수상작인 정원 ‘Slow Garden_사유원’ 은 이러한 고민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이다. 다양한 높이의 마운딩을 조성하고 그 사이로 유기적인 유선형 산책로를 계획함으로써, 사용자의 위치 변화에 따라 중첩되는 경관을 선사하고 다채로운 지각적 경험을 유도한다. 이 정원의 핵심은 화려한 조형미가 아니라 ‘사용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조망하는가’에 있다. 정원을 거니는 이들은 보행의 궤적에 따라 입체적으로 전개되는 수목의 풍경을 마주하고, 의자에 앉아 휴식하는 이들은 시선을 차단하는 마운딩의 높낮이 속에서 깊이 있는 위요감을 만끽한다. 조경가는 이 정원에서 어떤 감동과 행동이 일어날지를 생각하고 그 경험을 온전히 즐기도록 유도한다.
효과적인 공간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좋은 공간을 경험하고 나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아침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투영되던 순간, 산책 중 우연히 발견한 작은 연못, 아이와 함께 앉아 바라보던 나무, 그리고 비가 내린 후 젖은 돌 위에 반사되던 빛. 우리는 공간 전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서 경험한 몇 가지 장면들을 기억한다. 때문에 조경을 계획하는 일은 이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입구에 들어선 순간 공간의 첫인상은 무엇인가? 보행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선은 어디를 향하는가? 어느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어떠한 풍경을 드러내거나 감출 것인가? 결국 이 모든 질문은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으로 수렴된다.
“이 공간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선사하는가?”
조경 공간의 경험은 시간을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결에 위치한다. 건축은 완공되는 순간 하나의 형태를 갖지만, 조경의 경험은 그 물리적인 완성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 나무는 자라고 꽃은 피고 지며, 빛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사람들의 이용 방식 또한 변한다. 오늘 심은 작은 나무는 바람에 살랑이는 고즈넉한 경험을 주지만, 십년후의 같은 나무는 시원한 그늘아래 담소하는 경관을 연출한다. 따라서, 조경은 완성된 형태를 디자인하기 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할 공간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에 가깝고, 동시에 오늘의 아름다운 경관을 넘어 시간의 변화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험을 제안하는 선구적 행위에 가깝다. 디자이너의 의도에 사람의 기억이 축적되는 순간 조경은 ‘바깥 공간을 장식’하는 것을 넘어 ‘온전한 삶의 경험을 설계’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2025 수상작 - Ossuary Hall Prabha >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수상작인 일본의 <Ossuary Hall Prabha>에는 ‘Garden of Silence’라는 작은 정원이 있다. 소나무와 돌로 구성된 정원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고인을 기억하고 조용히 머무르는 경험을 위해 만들어졌다. 심사에서도 자연과 기억의 조화, 그리고 명상적인 공간 경험이 높게 평가됐다. 변하는 시간을 담아내는 동시에 시간의 변화를 무시할만한 극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앞서 설명한 조경의 본질을 온전하게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조경은 ‘외부 공간을 미적으로 꾸미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조경은 사람의 움직임을 만들고, 시선을 유도하고, 잠시 멈추어 혹은 조용이 걸으며 사람과 자연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시간의 변화와 함께 그 공간에는 사람의 경험이 쌓인다. 아이와 처음 걸었던 길, 매년 은은한 향기를 자랑하는 꽃 길, 이렇게 공간은 우리의 기억속에 하나의 풍경으로 남게 된다. 결국 조경은 ‘바깥의 장식’을 넘어 ’삶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로 귀결된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나무와 길이지만, 결국 디자인되는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