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포브랜드 최예나 대표
2025년 6월 11일, 중국 베이징의 한 경매장. 손바닥만 한 토끼 인형 하나가 2억 원에 낙찰됐다. 주인공은 '라부부’. 블랙핑크 리사가 명품 가방에 달고 다니면서 전 세계가 열광한 그 인형이다. 불과 한 달 전, 국내에서는 팝마트 매장 앞에 새벽부터 줄이 늘어섰다. 안전사고 우려로 오프라인 판매가 중단될 정도였다. 정가 2만 원짜리 키링이 리셀 시장에서 109만 원에 거래됐다. 사람들은 ‘품절 전에’, ‘남들이 있으니 나도 하나 있어야지’룰 위해 경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방에 하나씩 달고 있는 모습이 트렌디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리쎌러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그러나 2025년 10월. 라부부는 불과 몇개월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검색량은 7월 최고점에서 거의 '0'으로 떨어졌다. 100만 원을 호가하던 키링은 14만 원이 됐다. 당근마켓에서는 정가보다 싸게 팔아도 사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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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4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진짜 흥미로운 건 따로 있다. 당신의 회사 앞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는 두 개의 카페. 가격도 비슷하고, 커피 맛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 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고, 다른 한 곳은 한산하다. 며칠 지켜보다 호기심에 한산한 카페에 가봤다. 커피는 괜찮았다. 어쩌면 붐비는 카페보다 나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다음날 다시 줄 선 카페로 향한다. 왜일까?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라부부의 줄은 '계획된 희소성'이고, 카페의 줄은 '자연발생적 증거'다. 두 경우 모두 우리 뇌는 같은 결론을 내린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면, 틀릴 리 없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 의도치 않은 가장 뜨거운 군중심리 실험이 시작됐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길이 막히던 그 때, 한국의 MZ세대는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했다. 바로 골프였다. 당해2년간 MZ세대 골퍼가 115만 명으로 급증했다. 골프웨어 시장은 4조 6천억 원에서 6조 3천억 원으로 37% 성장했다. 인스타그램 '#골린이' 70만 건, '#골프웨어' 100만 건.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골프를 시작한 이유였다. ‘친구들이 다 하니까.’ ‘인스타에서 다들 골프 사진 올리니까.’ 골프관련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단숨에 새로운 브랜드들이 런칭됐다. 그것도 매우 많이. 그런데 2023년, 조용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창 잘나가던 브랜드들도 매출 성장세가 꺾이는 등 변화가 심상치 않다.’ 주말 그린피 35만 원, 클럽 세팅 400-500만 원. ‘남들이 하니까’ 시작했던 사람들이 ‘이걸 계속할 이유가 있나?’를 묻기 시작했다. 군중은 빠르게 모이지만, 흩어지는 것도 빠르다. 라부부가 4개월 만에 무너진 이유, 골프 열품이 식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진짜 욕망이 아니라 ‘남의 욕망’을 빌려온 선택은 지속되지 않는다.
‘남들이 하니까’는 얼마나 강력한가? ‘밴드왜건 효과’는 다수가 선택한 것을 따라가는 심리적 편향이다. 이 효과는 불확실성이 클수록 강력해진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생소한 제품을 구매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택을 안전한 지표로 삼는다. 골프 열풍은 이 메커니즘의 완벽한 사례였다. 처음에는 ‘코로나 시대의 안전한 야외 활동’이라는 합리적 이유로 시작됐다. 하지만 빠르게 ‘친구들이 다 하니까’, ‘인스타에서 다들 골프 사진 올리니까’로 변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서 '사회적 증거'는 가장 강력한 설득 원리 중 하나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을 때, 유사한 사람들이 선택했을 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선택했을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할까? ‘남들이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으면 안 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때문이다. 희소성이 욕망을 만들지만, 희소성이 깨지는 순간 욕망도 증발한다.
줄 선 카페로 다시 돌아가보자. 회사 앞 두 카페 중 한 곳이 붐비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어쩌면 정말로 커피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 혹은 처음 몇 명이 우연히 그곳을 선택하면서 시작된 눈덩이 효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줄의 길이가 곧 품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군중은 때로 옳고, 때로 틀리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순간,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저 군중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당신이 지금 줄을 서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건 내 선택인가, 아니면 남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