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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재단 김현선 이사장

<김현선디자인연구소>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디자인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한 가지 제품의 성공일까. 아름다운 형태와 편리한 기능, 성과로 완성되는 것일까. 아니면 디자인은 그보다 더 멀리 꿈꾸어야 하는가. 나는 오래전부터 디자인을 눈앞의 결과물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해 왔다. 의자 하나가 몸의 자세를 바꾸고, 표지판 하나가 낯선 도시에서 사람을 안심시킨다. 어떤 건축은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동선을 바꾸며, 어떤 정책은 수많은 시민의 일상을 다시 설계한다. 디자인은 사물을 만들지만 그 사물을 통해 행동과 관계, 때로는 시대의 생각까지 변화시킨다.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는 보이는 것보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칼럼의 제목을 ‘그너머의 디자인’이라 정했다. 여기서 ‘그너머’는 막연히 더 크고 새로운 세계를 뜻하지 않는다. 형태 너머의 사람, 기능 너머의 존엄, 기술 너머의 책임, 시장 너머의 문화, 오늘 너머의 미래를 바라보자는 뜻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유행을 평가하는 데 머물지 않고, 디자인이 사회와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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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아시아의 디자인으로 이어진다. 아시아의 디자인은 이제 세계의 흐름을 뒤따르는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절제와 여백, 자연과의 공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겹쳐 읽는 감각은 아시아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자산이다. 아시아라는 뿌리를 지우고 서구의 기준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감각과 지혜를 바탕으로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와 새로운 기준을 나누어야 한다. 아시아에서 시작하지만 아시아에 머물지 않는 것. 지역의 고유성이 인류가 공감할 보편적 가치로 확장되는 것. 이것이 아시아의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그너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시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디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문양을 표면에 붙이고 익숙한 상징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유산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전통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태도, 비워 둠으로써 가능성을 품는 여백, 관계를 중시하는 감각을 동시대의 기술과 산업, 도시와 생활 속에서 새롭게 구현해야 한다. 차이를 이국적인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류가 함께 마주한 문제에 답하는 보편적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국경을 넘기 전에 사람의 마음을 넘어야 한다. 익숙한 생각을 흔들고, 보이지 않던 존재를 보게 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해야 한다. 디자인이 세계로 간다는 것은 더 많은 나라에서 판매된다는 뜻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삶과 미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성은 지역성을 지울 때가 아니라, 가장 고유한 경험이 깊은 공감을 얻을 때 만들어질 것이다.

 

기술의 경계도 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빅데이터는 디자인의 도구와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디자인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앞서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얼마 빠른가보다 누구를 위한 속도인지, 더 편리한가보다 그 편리함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앞서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 것 역시 디자인의 역할이다. 시간의 경계도 넘어야 한다. 오늘 눈길을 끄는 디자인보다 십 년 뒤에도 의미를 지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지속가능성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일에만 있지 않다. 오래 보고 싶고, 고쳐 쓰고 싶으며, 다음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일도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다. 좋은 디자인은 물질의 수명뿐 아니라 기억의 수명까지 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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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DDP >

 

 

 

서울의 DDP를 바라볼 때도 나는 같은 생각을 한다. 건립 초기 낯섦과 논쟁의 대상이었던 건축은 시간이 흐르며 시민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이제 서울의 미래를 상징하는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당대의 상식을 넘어선 결단이 새로운 도시의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좋은 디자인은 처음부터 익숙한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낯섦을 감수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먼저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그 낯섦이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고, 시간이 지난 뒤 도시의 기억과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느냐이다.

 

그너머의 디자인은 결국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디자인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놓치고 있는가. 불편을 줄이는 데서 나아가 존엄을 높이는가. 장소의 기억과 문화의 결을 이어 가는가. 기술을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이끄는가. 자연과 다음 세대에 책임을 다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의미와 감동이 남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시대가 바뀌면 질문도 달라지고, 어제의 해답이 오늘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완성된 명사가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동사에 가깝다. 디자이너는 답을 선언하는 사람이기보다 더 나은 질문을 발견하고, 사회가 그 답을 함께 찾도록 가능성을 여는 사람이어야 한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도시와 건축, 예술과 산업, 기술과 환경, 오감을 통한 디자인, 일상의 사물까지 폭넓게 들여다보려 한다. 무엇이 새롭고 아름다운지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숨은 시대의 욕망과 사회의 변화를 읽을 것이다. 아시아의 디자인이 무엇을 간직해야 하며 무엇을 넘어야 하는지도 함께 묻고자 한다. 디자인의 끝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달라진 하루이며, 그것이 머문 도시의 새로운 기억이고,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가능성이다. 형태를 넘어 사람에게로, 기술을 넘어 존엄으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오늘을 넘어 미래로 가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그너머의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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