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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우 | 써니아일랜드 대표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노트 저자,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아버지는 키오스크를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신다. 스마트폰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이해하는 일도 크게 어렵지 않다. 아버지가 키오스크 앞에서 힘들어하는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노안이다. 수직 화면 앞에서 안경을 벗고, 몸을 움직이며 초점이 맞는 거리를 찾는다. 화면을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뒤에 기다리는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아버지는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심리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은 기계보다 사람에게 주문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문제는 적응 여부가 아니라 적응의 비용이다 노년층이 디지털 기기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사람은 필요해지면 배우고,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다만 누군가는 한 번에 이해하고, 누군가는 세 번 읽어야 한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사용자가 지불하는 시간과 노력은 서로 다르다.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즉시 활용하지만, 누군가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부터 배워야 한다. 기술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공공디자인은 기술의 속도와 사람의 속도 사이에 놓이는 완충장치여야 한다. 사람에게 빨리 적응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적응하는 동안에도 사회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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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공공디자인법은 연령, 성별, 장애 여부,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환경을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한다. 법에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디자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어린이가 먼저이고, 요양시설에서는 고령자와 돌봄 인력이 중요하다. 재난 안내체계에서는 아름다움보다 빠른 이해가 우선한다. 공공디자인에는 사업 목적에 따른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누구 를 먼저 살펴볼 것인가의 문제이지, 누구를 제외해도 되는가에 대한 허가가 아니다.

 

공공성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제공하려는 판단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공공디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정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인지 살펴봐야 한다. 어쩌면 불편을 겪은 사람이 말없이 이용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서 비장애인 천 명에게 만족도를 조사하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조사에 참여할 수조차 없었던 한 사람의 부재가 그 공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공공디자인의 가치는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숫자로만 계산할 수 없다. 점자안내판은 다수에게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기본적인 시설과 서비스를 동등하게 이용하도록 만드는 일은 부가적인 친절이 아니다. 그것은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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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제나 가장자리에서 발견된다 평균 신장과 평균 시력, 익숙한 언어와 보통의 보행속도를 기준으로 설계하면 사업은 빠르게 완성된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고, 노안이 있는 눈으로 화면을 보고, 아이의 높이에서 안내판을 바라보면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공공디자인의 부족함은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발견된다. 따라서 모두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빠질 가능성이 큰 사람을 살펴봐야 한다. 키오스크를 없애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큰 글씨와 충분한 대비, 화면 확대, 음성안내, 조작시간 연장과 도움 요청 기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모두가 적응하기 전까지는 대면 창구와 인적 지원도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멈추지 않으면서 사람을 기다리는 방법을 설계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다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디자인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모두’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대부분’에 머물 수는 없다. 모두를 위한 공공디자인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누가 빠졌는지 확인하고, 그 사람의 경험을 다시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이다. 아버지는 언젠가 키오스크에 더 자연스럽게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자신의 느린 속도와 흐릿해진 시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불편을 증명하기 전에 디자인이 먼저 그 차이를 알아봐야 한다. 좋은 공공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회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차이를 제공한다.  공공디자인이 모두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공의 영역에서 ‘대부분’이라는 말은 그 밖에 남겨진 누군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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