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2024년 봄, 일본 도쿄 패션의 심장부라 불리는 시부야 파르코(Parco) 백화점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백 명의 인파가 긴 줄을 늘어섰다.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럭셔리 하우스의 신상 출시일 풍경이 아니었다. 줄을 선 이들은 일본의 2030 세대였고,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한국에서 건너온 브랜드 '마뗑킴(Matin Kim)'의 팝업 스토어였다. 이날 마뗑킴은 오픈 3일 만에 매출 2억 4천만 원을 달성했으며, 단 12일간의 팝업 기간 동안 5억 원(약 3,700만 엔)이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리며 일본 패션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시부야점 오픈 나흘 만에는 누적 방문객 4,000명, 매출 3억 2,000만 원을 돌파하며 '오픈런' 행렬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장면은 단순한 팝업의 성공을 넘어 상징적이다. 불과 10년 전, 한국의 작은 블로그 마켓에서 시작된 옷 장사가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패션 시장의 '메인 스트림'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연 매출 10억 원에 불과했던 이 브랜드는 2022년 500억 원, 2023년 1,000억 원을 돌파했고, 2024년에는 1,5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리고 2025년, 마뗑킴은 매출 2,000억 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브랜드의 시작, 과연 어땠을까?
마뗑킴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본질은 지금의 거대 기업들과 달랐다. 브랜드명은 프랑스어로 아침을 뜻하는 'Matin'과 창업자 김다인 대표의 성 'Kim'을 합쳐 지어졌는데, 창업자 김다인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엘리트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2015년, 그녀는 블로그 마켓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마뗑킴의 핵심 경쟁력은 '날것의 소통'이었다. 김다인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샘플 제작 과정의 실패, 공장 사장님과의 실랑이, 배송 지연에 대한 솔직한 사과 등 브랜드의 '백스테이지'를 가감 없이 노출했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들이 완벽하게 세팅된 룩북 뒤에 숨어 신비주의를 고수할 때, 마뗑킴은 고객을 '친구'로 만들었다. 고객들은 단순히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쿨한 언니가 만든 옷"을 산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느꼈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고, 이 팬덤은 훗날 마뗑킴이 기업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플루언서 브랜드는 연 매출 100억 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사라지기 마련이다. 배송, CS, 재고 관리 등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마뗑킴 역시 폭발하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위기를 겪었지만, 2021년 2월 대명화학 산하의 브랜드 인큐베이터 '하고하우스(Hago Haus)'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운명을 바꿀 결단을 내린다. 하고하우스는 마뗑킴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부족한 '인프라'를 수혈했다. 창업자 김다인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팅과 마케팅(소통)에만 집중하고, 하고하우스는 물류, 배송, 백화점 입점 영업, 재무 관리 등 경영 전반을 맡는 철저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더해지자 브랜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고하우스의 네트워크를 통해 마뗑킴은 '더현대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등 주요 백화점의 핵심 위치를 차지했고, 더현대 서울 오픈 당시 일주일 만에 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오프라인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 파트너십을 기점으로 마뗑킴의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2020년 50억 원 수준이던 매출은 투자 유치 직후인 2022년 500억 원, 2023년 1,000억 원을 돌파하며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시스템이 갖춰지자 마뗑킴의 디자인 파워는 더욱 강력해졌다. 그들의 제품 전략은 명확했다.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Wearable), 결코 평범하지 않은(Edgy)' 옷을 만드는 것이다. 마뗑킴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일등 공신은 의류가 아닌 잡화였다. 굵직한 메탈 장식에 'Matin Kim' 로고가 무심하게 박힌 '아코디언 지갑'은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명품 지갑 못지않은 '입문템'으로 불리며 불티나게 팔렸다. 이와 함께 '로고 코팅 점퍼', '셔링 리본백' 등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으며 매출을 견인했다. 또한 마뗑킴은 여성복에 그치지 않고 남성 라인과 하이엔드 라인인 '킴마틴(KIMMATIN)'을 론칭하며 브랜드의 외연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전체 고객의 10% 수준이었던 남성 고객 비중은 20~30%까지 확대되었다.

2024년과 2025년, 마뗑킴은 '내수용 브랜드'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시장을 정조준했다. 일본에서의 팝업 스토어 성공을 발판으로 2024년 하반기부터 중화권 공략에 나섰다. 2024년 10월 홍콩에 첫 글로벌 단독 매장을 오픈했고, 이어 대만과 마카오에도 매장을 열었다. 홍콩 매장은 오픈 한 달 만에 매출 8억 원을 기록하며 현지에서의 인기를 증명했다. 향후 5년 이내에 아시아 권역을 중심으로 27개의 글로벌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또한 2025년 10월에는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인 아마존(Amazon) 미국 스토어에 공식 입점했다. 이는 오프라인 중심의 아시아 확장 전략과 달리, 온라인을 통해 북미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접점을 넓히려는 전략이다. 의류와 가방 등 60여 종의 제품을 선보이며 글로벌 인지도를 강화하고 있다.
마뗑킴의 위상은 국가적인 행사에서도 드러났는데, 패션 브랜드 최초로 '2025 APEC 정상회의'의 공식 협찬사로 선정되어 카드 지갑과 캔버스 백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는 마뗑킴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마뗑킴의 성공 스토리는 한국의 수많은 스몰 브랜드들에게 희망이자 동시에 무거운 과제를 던진다. 김다인 대표는 2023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브랜드는 홍정우 대표 체제 하에 하고하우스의 시스템 지원을 받으며 2024년 매출 1,500억 원, 2025년 2,000억 원 전망이라는 성장을 이어갔다.
이는 브랜드가 창업자의 개인기를 넘어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기업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한다. 만약 마뗑킴이 하고하우스와 손잡지 않고 독자 노선을 고집했다면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본과 시스템을 적시에 받아들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 유연함이 마뗑킴을 유니콘급 브랜드로 만들었다. 2026년 지금, 마뗑킴은 동대문의 작은 블로그 마켓에서 시작해 매출 2,000억 원을 바라보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다. K-패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현대적인 교과서라 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