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싸이드 시티 전우성 대표. 브랜딩 디렉터.
<마음을 움직이는 일>,<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핵심경험론> 저자
어느 날 문득 떠올린 비유가 있다. 바로 배와 물의 관계다. 배가 물 위에 뜨려면 단순히 물이 조금 고여 있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일정 깊이 이상 채워져야만 비로소 배가 부력을 얻고 움직일 수 있다. 더 많은 물이 채워지면 배는 더 안정적으로, 더 멀리,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이 단순한 원리는 브랜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브랜드라는 배가 고객의 마음이라는 바다 위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일정한 시간 동안 꾸준히 물을 부어야 한다. 초기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장의 반응이 생각보다 별로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직 물이 충분히 차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랜딩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한두 번의 광고, 몇 차례의 메시지만으로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특히 브랜딩 초반에는 이런 공허감이 크게 다가온다. 내부에서는 고민하고 실행하느라 고생했는데, 시장에서는 정작 기대한 반응이 크게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와 물의 비유로 생각하면 답은 뻔하다. 물이 채워지는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하는 작은 활동들―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 다양한 이벤트, 고객과의 소통 하나까지―모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반응은 없더라도 언젠가 수면이 차올라 배를 뜨게 만든다.
문제는 많은 브랜드들이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경영진은 조바심을 내고, 결국 브랜딩은 ‘효과 없는 비용’으로 치부된다. 예산은 줄고, 활동은 축소되고, 브랜드는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전에 멈춰 버린다. 반대로 시장에서 "브랜딩을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 브랜드를 보면, 그들이 특별한 비밀을 가진 게 아니다. 다만 초반에 당장 효과가 없어 보이는 순간을 견디며, 꾸준히 물을 채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방향성을 잡고, 그들만의 차별화된 가치 전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결과를 갈랐을 뿐이다.
배가 일정 수심을 얻어야 움직이듯, 브랜딩에서도 어느 순간 ‘전환점’이 찾아온다. 처음엔 거의 반응이 없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객들의 관심이 서서히 보이고, 이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반응이 늘어난다. 이 과정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흔히 말하는 J-커브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초반에는 아무리 해도 시장의 반응은 거의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브랜딩을 전개하게되면 활동들이 하나 둘 쌓이며 고객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전환점에 도달하게 되면, 브랜드는 일정 수준의 팬덤이 형성되고, 고객 인식 속에 자리잡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물론 이 전환점까지 가는 길이 문제다. 대개는 도착하기 전에 포기한다. 하지만 한 번 그 순간을 넘어가면, 브랜드는 전혀 다른 궤도로 올라가게 된다.

젠틀몬스터를 보자. 지금은 엄청난 글로벌 팬덤과 함께 브랜딩을 잘 하는 기업이지만, 그 곳이 처음부터 그렇게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초기부터 그들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필자는 그것을 정확히 안다. 그들도 초기에는 팬덤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꾸준히 자신이 얼마나 개성있고 남들과 다른 브랜드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에게 어필해 왔다. 당장에 매출에 영향을 주지 않는 활동도 그들은 정말 과감히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인지가 쌓이고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다양한 기회를 잡게 되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더 과감한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젠틀몬스터는 지금의 위상을 만들었다고 본다. 만약 젠틀몬스터 경영진이 초반의 브랜딩 활동의 효과를 보고, 이것이 매출에 당장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멈췄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지금의 젠틀몬스터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물론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지금과 같은 과감한 브랜드의 전개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관련해서 필자가 직접 경험했던 사례도 있다. 과거 29CM라는 커머스 플랫폼의 브랜딩을 맡았을 때,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다양한 브랜딩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처음엔 시장에서 거의 반응이 없었다. 일부 유저들이 반응해주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외부가 당장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만의 차별화된 브랜딩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콘텐츠부터 이벤트, 비주얼 등에 우리만의 차별화된 모습을 담았고 작은 디테일들 역시 놓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반응이 나타났다. 고객이 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미디어에서도 조금씩 우리를 주목했으며, 그러면서 점점 방문자가 올라가기 시작했고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을 타진해왔다. 여기에 용기를 얻고 우리는 더 과감하고 규모 있는 브랜딩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무엇을 하던 남들과 다르게 했다. 그러자 수 많은 팬층이 생겼고, 이후 스몰 브랜드뿐 아니라 누구나 아는 빅 브랜드들까지 자발적으로 입점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브랜드라는 배가 드디어 물 위에 떠오른 순간이었다. 꾸준함이 결국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짧은 기간 안에 매출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브랜딩을 단지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투자와 더 닮아 있다. 눈앞의 수익을 좇기보다 꾸준히 쌓아가야 장기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투자에서도 복리 효과가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듯,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전혀 티가 안 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가치로 돌아온다. 중요한 건 방향성과 꾸준함이다. 단기적 사고로는 "매출이 얼마나 늘었나"라는 질문만 나오지만, 브랜딩의 본질은 "얼마나 우리만의 인식을 만들고 그것의 지지층이 생겼나", "얼마나 특별한 자리매김을 했나"로 측정된다. 그것이 결국 브랜드를 오래 살아남게 만든다.
브랜딩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만 전하고 싶다. 물이 충분히 차야 배가 뜬다. 반응이 없더라도, 그건 아직 물이 채워지는 과정일 뿐이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결과에 조급해하지 말고, 브랜드만의 목소리를 흔들림 없이 전해라. 일관성과 꾸준함이 쌓이면 언젠가 반드시 전환점이 온다. 그 순간 브랜드라는 배는 한층 큰 바다로 나아가게 된다. 앞서 얘기한 것 처럼 브랜딩은 단기 비용이 아니라 장기 투자다. 그러니 브랜딩 담당자라면 이처럼 배와 물의 비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방향만 맞다면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브랜딩을 전개하기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의 브랜드는 어느새 팬층을 형성하고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