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S는 오랫동안 기술과 산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지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CES 2026에서 느껴진 변화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었다. 올해 CES를 관통한 키워드는 피지컬 AI, 플랫폼, 운영, 그리고 공간의 재정의였다. 전시의 중심은 더 이상 새로운 디바이스의 형태가 아니라, 기술이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환경을 전제로 진화하는가에 맞춰져 있었다. 특히 건축과 공간디자인 관점에서 주목할 점은, 기술이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로봇과 AI는 더 이상 장치에 머물지 않고, 건물과 도시에서 직접 활동하며 이동하고 판단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그 결과 CES 2026에서 제시된 공간 관련 흐름은 화려한 조형이나 미래적 이미지가 아니라, 플랫폼화된 공간 구조와 유연한 운영 체계, 인간과 기계의 공존 조건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 이미지 출처 : 영화 로보캅 >
CES 2026의 전시장은 더 이상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쇼룸’이 아니었다. 로봇은 이미 걷고 있었고, 인공지능은 말이 아니라 형태와 행동을 통해 공간을 작동시키며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번 CES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듣고 경험한 단어는 ‘생성(Generate)’이 아니라 ‘작동(Operate)’이었다. 전시장을 걷는 내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로보캅’과 ‘백 투 더 퓨처’ 속 미래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때의 미래는 늘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었다. 그러나 CES 2026에서 마주한 풍경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다. 영웅적인 로봇도, 극적인 연출도 없었지만, 로봇과 AI는 이미 우리의 일상과 산업 공간에 조용히 스며들어 작동하고 있었다. 물론 완성도가 높은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인상적이었다. 사람처럼 걷고 균형을 잡으며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은 기술의 현재 수준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전시를 거듭 볼수록 내 관심은 완성도 자체보다, 그 기술이 어떤 구조와 전제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는가로 이동했다.

< 이미지 출처 : 피지컬 AI >

< 이미지 출처 : 보스턴 다이나믹스 / 아틀라스 >
이번 CES에서 더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아틀라스’와 같은 고도화된 로봇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로봇을 하나의 완결된 대상이 아니라, 진화 가능한 구조로 인식하려는 사고 방식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모베드(MobED)’와 같은 플랫폼형 로봇이다. 모베드는 특정 기능에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사용자 요구에 따라 기능이 결합되고 확장될 수 있는 이동 기반 구조에 가깝다. 이미 삼성은 이 플랫폼 위에 생활 가전을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 이미지 출처 : 모베드 >
이는 ‘로봇 하나를 완성하는 것’보다, 어떤 기능과 시나리오가 얹힐 수 있는 기반을 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 점은 로봇이 점점 소비를 전제로 한 상품이 아니라, 연구 과정의 산물 혹은 미래를 가정한 실험적 제안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변화하는 환경과 예측 불가능한 사용자, 복합적인 공간 조건을 전제로 지속적으로 조정·확장될 수 있는 구조들이 주목받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건축과 공간 디자인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건축 역시 더 이상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다. 사용 방식과 운영 조건, 기술의 개입에 따라 계속해서 수정되고 해석되는 플랫폼적 공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흥미로웠지만, 솔직히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설렘과 동시에 서늘한 감정이 들었다. 결국 인간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을 스스로 찾아야 하며, 고유한 지식과 판단의 축적 없이 기존의 역할에 머문다면 많은 영역이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현실이 실감났다. 이 지점에서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피지컬 AI 시대의 설계자는 더 이상 ‘형태를 완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조건을 가정하고, 그 가능성을 실험하며 조정하는 개발자에 가깝다. 어떤 공간에서 로봇이 작동할 것인지, 인간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이 공간의 윤리와 존엄을 침식하지 않도록 어디에 경계를 설정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아시아의 건축 디자인에 중요한 과제를 던진다. 고밀도 구조와 산업·생활의 혼합, 빠른 기술 수용 속도는 아시아 도시를 피지컬 AI가 가장 먼저 실험되고 조정되는 공간으로 만든다. 아시아의 건축 디자인이 지켜야 할 전문성은 기술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그 기술을 공간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조율하며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플랫폼형 로봇이 그렇듯, 건축 역시 완성된 답이 아니라 열려 있는 구조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제 건축은 더 이상 ‘어떤 형태를 만들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어떤 가능성을 남겨둘 것인가, 그리고 그 가능성이 시간과 사용자, 기술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도록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피지컬 AI 시대의 좋은 디자인은 더 똑똑한 기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더 성숙한 질문과, 그 질문이 오래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질문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지금 이 시대 건축과 디자인이 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