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소리 김도영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K-디자인 어워드> 창설자
우리는 오랫동안 ‘큰 것이 강하다’는 통념에 익숙해져 왔다. 막대한 자본, 수 많은 직원, 그리고 글로벌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해도, 단단한 철학과 빠른 실행력을 갖춘 작은 브랜드가 오히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마이크로 브랜드(Microbrand)의 부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비즈니스와 디자인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마이크로 브랜드는 규모는 작지만 뚜렷한 정체성과 강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를 말한다. 광고비를 쓰지 않아도, 대기업의 배경을 갖추지 않아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통해 고객과 깊이 연결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들은 거대한 마케팅 캠페인보다 철학, 스토리, 고객 경험을 무기로 삼는다.
큰 회사는 자원은 많지만 속도가 느리다.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리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도 어렵다. 반면 작은 브랜드는 기민하다. 시장의 신호를 빠르게 읽고, 하루 만에도 수 차례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이러한 속도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오늘날 1인 스튜디오나 작은 브랜드도 AI 툴을 활용하면 대기업과 맞설 수 있다. 제안서, 기획서, 프로토타입, 마케팅 이미지. 과거라면 팀 단위로 일주일 이상 걸렸던 작업을, 이제는 하루 만에 해낼 수 있다. 생산성이 무기가 되면서, 작은 브랜드는 대기업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이며 고객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이미지 출처 오롤리데이 >
성공한 마이크로 브랜드로 국내에서는 ‘오롤리데이(oh, lolly day!)’가 좋은 예다. 창업자는 스스로 제작한 굿즈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며 브랜드를 시작했는데, “즐겁게 살자”라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모든 제품과 활동에 녹여냈다. 직원 규모는 크지 않지만, 뚜렷한 철학과 개성 덕분에 지금도 국내 대표 마이크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작은 브랜드가 고객과 어떻게 정서적 유대를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콘텐츠 분야에서는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MrBeast)’가 1인 채널로 출발했음에도, 개인의 철학과 확고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 최대 유튜브 채널로 성장하며 영향력을 쌓았다. 지금은 기업화되었지만, 브랜드의 핵심 자산은 여전히 개인의 캐릭터와 메시지다.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자본이나 인력의 크기가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브랜드일수록 창업자의 철학, 정체성,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힘이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
AI의 등장은 마이크로 브랜드에 오히려 기회다. 이제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만이 혁신을 주도하지 않는다. 1인 브랜드라도 AI를 활용하면 시장 조사, 브랜딩, 마케팅, 콘텐츠 제작을 대기업 못지않게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를 브랜드 철학과 어떻게 결합하느냐다. AI를 통해 생산성과 속도를 확보하고, 인간의 철학과 맥락을 결합할 수 있다면 작은 브랜드는 더욱 강력해진다. 즉, AI는 작은 브랜드가 '슈퍼 마이크로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다.
이제 브랜드의 크기는 성공의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작을수록 더 날렵하고, 더 진정성 있게 고객과 연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브랜드가 어떤 철학을 중심에 두고, 어떤 서사를 만들어내며, 고객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가 관건이다. 2008년 사이드 프로젝트로 출발한 디자인소리 미디어 역시 작은 시도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와 K-디자인 어워드를 운영하는 국제적 영향력의 미디어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늘 빠른 시도와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작은 브랜드가 큰 회사를 이기는 시대,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나의 작은 브랜드로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