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코파운드 Xinhong Yeh 디렉터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많은 B2B 기업들은 여전히 “우리는 산업적이고 기술적인 일을 하는데, 브랜딩이 정말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들은 뛰어난 기술력과 제품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브랜드 전략과 시각적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커뮤니케이션이 단편적으로 흩어지고, 정작 자신들이 가진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성장의 기회를 놓치곤 한다. 사실 브랜딩은 겉모습을 꾸미는 일이 아니다. 이는 기업 내부의 논리를 정리하고, 조직의 철학과 태도를 통일하며, 나아가 신뢰의 토대를 세우는 과정이다.
우리가 ULTITEC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는 이를 잘 보여준다. 보호복이라는 특수한 제품은 단순한 기능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품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현대 사회의 ‘갑옷’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하며, 우리는 ‘Act without Fear’라는 메시지를 도출했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제품이 제공하는 진정한 가치를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 브랜드의 의미는 이렇게 기능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사용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내러티브로 확장되어야 한다.


B2B의 본질적인 가치는 종종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외형이나 소비재와 같은 즉각적 매력보다는 기술적 강점과 장기적 신뢰 관계에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전달하는 일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전략적 번역과 다각도의 통합을 요구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스타일을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는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사이의 언어를 번역하는 동시에, 조직 내부 여러 부서의 관점을 하나로 묶는 통합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기술팀이 자신들의 혁신을 시장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돕고,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는 메시지와 비주얼 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단순히 ‘디자인’이 아니라 ‘브랜딩’이라는 구조적 작업이다.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같다. “브랜드가 어떻게 보여지고, 어떻게 이해되며, 어떻게 선택되는가?”이다. 진정한 브랜딩은 단기적인 화려함으로 주목을 끄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인지도와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장기적인 자산으로 발전한다.
전통적으로 B2B는 합리성과 숫자로만 설명되는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기업들은 성능, 스펙, 시스템으로 경쟁해왔지만, 실제로 비즈니스 관계를 움직이는 힘은 신뢰와 가치 공유에 있다. 감정적 연결과 지속 가능성은 점점 더 중요한 브랜드 자산이 되고 있다. 브랜드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어야 한다. 톤과 언어, 색채와 리듬 속에서 따뜻함과 전문성, 목적성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기업이 클라이언트와의 첫인상에서 신뢰를 쌓고,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문화적 결속을 강화하도록 돕는다.


PRORIL과의 협업은 이러한 접근을 잘 보여준다. 수중펌프라는 다소 차갑고 기술적인 분야에서, 그들은 수십 년간 팀워크와 협력의 가치를 축적해왔다. 우리는 이들의 DNA를 ‘Better Together’라는 메시지로 정리했고, 이를 메시지, 이미지, 톤, 리듬을 통해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구현했다. 기술 기업이라 하더라도 감성과 비전을 담아낼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것이 장기적인 경쟁력이 된다.
브랜딩은 결코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철학을 발견하고, 메시지를 정립하며, 조직 전반에 정체성을 심어내는 긴 여정이다. 디자인은 단순히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조직의 역량을 성장시키는 도구다. 우리는 기업이 단기적인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좇지 않고, 명확한 논리와 전략, 실용적인 창의성에 집중한다. 이러한 과정은 인내와 신뢰, 그리고 업계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B2B 브랜드가 안에서부터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함께 걸어가는 브랜드 파트너로 남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