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우리가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은 “예쁘다” “감각적이다” 같은 표현들이다. 그러나 산업디자인에서 형태는 단순한 감각적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제약과 판단 그리고 타협의 흔적이 남은 깊은 사고의 결과다. 형태는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남게 된 논리의 흔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디자인을 미적 언어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AI가 몇 초 만에 수천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오늘날 ‘예쁘다’는 감탄은 더 이상 희소한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왜 이렇게 생겼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형태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감상에 머무는 것은 디자인을 반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미래의 젊은 디자이너들일수록 형태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 숨은 논리의 뼈대를 읽어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산업디자인의 세계에서 형태는 언제나 타협의 산물이다. 디자이너가 단 하나의 선을 긋기 위해서도 수많은 조건이 고려된다. 재료의 물성, 인체공학적 사용성, 생산 공정의 효율성, 브랜드의 언어, 그리고 사용자의 무의식적 감정까지 디자인은 인간을 위한 활동이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이 복잡한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고 조율된 끝에 응축된 하나의 결과물이다.

< Image Credit : Transparent Speaker >
따라서 형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미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통해 그 이면의 사고 과정을 역추적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X-ray를 통해 인체의 구조를 읽어내듯 표면 아래 숨겨진 구조적 논리를 찾아내는 일과 같다. 디자이너가 형태를 분석할 때는 세 가지 층위를 함께 본다.

첫째는 기능적 논리다. 모든 형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후미등이 측면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시각적 강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측면 시인성을 확보해 안전을 높이고 공기 흐름을 조절해 연비를 개선하기 위한 기능적 결정이다. 곡선 하나 각도 하나에도 설계된 목적이 있다. 빠르게 발전한 AI는 이런 기능적 효율을 계산할 수 있지만 그 효율이 인간의 감각적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의 과정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바로 그 접점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둘째는 생산과 소재의 논리다. 디자인은 현실적 제약 위에 존재한다. 형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이 재료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디자인은 실패한 것이다. 제품의 모서리가 둥근 이유는 단순히 미적 선호 때문이 아니라 금형의 내구성과 사출의 효율성을 고려한 결과일 수 있다. 표면 질감과 두께, 반경은 모두 제조 기술의 한계와 비용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아름다움은 기술의 경계 안에서 작동한다. 디자이너는 이 제약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불가능한 형태를 억지로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 Image Credit : Bang & Olufsen >
셋째는 브랜드와 사용자의 논리다. 디자인은 기업의 정체성을 시각화하고 사용자의 감정을 예측하는 언어다. 브랜드가 일정한 형태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스타일링의 결과가 아니다. 단단하고 각진 형태를 고집하는 브랜드는 ‘신뢰’와 ‘견고함’을 강조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하는 브랜드는 ‘감성’과 ‘포용성’을 전달한다. 형태는 브랜드와 사용자 사이에서 오가는 비언어적 약속이며 디자이너는 그 약속의 문법을 설계하는 언어학자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층위, 즉 기능·생산·브랜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태는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그 설득력의 중심에는 언제나 ‘왜’라는 질문이 있다. AI는 형태를 계산할 수 있지만 그 형태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는 설명하지 못한다. AI의 결과물은 언제나 정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맥락이 빠져 있다. 디자인의 가치는 바로 이 해석의 층위에서 만들어진다.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종종 비핸스나 핀터레스트 같은 플랫폼에서 타인의 작업을 참고하며 시각적 결과물을 따라 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조형성에 대한 깊은 고민은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형태를 보지 말고 형태를 만든 이유를 보라.”
예쁜 형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드물다. 형태의 이유를 해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능을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그 형태가 사람의 감정과 문화, 윤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읽어내는 일이다. 디자인은 시각적 언어이자 사회적 언어다. 곡선은 온기를, 각은 결단을, 균형은 신뢰를 상징한다. 이처럼 형태의 논리는 인간의 감정 구조를 반영한다. 논리가 형태를 정당화하지만 감정이 그것을 사랑하게 만든다. 디자인의 힘은 이 두 세계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적인 형태를 제시하더라도 인간만이 그 형태에 감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더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바로 그 감정의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다. ‘예쁘다’를 넘어 ‘왜’를 묻는다는 것은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사고의 태도다. 형태를 해석하는 능력은 디자인을 이해하는 기술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형태에 담긴 결정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디자인을 보는 눈을 키운다는 것은 곧 사고의 깊이를 확장하는 일과 같다.
디자인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형태는 사고의 종착점이 아니라 사고의 기록이다. 디자이너가 형태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이 디자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 때 디자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 된다. AI는 형태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형태에 담긴 이유와 감정 그리고 그 사이의 인간성은 여전히 디자이너의 손끝에 남아 있다. 형태를 읽는다는 것은 곧 인간을 읽는 일이다. ‘예쁘다’는 감탄에서 ‘왜’를 묻는 순간 디자인은 이미지가 아니라 언어가 된다. 그리고 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 디자이너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