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얼마전 덴마크 코펜하겐이 들썩였다. 바로 한국의 걸그룹 블랙핑크의 북유럽 콘서트 투어가 있었던 것. 현지의 수 많은 젊은 세대가 열광했고 여러 매체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제 케데헌 (K-pop Demon Hunters) 과 같은 K 컬쳐의 신드롬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전세계의 K-pop, K-drama, K-movie 관심과 인기는 필자가 거주하던 북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K 신드롬의 중심에 서 있는 컨텐츠들을 살펴보니 한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 세상에 런칭(?) 된 아이돌은 노래와 춤은 기본이며 언어, 연기, 인터뷰, 소통방식까지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소속사는 각각의 영역을 전담하는 전문 트레이너와 협업해 그들을 훈련시키고 성장시킨다. 당연히 단시간에 완성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들이 인터뷰에서 연습생을 몇 년씩 지냈다는 이야기가 그 사실을 반증한다. 완벽한 완성을 위한 준비와 정비를 거듭하며 마침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이는 디자인 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접근으로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디자인도 치열한 ‘준비’가 필요하다. 본질에 충실한 기능, 쉬운 사용법, 트랜드가 반영된 컬러와 소재, 브랜드 아이덴티티, 친환경 요소, 패키징 등 제품 출시를 위해 준비 되어야 할 항목은 일일이 나열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느 분야라도 소홀히 한다면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기에 각 분야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디자이너, 기구 개발자, 오디오 엔지니어, 상품기획자, 마케터, 영업, 패키징 팀 등의 여러 팀이 모여 시간과 공력을 들이는 과정. 이는 앞서 말한 아이돌이 준비되어지는 그것과 일맥상통하다. 모든 분야가 완성도를 갖추며 준비되어졌을 때 비로소 세상에 빛을 보게 되는. 그런데 그 ‘준비’ 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여러 팀이 모여 협업하다 보니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인해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러니 준비만 하다가 빛을 못 보는 상품도 부지기수로 많을 수 밖에 없다. 마치 경쟁이 치열한 아이돌 시장이 그렇듯이.
브랜딩 + 스토리
기획사가 세상에 선보일 아이돌 그룹의 컨셉을 설계하고 구상하는 것, 바로 브랜딩 Branding 이다. 보이 그룹 vs 걸그룹, 곡 선정, 퍼포먼스 구성, 비주얼 컨셉, 타겟 연령대.. 이 모두가 브랜딩의 영역이다. 콘서트 현장을 보면 팬덤의 성격도 명확하다. 아이돌의 특별한 스토리에 열광하고 추종하는 이들이 팬이 되어 찾는 것이다. 이는 디자이너에게도 큰 도전이 되는 영역 중 하나다. 최초의 디자인 컨셉이 설계, 마케팅, 영업, 광고 등의 다양한 영역에 완벽하게 스며들도록 디렉팅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과정이 결코 녹녹치 않다. 예상치 못한 문제와 이슈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고, 타 부서 혹은 클라이언트와의 협업과 조율을 수 없이 반복해야만 한다. 결코 수월하지 않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 출시 과정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이끌었지만 별다른 이슈 없이 수월하게 출시된 제품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일관된 브랜딩 언어로 말하는 디자인은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덴마크의 가구 브랜드 몬타나 www.montanafurniture.com 는 일관된 메세지를 세련되게 전하는 영리한 브랜드의 좋은 예시다. 이미 북유럽에서도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것이 아닌 미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모듈화 방식의 가구 컨셉, 매년 트랜드를 연구해 반영한 감각적인 컬러 팔레트, 완벽에 가까운 마감처리 등은 그들의 브랜드를 일관되게 어필하고 있다. 특히 브랜드를 상징하는 컬러풀한 팔레트의 조합은 고유의 이름과 코드를 제공하며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경계를 넘나드는 다른 분야 디자이너들과의 협업도 브랜드 스토리를 이끄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일관되고 명확한 컨셉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없는 유연함에서 왔다고 말한다. 가구 브랜드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의 컨셉으로 진화했기 때문. 그렇기에 5년, 10년 뒤의 미래가 기대되는 브랜드다.
이제는 디자인
이렇듯 장고의 시간을 버티며 잘 정비되고 준비된 스토리텔링은 팬들의,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함 뒤에 숨은 치열한 준비를, 아름다운 뒤에 감춰진 세심한 배려들을.. 이제 한국 디자인의 미래에 주목할 때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준비 해 왔고, 치열하게 고민해왔으며, 우리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세상에 선보인 결과물은 이미 패션, 제품, 건축,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제 K 컨텐츠의 다음 바통을 K 디자인이 이어받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