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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매끄럽고 하얗고 이음새 하나 없는 미니멀리즘의 시대는 이제 서서히 저물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복잡한 기술을 디자인이라는 껍데기 속에 감춘 채 겉을 매끈한 플라스틱으로 덮어버린 형태를 세련됨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들은 그 매끄러움이 주는 매력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아래 숨겨진 비효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패션의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미니멀리즘의 시대를 지나 다시 맥시멀리즘으로 회귀하는 것일까. 요즘 산업디자인에서 자주 목격되는 변화다.

 

현재 디자인 씬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들을 떠올려보면 다이슨, 틴에이지 엔지니어링, 낫싱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의 작동 원리와 내부 구조를 더 이상 가리지 않고 오히려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끌어올린다. 회로 기판(PCB)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모터의 코일이나 나사 체결 부위를 하나의 표현 언어처럼 당당히 노출한다. 이제 엔지니어링 자체가 미학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는 디자이너에게 더 이상 껍데기만 씌우는 역할에 머물지 말라는 강력한 선언처럼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의 정답처럼 같은 미니멀함을 향해 달려가던 시대는 분명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취향은 점점 더 다층화되고 서로 다른 미학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태도와 표현이 드러나는 지금의 흐름은 더 넓은 스펙트럼을 바라보고 싶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반갑게 느껴진다.

 

 

 

숨기기의 미학, 그리고 그 종말

 

우리는 지난 20년간 애플이 주도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신화 속에 살아왔다. 아이폰과 맥북은 모든 복잡한 기술을 유니바디 안에 감춘 채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덜어냄은 곧 세련됨이었고 그것은 어느새 요즘 말로 ‘쿨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수많은 디자인 스튜디오와 교육기관 역시 애플의 미학을 하나의 정답처럼 추종하며 복잡한 구조를 매끄러운 껍데기로 덮는 것을 디자인의 최종 목표로 삼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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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Pro display XDR : 이미지 출처 애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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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Pro display XDR Teardown : 이미지 출처 iFixit >

 

 

 

하지만 이제 그 미니멀리즘의 대명사였던 애플조차 변하고 있다. 맥 스튜디오와 맥 프로의 디자인을 보자. 과거 애플이 열과 소음을 완벽히 숨기는 데 집중했다면 현재의 프로 라인업은 마치 성능을 드러내듯 거대한 통풍구와 히트싱크 구조를 외부로 노출한다. 이는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다. 내 구조 자체가 곧 성능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미의 귀환처럼 보인다. 애플은 더 이상 기술의 복잡성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성능에는 이 구조가 필요하다’는 논리 자체를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매우 상징적인 변화로 바라본다. 가장 완벽하게 숨기기를 추구해왔던 기업이 기술의 솔직함과 기능적 형태를 전면에 드러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사실은 껍데기 중심의 디자인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산업디자인은 본래 공학(Engineering)과 예술(Art)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디자이너의 역할은 엔지니어링이 끝난 뒤 투입되어 투박한 기계 부품 위에 그저 예쁜 포장지를 씌우는 스타일리스트로 축소되어 왔다. 이 방식은 디자인의 본질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고 결국 장식에 머무를 뿐이다. 우리가 7화에서 이야기했듯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기교는 이제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다. 내부 구조와 무관하게 외형만 번지르르하게 만드는 디자인은 기술적 기만에 가깝고 AI가 이룬 기술적 진보는 이러한 무의미한 디자인의 종말을 더욱 빠르게 앞당기고 있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예쁜 형태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구조와 논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며 그 투명성 속에서 비로소 신뢰와 동시대적인 미학을 발견한다.

 

 

 

엔지니어링을 모르는 디자이너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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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shG1Wet Floor Cleaner : 이미지 출처 다이슨 >

 

 

 

이 새로운 미학의 핵심에는 솔직함과 투명성이 있다. 다이슨의 디자인 철학을 떠올려보자. 그들의 투명한 먼지통과 원색의 사이클론 부품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다. 공기가 어떻게 흡입되고 먼지가 어떻게 분리되는지 기계적 작동 원리를 사용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함으로써 제품의 성능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이는 장식이 아닌 명백한 기능적 선택이며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가장 분명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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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dim n’ ting streek pak : 이미지 출처 Teenage Engineering >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의 전자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한 마감재를 덜어내고 노출된 나사와 날것의 스위치, 회로 기판을 그대로 드러내며 실험실 장비에 가까운 미학을 완성한다. 이것은 미완성의 결과가 아니라 모든 요소가 기능적 이유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당히 드러내는 또 다른 유형의 아름다움이다. 이는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외쳤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선언의 가장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부활이라 볼 수 있다. 엔지니어링이 충분히 설계되었다면 그것을 가리는 껍데기는 오히려 불필요한 군더더기다. 이제 최고의 디자인은 무엇을 더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공학적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무엇을 걷어낼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러한 엔지니어링의 미학이 디자이너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부를 모르면 외부도 디자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껍데기를 벗겨내는 디자인은 단순한 외관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내부 구조 자체가 곧 외관이 되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3D 툴에서 곡면을 다듬는 시간보다 엔지니어와 함께 부품의 배치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배터리의 위치, 모터의 방열 구조, PCB의 패턴과 흐름 같은 공학적 제약과 선택이 그대로 외관 디자인을 결정한다. 내부가 설득력 없는데 투명한 케이스를 씌울 수는 없다. 결국 공학적 논리를 읽어내고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미학적으로 설계할 수 없는 디자이너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역할마저 AI에게 넘겨주고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장식은 죄악(Ornament and Crime)”이라고 말했다. 2025년의 산업디자인 환경에서 이 선언은 더욱 강한 현실감을 갖는다. 화려한 렌더링과 불필요한 장식으로 기술의 본질을 가리는 행위는 이제 구시대의 유산처럼 느껴진다. 디자이너는 겉치레에만 집중하기보다 나사 하나와 전선 한 가닥의 배치에도 기능과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마인드를 갖출 때 AI를 비롯해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을 지닌 디자이너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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