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카카오톡은 15년 만의 대대적인 개편을 발표했다. 친구 탭은 피드형으로 바뀌었고, 숏폼 콘텐츠가 추가됐다. 프로필은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넘어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됐다. 카카오는 이를 두고 “카카오톡은 이제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AI 기반 슈퍼앱으로 진화한다”고 설명했다. 전략은 시기 적절하고 타당한 것처럼 보였다. 카카오톡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앱 중 하나라 할 수 있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이 앱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다만 우리가 이 앱에서 머무는 시간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지 않다.
카카오톡 입장에서 플랫폼으로서 다음 단계를 고민한다면, 콘텐츠를 붙이고 사용 시간을 늘리는 시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다른 글로벌 메신저들도 비슷한 방향을 시도해왔다. 문제는 결과였다. 업데이트 직후 앱스토어 평점은 빠르게 떨어졌고, 커뮤니티에는 업데이트를 막는 방법이 공유됐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캡처 이미지가 돌았고,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는 설정 방법이 일종의 팁처럼 확산됐다. 결국 일부 기능은 며칠 만에 되돌려졌다. 이러한 반응은 디자인의 미감이나 UI 복잡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디자인에 들어가기 전,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정의했는지가 그대로 노출된 사례에 가깝다.

같은 화면, 다른 전제
카카오가 바라본 카카오톡은 확장해야 할 플랫폼이었을 것이다. 카카오톡은 국민 앱이라 할 만큼 이미 네트워크 효과는 충분했고, 메신저라는 역할만으로는 더 큰 성장을 만들기 어려운 단계에 와 있었다. 이 시점에서 카카오톡을 ‘체류하는 공간’으로 넓히려는 판단은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 관점에서는 친구 목록이 단순한 연락처가 아니라 피드가 되는 것도, 프로필이 연락 정보가 아닌 개인 콘텐츠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디자인 역시 그 방향에 맞게 재구성됐다. 하지만 사용자가 실제로 쓰고 있던 카카오톡은 그와는 다른 성격의 도구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카카오톡은 필요할 때 열고, 빠르게 대화하고, 용건이 끝나면 바로 닫는 앱이다. 의도적으로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생활 속 여러 순간에 짧게 끼어드는 도구에 가깝다. 친구 목록 역시 SNS의 팔로우 관계가 아니다. 업무 연락처, 가족, 지인, 거래처, 한 번 연락했던 사람까지 시간의 층위가 다른 관계들이 한데 섞여 있다. 이 목록은 ‘보고 싶은 사람의 모음’이 아니라 ‘연락이 필요한 사람의 인프라’에 가깝다. 이 구조에서 모든 친구의 일상이 자동으로 보이는 피드는 불편한 기능이기 이전에, 이 서비스가 작동해온 방식과 맞지 않는 기능이 된다. 같은 피드형 UI라도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이 같은 경험을 만들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화면의 문제가 아니라, 그 화면이 놓인 서비스의 시간성과 사용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디자인 실무에서 이런 차이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선택에서 먼저 드러난다.
• 친구 목록을 리스트로 둘 것인가, 피드로 바꿀 것인가
• 프로필을 연락을 위한 정보로 둘 것인가, 일상을 드러내는 영역으로 확장할 것인가
• 사용자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겉으로 보면 모두 UI 선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비스를 어떤 도구로 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카카오톡 개편에서 생긴 충돌은 디자인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서비스를 바라보는 기준이 사용자와 달랐기 때문에 발생했다. 카카오는 메신저를 ‘들어갔다 나오는 도구’에서 ‘머무는 공간’ 쪽으로 옮기려 했고, 사용자는 여전히 기존의 방식으로 이 앱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차이는 색상이나 레이아웃을 더 다듬는다고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이 세련될수록, 그 어긋남은 더 또렷해진다.
디자이너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분명하다. 요구사항을 더 보기 좋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구가 어떤 사용 장면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실무에서는 보통 이런 질문이 먼저 나온다.
• 이 기능은 하루 중 어떤 순간에 쓰이게 되는가
• 사용자는 이 화면을 오래 보고 싶어 할까,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할까
• 이 변화는 사용 흐름을 줄여주는가, 아니면 늘리는가
이 질문들은 기획을 되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화면으로 넘어갈 때 생기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디자인 결과물은 언제나, 그 이전에 어떤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봤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관점이 어긋나면, 디자인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카카오톡 사례가 보여주는 건 단순하다. 아무리 전략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변화라도, 사용자가 오랫동안 쌓아온 사용 방식과 맞지 않으면, 디자인은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특히 일상 깊숙이 들어온 서비스일수록,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일보다, 기존 경험이 어떤 전제 위에서 작동해왔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사용자가 변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변화가 자신의 사용 맥락을 존중 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디자인은 사용자의 맥락과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살펴보는 것, 그러한 통합적 관점을 가지고 누구보다 실행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디자이너이다. 디자인을 하면서 항상 이 질문들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 우리는 이 서비스를 어떤 도구로 보고 있는가
• 그리고 사용자는 실제로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 두 문장이 크게 다르다면, 그 프로젝트의 가장 큰 리스크는 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은 화면에서 완성되지만, 방향은 그 이전에 이미 정해진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부분 사용자의 손이 아니라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누구보다 그 관점을 세심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