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형 |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생활 속 시각디자인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영하 30도에 밖으로 나간다고요?” 하얼빈 빙설제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먼저 갸우뚱하며 추위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겨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뜻한 실내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혹한의 추위를 뚫고 겨울축제로 향할까? 그 답은 ‘디자인’에 있다. 추위라는 자연의 장애물을 인간의 창조력으로 전복시키고, 겨울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경험의 무대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겨울축제가 가진 ‘디자인의 힘’이다.

< 이미지 출처 : 하얼빈 국제빙설제 >
영하 30도의 크리스마스 이브, 하얼빈에서
202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세계 3대 빙설제 중 하나인 하얼빈 국제빙설제(哈尔滨国际冰雪节)를 찾았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과연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축제장에 도착한 순간, 그런 걱정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얼음 조각전이 아니라, 완전히 설계된 ‘겨울 경험’의 세계였다. 1985년부터 시작된 하얼빈 국제빙설제는 매년 1월 5일경부터 2월 말까지 개최된다. 정식 개최는 1월이지만, 12월 말에는 이미 견학이 가능하다. 축제 기간 동안 하얼빈 시내 곳곳에 얼음 조각이 정렬되는데, 주요 테마가 되는 곳은 태양도 공원(太陽島公園), 자오린 공원(兆麟公園), 빙설대세계(冰雪大世界) 등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사람들로 가득한 콘서트 공연장이었다. 영하 30도의 야외에서 열리는 곳곳의 공연들과 열정적으로 환호하는 관중들이다. 하얼빈 빙설제는 단순히 ‘보는’ 축제가 아니라 ‘참여하는’ 축제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콘서트 공연장이 곳곳에 있으며, 겨울 스포츠, 시민 눈 조각 경연대회 등이 함께 진행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눈으로 만든 체험 조형물이었다. 거대한 눈 덩어리에 사람의 다양한 자세를 음각으로 파서 관람객들이 그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관람객들은 줄을 서서 자신만의 포즈로 사진을 찍었고, 그 순간 얼음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이는 관람객이 작품의 주체가 되는 참여형 디자인이었다.
얼음으로 만든 조형물은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의 자금성과 만리장성은 물론, 러시아의 크렘린궁과 건축물, 이집트 피라미드, 대형 부처님의 형상까지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가 얼음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말의 형태의 동물 조형물도 다양했고, 중국 전통 도자기의 섬세한 문양까지 얼음에 새겨져 있었다. 이는 하얼빈 빙설제가 국제적인 문화 행사임을 보여주는 시각적 전략이었다. 빙설대세계가 열리는 장소는 쑹화강(松花江)의 하천 부지로, 높이 40미터 정도의 탑을 중심으로 대규모 건축물이 전시된다. 밤이 되자 다채로운 형광등과 LED로 라이트 업된 얼음 조각들이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라이트 쇼였고, 관람객들은 그 속을 걸으며 몰입형 경험을 했다.

< 이미지 출처 : 화천 산천어축제 >
한국의 겨울축제, 참여와 논란 사이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겨울축제는 강원특별자치도의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와 ‘태백산 눈축제’다. 하얼빈의 웅장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축제들은 한국적 정서와 체험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2003년부터 개최된 화천 산천어축제는 2011년 CNN이 선정한 ‘겨울의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렸고, 2019년에는 184만 명이 방문하며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얼지 않는 인정, 녹지 않는 추억’이라는 슬로건 아래 산천어 얼음낚시, 맨손잡기, 눈썰매 등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몇 년 전 화천 산천어축제를 다녀온 경험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남겼다. 얼음낚시를 위해 새벽마다 산천어를 외부에서 사와서 얼음 붙은 강 밑에 넣는 방식은 자연 서식지보다는 관리된 체험 공간에 가깝다. 무게 200톤, 국내 양식 산천어의 90%가 이 축제를 위해 투입되며, 동물권 단체들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하얼빈과 비교할 때 한국 겨울축제의 특징이 명확히 드러난다. 하얼빈의 40미터 얼음 탑,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를 재현한 정교한 조형물, 통합된 조명 시스템은 ‘시각적 압도’에 중점을 둔다. 반면 화천은 얼음 조각광장과 한지로 만든 산천어 등, 얼음 미끄럼틀 등을 갖추고 있지만, 규모와 시각적 임팩트보다는 참여자의 직접 체험에 더 무게를 둔다. 다만 축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된 시각 언어를 더욱 강화한다면 체험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994년부터 시작된 태백산 눈축제는 또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매년 새로운 테마로 눈 조각을 전시하며, 하얼빈의 대규모 건축물과는 다른 접근을 택한다. 태백산의 자연 설경을 배경으로 한 중소 규모의 눈 조각들은 ‘자연과의 조화’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하얼빈이 인공의 극대화라면, 태백은 자연과의 공존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의 겨울축제는 ‘참여형 체험’에 강점을 두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접근성이 높지만, 시각적 스펙터클의 측면에서는 성장 여지가 있다. 하얼빈 방문객들이 압도적인 얼음 궁전 앞에서 감탄한다면, 화천 방문객들은 직접 산천어를 잡는 경험에서 만족을 얻는다. 두 접근 모두 가치가 있지만, 한국 축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체험과 시각적 디자인의 균형을 고민할 시점이다.

< 이미지 출처 : archdaily >
축제는 디자인의 결정체다
필자가 생각하는 지역 축제는 하나의 ‘디자인의 결정체’다. 모든 축제는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이 적용된다. 축제를 알리는 홍보 과정에서부터 디자인은 시작된다. 축제의 전체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간단한 배너와 현수막 디자인부터 로고, 색상, 타이포그래피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통합된 시각 언어를 만들어낸다. 하얼빈 빙설제의 아이덴티티는 ‘얼음’과 ‘빛’이다. 포스터와 홍보물은 푸른색과 하얀색을 기본으로 하며, 반짝이는 얼음의 질감을 그래픽으로 표현한다. 축제장 곳곳의 사인 시스템이 일관된 디자인 언어로 통일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어디에 있든 하얼빈 빙설제의 세계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화천 산천어축제의 아이덴티티는 ‘따뜻함’과 ‘정(情)’을 표방한다. 마스코트 ‘얼곰이’는 귀여운 캐릭터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주황색과 노란색의 주조색은 차가운 겨울에 온기를 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다만 하얼빈의 통합된 조명 시스템과 일관된 사인 시스템에 비해, 한국 축제는 체험 프로그램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어 전체적인 통일감을 더욱 강화할 여지가 있다. 태백산 눈축제는 ‘겨울왕국’을 콘셉트로 내세우며 매년 새로운 테마를 선정한다. 자연 설경을 배경으로 한 눈 조각은 하얼빈의 세계 랜드마크 재현이나 도자기 문양 조각과는 다른 방향성을 추구한다. 규모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정교함보다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이다. 다만 국제적 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조형물의 완성도와 스토리텔링의 깊이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굿즈에 담긴 추억의 디자인
축제에서 나오는 모든 굿즈(goods)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다. 그것은 축제의 경험을 물리적 형태로 담아내는 ‘추억의 디자인’이다. 하얼빈 빙설제의 굿즈 매장에서는 얼음 결정 모양의 키링, 빙등제 로고가 새겨진 텀블러, 미니어처 얼음 조형물 등을 판매한다. 이 상품들은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하얼빈의 추운 겨울밤을 상기시킨다. 화천 산천어축제의 굿즈는 더욱 다양하다. 산천어 인형, 산천어 프린트가 된 머그잔과 텀블러, 산천어 모양의 떡과 쿠키, ‘얼지 않는 인정, 녹지 않는 추억’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와 에코백이 인기다. 얼곰이 캐릭터 상품도 다양한 포즈로 제작된다. 태백산 눈축제의 굿즈는 눈 결정 모티프를 활용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눈송이 모양의 액세서리, 겨울왕국 테마의 스노우볼, 태백산 설경이 프린트된 엽서와 달력 등이 인기다. 축제를 다녀온 후 책상 위에 놓인 산천어 인형을 볼 때마다, 찬장에서 꺼낸 빙등제 머그잔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사람들은 그날의 경험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추억은 물건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이것이 바로 굿즈 디자인의 힘이다.

< 이미지 출처 : travelandleisure >
축제 디자인의 본질, 경험의 총체
하얼빈 빙설제와 한국의 겨울축제를 비교하며 깨달은 것은, 축제는 단순히 ‘무엇을 보여주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설계하는가’의 문제라는 점이다. 하얼빈은 ‘압도’의 경험을 디자인한다. 40미터 높이의 얼음 탑, 쑹화강 하천 부지를 가득 메운 대규모 건축물,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를 재현한 얼음 조각들. 방문객은 인간의 창조력이 만들어낸 거대한 스케일 앞에서 감탄하고, SNS에 올릴 인상적인 사진을 찍는다. 중국의 대륙적 기질과 ‘대국굴기(大國崛起, 대국의 부상)’를 향한 자신감이 얼음과 눈으로 표현된 것이다. 음악회, 영화제, 겨울 스포츠, 시민 눈 조각 경연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축제의 입체성을 더한다. 한국은 ‘참여’의 경험을 추구하며, 이는 하얼빈과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얼음구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고, 눈썰매를 타는 직접 체험에 중점을 둔다. ‘정(情)’과 ‘흥(興)’이라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담으려는 시도다.
하얼빈 방문객은 거대한 얼음 궁전 앞에서 시각적 압도감을 경험하고, 화천 방문객은 얼음낚시의 손맛과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을 추억한다. 두 축제는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한국 축제가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체험 프로그램의 우수성에 더해, 축제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적 완성도와 통합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성과 동물 복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디자인이 추위를 이긴다
겨울은 추운 계절이다. 하지만 잘 디자인된 축제는 추위를 자산으로 바꾼다. 얼음과 눈이라는 재료는 다른 계절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겨울만의 특권이다. 하얼빈은 이를 거대한 건축 예술로 승화시켰고, 한국은 이를 참여형 체험으로 풀어냈다. 각기 다른 접근이지만, 두 방향 모두 의미가 있다. 하얼빈은 세계인을 놀라게 하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냈고, 화천은 184만 명을 끌어모으는 ‘대중성’을 확보했으며, 태백은 30년 넘게 지속되는 ‘전통’을 쌓아왔다. CNN이 선정한 '겨울의 7대 불가사의'라는 타이틀이 증명하듯 한국 겨울축제도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다만 한국의 겨울축제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체험 프로그램의 우수성에 더해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화하고, 축제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된 시각 언어’를 구축하며, 지속 가능한 운영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하얼빈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규모가 아니라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경험의 디자인’이다. 한국 겨울축제의 미래는 체험과 디자인의 조화에 달려 있다. 참여의 즐거움과 시각적 감동, 지역 경제 활성화와 환경 윤리,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찾을 때, 비로소 세계 최고 수준의 축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