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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더넛츠 송창렬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대한민국광고대상> 심사위원

 

 

 


 

 

 

유기농은 비효율적이다. 수확량은 낮고, 비용은 높고, 인증은 까다롭고, 공급망은 복잡하다. 확장은 느리고 가격은 비싸다. 글로벌 식품 산업처럼 규모와 효율이 경쟁력인 시장에서 유기농은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유기농 제품’을 만든다. 그러나 ‘유기농 구조’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유럽 분유 리콜 사태는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문제는 위생이 아니었고, 품질관리 프로토콜의 부재도 아니었다. 문제는 구조였다. 글로벌 최적화를 위해 전문 원료를 단일 혹은 소수 공급업체에 집중시키고, 적시생산 시스템으로 재고를 최소화하며, 비용 효율을 극대화한 설계는 평상시에는 완벽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원료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그 효율은 곧 취약성이 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잘 설계된 효율’이 어떻게 ‘동시에 무너지는 구조’가 되는지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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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독일의 가족 기업 힙은 전혀 다른 궤적을 보여준다. 1899년에 설립된 힙은 1956년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유기농이 트렌드가 되기 훨씬 이전이다. 이 브랜드를 단순히 프리미엄 유기농 분유라고 정의하는 것은 부족하다. 힙분유는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는 회사가 아니라, 유기농 공급망을 설계한 회사다. 그리고 그 설계는 위기에서 갈린다. 힙분유는 유럽 전역 6,000개 이상의 인증 유기농 농가와 장기 계약을 맺고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토양을 관리하고, 재배 환경을 점검하며, 원료의 출처를 농장 단위까지 추적한다. 유기농 인증은 단순히 농약을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역 조달을 요구하고, 공급 경로를 투명하게 만들며, 이중 인증 구조를 통해 중복 검증을 강제한다. 이는 비용을 증가시키고 유연성을 제한한다. 공급업체를 쉽게 바꿀 수 없고, 생산을 단기간에 급격히 늘릴 수도 없다. 분명 비효율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비효율이 단일 장애점을 막는다.

 

글로벌 기업들은 전문 성분을 전 세계 몇 안 되는 대형 공급업체에서 조달한다. 규모의 경제와 일관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힙분유는 유기농 기준을 충족하는 지역 기반 공급망을 유지한다. 원료는 분산되고, 계약은 장기적이며, 인증은 중첩되어 있다. 이는 운영상의 우수성이라기보다 철학의 차이다. 비용을 줄일 것인가, 위험을 분산할 것인가. 단기 수익을 최적화할 것인가, 구조적 회복력을 설계할 것인가. 많은 브랜드가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패키지 전면에 올린다. 그러나 유기농은 마케팅 언어가 아니라 아키텍처다. 토양, 공기, 재배 환경, 계약 관계, 인증 구조, 재고 철학까지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진짜 유기농은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생태계에 가깝다. HiPP가 세계 최대 수준의 유기농 원료 가공 체계를 구축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원료를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원료가 자라는 조건을 설계한다.

 

이번 리콜은 브랜드가 무엇으로 증명되는지를 다시 묻는다. 광고는 평상시에 소비자를 설득한다. 그러나 위기는 브랜드의 구조를 드러낸다. 대기업은 규모와 유통력으로 신뢰를 쌓는다. 힙분유는 설계로 신뢰를 만든다. 가격이 15~30% 높다는 사실은 단순한 프리미엄 전략이 아니다. 그 가격에는 분산된 공급망, 장기 계약 농가, 중복 인증, 여유 재고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 가격은 보험료에 가깝다. 유기농은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진짜 유기농은 다르다. 그 비효율은 느림이 아니라 완충이고, 비용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이며, 철학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우리는 효율을 혁신이라 부르지만, 때로는 비효율이야말로 혁신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제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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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더 비싼가. 프리미엄 가격인가, 아니면 시스템 리스크인가. 브랜드는 결국 말이 아니라 구조로 증명된다. 그리고 구조는 위기에서 드러난다. 힙분유는 유기농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유기농 구조를 설계했다. 그 차이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 진짜 브랜딩은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광고는 메시지를 만들고, 디자인은 형태를 만들지만, 구조는 철학을 고정시킨다. 공급망, 의사결정 방식, 비용 철학, 리스크 감내 수준까지 포함한 전체 설계가 곧 브랜드다. 힙분유의 사례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효율을 설계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뢰를 설계하고 있는가.

  • Founder: Doyoung Kim
  •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454-86-0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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