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형 |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생활 속 시각디자인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지금 이 순간, 당신 주변의 디자인을 한번 살펴보라. 스마트폰 화면의 버튼 배치, 카페 의자의 높이, 지하철 승강장 바닥의 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속도. 이것들 중 ‘이건 디자인이구나’라고 의식하며 사용하는 것이 과연 몇 가지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야말로 그 디자인들이 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는 증거다. 좋은 디자인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삶 속에 조용히 녹아들어 우리의 행동을 이끌고, 감정을 안정시키며,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본질이다. 그리고 지금,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대적 가치로 재조명받고 있다.
문고리 하나에서 시작되는 철학
문고리 하나를 떠올려 보자. 둥근 손잡이와 레버형 손잡이, 둘의 차이는 얼핏 단순한 형태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 속에는 타인을 향한 배려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레버형 손잡이는 손의 힘이 약한 어린이, 노인, 장애인, 양손에 짐을 든 사람 모두가 팔꿈치 하나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다. 반면 둥근 손잡이는 충분한 쥐는 힘이 없으면 작동 자체가 어렵다. 누군가를 위한 설계인가, 아닌가. 이 단순한 질문 하나가 배려디자인의 유무를 가른다. 좋은 디자인은 언제나 ‘다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직후인 2000년, 《포천(Fortune)》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겉모습’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그건 디자인의 의미와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근간을 이루는 영혼이다. 그 영혼이 결국 여러 겹의 표면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겁니다.”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전에 나왔지만, AI가 일상을 재편하는 오늘날 그 의미는 더욱 깊고 넓게 울려 퍼진다.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외형이 아니라, 그 안에 새겨진 의도와 철학이다. 그리고 AI 시대일수록, 그 철학은 더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선 하나, 원 하나가 바꾸는 일상
타이베이 MRT(捷運)의 승강장 바닥에는 승·하차 유도선이 그려져 있다. 아무런 안내 방송도, 안내원의 손짓도 없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두 줄로 나뉘어 서고, 내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비운다. 말 한마디 없이 이루어지는 이 질서는 단순한 바닥 선 하나에서 출발한다. 강요 없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 명령이 아닌 환경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 등이 공공디자인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을 때, 뉴욕 브루클린 도미노 파크는 잔디밭 위에 노란 동그라미 원들을 간격을 두어 그려 넣었다. 경고 표지판도, 로프 차단선도 아닌 단순한 원 하나가 공원을 찾는 시민들을 자연스럽게 안전한 거리로 안내했다. 사람들은 원 안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원 밖의 거리는 자연스럽게 유지되었다. 동그라미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가 방역의 언어가 된 것이다. 규칙을 강제하지 않고 환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사회적 힘이다.
서울에도 조용하지만 강렬한 사례가 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시민들이 신호를 놓치고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한 경찰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보도블록에 LED 보행 신호등이 설치되었다. 위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발밑을 향한 시선에 맞추어 신호를 전달하는 이 발상은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먼저 관찰하고 환경을 그에 맞게 바꾼 전형적인 행동 중심 설계다. 사람을 탓하는 대신 환경을 바꾸는 것, 그것이 배려디자인이 취해야 할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AI 시대의 서비스 설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형태 — 어포던스 디자인
어포던스 디자인(Affordance Design)이란 사용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사물이나 화면의 형태·질감·색상만으로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행동 유도성’ 설계 방식이다. 튀어나온 손잡이는 ‘당기라’고 말하고, 파란색 밑줄 텍스트는 ‘클릭하라’고 속삭이며, 평평하고 수평한 면은 ‘물건을 올려놓으라’고 암시한다. 디자인이 말 대신 형태로 대화하는 것이다. 훌륭한 어포던스 디자인은 사용자로 하여금 ‘어떻게 쓰지?’라는 질문 자체를 떠올리지 않게 만든다. 처음 보는 제품인데도 손이 먼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면, 그것이 바로 어포던스가 완성된 순간이다.
일본의 산업 디자이너 나오토 후카사와(Naoto Fukasawa)는 이 개념을 생활 속 무의식의 언어로 승화시킨 세계적 대가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적 행동을 오랜 시간 관찰하며 디자인의 씨앗을 찾았다. 사람들이 우산을 세울 때 본능적으로 고정할 곳을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홈이 있는 우산꽂이를 설계했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홈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산 끝을 그곳에 꽂는다. 그는 또 어떤 물건에 끈이 달려 있으면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당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 환기팬의 줄을 당기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CD 플레이어를 디자인했다. 전원 버튼 하나 없이, 줄을 당기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기능이 형태 속에 완전히 녹아든 것이다.
그의 관찰은 더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외출 후 귀가한 사람이 열쇠와 지갑, 소지품을 자연스럽게 올려두는 행동에서 착안한 현관용 스탠드, 의자에 앉을 때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는 습관을 관찰해 밑면을 신발 모양으로 만든 가방 거치대, 우산 손잡이에 작은 홈을 파서 쇼핑백을 자연스럽게 걸 수 있도록 만든 우산까지 모두 사람의 행동을 먼저 읽고, 형태가 그 행동을 자연스럽게 완성해 주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그의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행동을 디자인이 완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철학은 AI 시대의 인터페이스 설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 유니버셜 디자인과 서비스 디자인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연령, 성별, 국적,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건축·환경·서비스를 설계하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특정 사용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전제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는 동시에 유아차를 미는 부모에게도, 캐리어를 끄는 여행자에게도, 자전거를 타는 시민에게도 편리하다. 좋은 유니버셜 디자인은 특정 집단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환경이 된다.
제주도에는 이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공공디자인 사례들이 다수 존재한다. 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위해 설계된 저상버스와 승강 보조 시스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판과 음성 안내 시스템은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동등한 이동권’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구도 이동에서 배제되지 않는 도시, 그것이 유니버셜 디자인이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서비스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주목할 사례가 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은 오래된 주거 밀집 지역으로, 골목이 어둡고 치안이 취약해 도시 슬럼화가 진행 중인 장소였다. 이곳에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한 서비스 디자인이 도입되었다. 전문가와 주민이 함께 지역을 모니터링하며 취약 지점을 발굴하고, 지킴이 캐릭터와 조명, 방범 센서를 골목 곳곳에 배치했다. 물리적 환경이 달라지자 주민들의 심리적 안전감도 함께 높아졌다. 디자인이 치안 인력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공간의 언어를 바꿔 범죄 심리를 사전에 억제하고 지역 공동체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살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서비스 디자인은 이처럼 보이는 결과물보다 그 뒤에 설계된 경험의 흐름 전체를 다룬다. 그리고 이 경험의 흐름을 설계하는 능력이야말로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시대,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이유
지금 전 세계의 테크 기업과 디자인 연구소들이 한 가지 공통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은 ‘더 화려한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더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다. AI가 진화할수록 디자인은 사용자의 시야에서 점점 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경험의 본질’이 채운다. 직접 메뉴를 찾고 버튼을 누르던 시대에서, AI가 사용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실행하는 ‘의도 기반 인터페이스(Intent-Based Interface)’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Zero UI’라 부른다. 화면도, 버튼도, 아이콘도 없이 사용자의 인지 부하를 완벽히 제거하고, 기계가 상황을 스스로 인지해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환경의 도래다. 음성 한마디, 시선의 방향, 손의 움직임만으로도 공간과 기기가 반응하는 세계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형태를 만드는 것’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것’으로 완전히 이동한다. 보이는 것이 줄어들수록, 보이지 않는 설계의 질이 경험의 전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시대에 디자인의 핵심 가치는 예쁜 화면이 아니라 ‘신뢰’다. AI가 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행한다는 믿음, 시스템이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감각, 기술이 나를 위해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디자인적 결정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경험이다. 사용자가 ‘이게 어떻게 작동하지?’라는 질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때, 그 경험은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최고의 기술과 UX는 사용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로 수렴된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배려디자인, 어포던스 디자인, 유니버셜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통찰이다. 인간의 행동을 먼저 관찰하고, 설명 없이도 작동하는 환경을 만들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설계를 추구하는 태도이다. 이 모든 철학이 AI 시대의 인터페이스 설계 원칙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 나오토 후카사와가 우산꽂이의 홈 하나에서 발견한 무의식의 언어는, 지금 AI가 사용자의 의도를 예측하는 알고리즘 설계로 확장되고 있다. 문고리의 형태에서 시작된 배려의 철학은, 지금 Zero UI 시대의 신뢰 기반 경험 설계로 진화하고 있다.

디자인의 세기,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곳
디자인의 역사는 시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왔다. 19세기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대량생산의 디자인이 주도했다. 같은 형태를 더 빠르고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제작 기술 중심의 교육이 핵심이었다. 디자인은 생산의 도구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자인은 경험하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을 표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바우하우스(Bauhaus)의 정신이 싹을 틔우고, 인간공학과 사용자 중심 설계가 등장하며 사람이 디자인의 중심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는 ‘통합 디자인(Integrated Design)’의 시대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거나 경험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목표가 되었다. 소통과 공감, 포용이 디자인의 언어가 되고, 배려디자인·공공디자인·어포던스 디자인·유니버셜 디자인·서비스 디자인·UI/UX 디자인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수렴한다. 그 방향은 결국 같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고, 작동하되 강요하지 않으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디자인. 그리고 AI가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오는 지금, 그 방향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가 디자인에게 요구하는 필연적 과제가 되고 있다.
가장 훌륭한 디자인은 결국 아무도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느끼지 못할 때 완성된다. 그것은 삶 속에 녹아든 배려이고, 공간에 새겨진 철학이며, 기술이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신뢰의 언어다. AI 시대가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인간을 이해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