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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 |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생활 속 시각디자인 저자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탱크가 국경을 넘고, 미사일이 도시를 강타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펜을 들었다. 포스터가 만들어지고, SNS에 공유되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우크라이나 국기, 평화의 비둘기, 무너진 건물, 눈물 흘리는 아이. 디자인은 전쟁의 참혹함을 세계에 알렸다. 중동에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테헤란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석유 시설이 불타고,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있는 곳에는 항상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도 있었고, 그 목소리를 시각화하는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전쟁은 디자인되고, 평화도 디자인된다

 

“디자인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과 사회에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저술가인 마쓰다 유키마사의 말이다. 디자인은 전쟁을 선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의 전쟁장관 허버트 키치너 원수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영국인은 그대를 원한다(Britons Want You)”라고 말하는 포스터가 등장했다. 1917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이 포스터는 엉클 샘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I Want You for U.S. Army”라는 문구와 함께 엉클 샘이 손가락으로 포스터를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디자인은 모병 포스터의 역사를 바꿨다. 간결한 메시지, 강렬한 시선, 직접적인 지시. 이 포스터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냈다. 디자인이 전쟁의 도구가 된 것이다. 이 포스터는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소련,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형태의 모병 포스터를 만들었다. 디자인은 국가를 초월해 전쟁을 선전하는 보편적 언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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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Z 마크의 등장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Z’ 마크가 등장했다. 러시아군 탱크와 군용 차량에 흰색으로 칠해진 ‘Z’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국제체조연맹 월드컵에서 러시아 선수가 유니폼에 ‘Z’ 표식을 부착한 채 시상대에 올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Z’는 단순한 알파벳이 아니라 전쟁을 지지하는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러시아 국영 미디어는 ‘Z’를 “승리를 위하여(Za Pobedu)”의 의미로 해석했다. 거리에는 ‘Z’ 마크가 새겨진 깃발이 나붙었고, 건물에 ‘Z’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디자인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디자인도 쏟아졌다. 파란색과 노란색 우크라이나 국기, 평화의 비둘기와 우크라이나 국기를 결합한 포스터, ‘Stand with Ukraine(우크라이나와 함께 서다)’ 슬로건.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무료로 포스터를 제작해 SNS에 공유했다. 디자인이 평화를 외치는 도구가 된 것이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디자인의 어두운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당은 갈고리 십자 모양의 ‘하켄크로이츠(卍)’를 당의 상징기호로 삼았다. 원래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용되던 이 기호는 나치에 의해 증오와 학살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붉은 바탕에 흰 원, 그 안의 검은 하켄크로이츠. 이 디자인은 강렬하고 단순하며 기억에 남았다. 나치는 이 상징을 국기, 군복, 완장, 건축물 곳곳에 사용했다. 시각적 일관성은 나치의 이념을 강화했고, 사람들의 무의식을 조작했다. 또한 나치는 유대인을 나타내는 '다윗의 별'을 쇼윈도에 그리거나 완장으로 강제 착용하게 하는 등 디자인을 차별과 박해의 도구로 사용했다. 상점에 붙은 노란 별, 팔에 찬 노란 완장. 디자인이 사람을 구분하고, 배제하고, 학살하는 첫 단계가 되었다.

 

 

 

색이 전쟁을 말한다

 

전쟁에서 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다. 공산주의 혁명의 ‘붉은색’, 나치 독일의 ‘검은색’, 평화의 ‘흰색’. 색은 이념을 담고, 감정을 전달하며, 사람들을 동원한다. 러시아 혁명의 붉은색은 핏빛이자 열기였다. 붉은 깃발, 붉은 별, 붉은 광장. 붉은색은 혁명과 공산주의를 상징했다. 나치 독일의 검은색은 공포와 권위였다. 검은 군복, 검은 SS 제복. 검은색은 절대 복종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국기의 파란색과 노란색은 하늘과 밀밭을 상징한다. 평화로운 농경 국가 우크라이나. 그 국기가 전쟁의 폐허 위에 펄럭일 때, 파란색과 노란색은 희망과 저항의 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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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책임, 평화의 메신저

 

전쟁은 정치가들이 결정하지만, 전쟁을 시각화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몫이다. 엉클 샘 포스터를 그린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는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보냈다. 그는 의도했을까? 자신의 포스터가 수만 명의 죽음에 기여할 것을 알았을까? 디자이너에게는 책임이 있다.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디자인할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이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움직였다. 무료 포스터를 만들어 공유했고, SNS 프로필 사진을 우크라이나 국기로 바꿨으며, ‘No War’ 캠페인을 진행했다. 디자인으로 전쟁에 반대한 것이다. 한국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도 디지털 포스터를 통해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 독도 문제, 동해 표기 등. 디지털 시대에 1명의 디자이너가 1,000명의 외교관을 능가할 수 있다. SNS에 올린 포스터 하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여론을 형성한다.

 

 

 

인류 역사, 전쟁 없는 시대는 없었다

 

슬픈 진실은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정복 전쟁, 중세 십자군 원정, 나폴레옹 전쟁,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시리아 내전, 그리고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긴장. 전쟁이 있는 곳에는 항상 전쟁을 선전하는 디자인이 있었다. 모병 포스터, 선전 포스터,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비, 적을 악마화하는 캐리커처. 디자인은 전쟁의 충실한 시녀였다. 하지만 동시에 평화를 외치는 디자인도 있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반전 운동가들은 엉클 샘을 패러디했다. 붕대를 감고 부상을 크게 당한 엉클 샘이 “I want out(나는 나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포스터. 전쟁을 선전하는 디자인을 전쟁에 반대하는 디자인으로 뒤집은 것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을 그린 작품이다. 왜곡된 인간과 동물, 비명과 고통으로 가득한 이 그림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란 전쟁, 그리고 우리의 선택

 

2026년 2월 28일, 미국이 이란을 폭격하면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동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테헤란의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민간인들이 대피소로 피신하며, 아이들이 울부짖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또다시 선택해야 한다. 전쟁을 선전하는 포스터를 만들 것인가, 평화를 외치는 포스터를 만들 것인가. 국가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양심의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 디자인은 중립적이지 않다. 디자인은 항상 누군가의 편에 선다. 전쟁의 편에 서거나, 평화의 편에 서거나. 권력의 편에 서거나, 민중의 편에 서거나. 증오의 편에 서거나, 사랑의 편에 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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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여, 평화의 메신저가 되어라

 

디자이너는 전쟁과 평화를 전달하는 메신저다. 포스터 하나, 로고 하나, 색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엉클 샘 포스터가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보냈듯이, 반전 포스터가 전쟁을 멈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디자인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파란색과 노란색 국기가 전 세계 건물을 덮었고, ‘Stand with Ukraine’ 슬로건이 모든 SNS를 장식했으며, 평화의 비둘기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했다. 디자인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21세기 디자이너의 사명이다. 전쟁은 정치가와 군인이 만들지만, 전쟁을 멈추는 것은 시민의 힘이고, 그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4년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수십만 명이 죽었으며,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그리고 2026년 2월 28일,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되었다.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포스터를 만들고, SNS에 공유하고, 평화를 외친다. 디자인으로 전쟁을 말하고, 디자인으로 평화를 외친다.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만든 포스터 하나가 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평화를 외칠 수 있다. 그 목소리가 전쟁을 멈출 수 있다. 디자인에는 죄가 없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는 책임이 있다.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디자인할 것인가. 전쟁의 편에 설 것인가, 평화의 편에 설 것인가. 역사는 기록한다. 누가 전쟁을 선전했고, 누가 평화를 외쳤는지. 엉클 샘 포스터를 그린 디자이너도, 반전 포스터를 그린 디자이너도 모두 역사에 남았다. 우리는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 디자인으로 전쟁을 말하되, 평화를 외치는 디자이너가 되자.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고,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의 사명이다.

  • Founder: Doyo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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