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훈 변리사
특허법인 하나 상표/디자인팀 파트너
"이 디자인, AI로 만들었는데 등록될까요?" 최근 디자인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려오는 질문이다. 생성형 AI가 스케치북과 모델링 툴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디자이너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시안을 프롬프트 하나로 뽑아낸다. 그러나 지식재산 이란 처음부터 '인간의 창작'을 전제로 설계된 건축물이다. 도구가 인간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 형태를 제안하기 시작한 순간, 이 건축물의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6년 7월, 지식재산처가 'AI를 활용해 창작한 디자인에 대한 출원가이드'를 배포했다. AI 활용 디자인에 대한 국내 최초의 공식 기준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AI를 활용해 창작한 디자인이라도 디자인보호법상 등록요건(신규성, 창작비용이성, 공업상 이용가능성 등)을 충족하면 등록이 가능하다.
- 지식재산처 AI활용 디자인 출원가이드 (2026. 7. 9.)
문은 열려 있다. 다만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한 열쇠는 여전히, 그리고 명확하게 '사람'에게 쥐어져 있다.

< AI 가 언젠가는 이러한 상상력을 구현할 수 있을까? | 50 manga chairs by nendo>
"의자 디자인을 만들어줘"는 창작이 아니다.
가이드의 심장은 '사람의 실질적 기여'라는 한 문장이다. 출원서의 창작자란에는 자연인만을 기재할 수 있고, AI 모델의 명칭을 적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원칙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경계선의 위치다. 가이드가 제시하는 대비는 선명하다. 디자인의 형상, 비율, 구성, 색채 등 '지배적 심미감'에 영향을 주는 구체적 지시어를 입력하며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개선해 나간 경우, 사람의 실질적 기여가 인정된다. 반면 "의자 디자인을 만들어줘"라는 포괄적 지시 한 줄을 던지고,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수정도 재구성도 없이 그대로 출원한 경우, 그 사람은 창작자가 아니다. 주문자일 뿐이다.
이 기준은 법적 판단인 동시에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창작이란 결과물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심미감을 '설계하는' 행위라는 것. 어떤 곡률이어야 하는지, 왜 그 비례여야 하는지, 이 색이 사용자에게 어떤 파동을 일으켜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주체만이 창작자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 AI는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도구일 뿐, 그 가능성 중 하나를 '가치'로 선택하고 벼려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시선이다. 프롬프트는 새로운 시대의 스케치다. 그러나 스케치가 한 줄의 주문(注文)에 그친다면, 그것은 펜을 든 것이 아니라 카탈로그를 넘긴 것에 불과하다.

< AI야 의자를 디자인해줘 | AI generated image by 필자 with Gemini >
과정이 곧 권리다: 기록하는 창작자
가이드가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두 번째 태도는 '기록'이다. 차후 사람의 “실질적 기여”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창작 의도, 사용한 AI 모델, 프롬프트 로그, 그리고 결과물을 선택하고 수정하고 재구성한 과정을 기록·보관할 것을 권고한다. 이전 화에서 우리는 브랜드의 '아우라'가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이 성장해온 배경과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았다. AI 시대의 디자인 권리도 정확히 같은 문법을 따른다. 완성된 이미지는 이제 누구나, 몇 초 만에 가질 수 있다. 그 순간 나의 디자인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수백 번의 프롬프트 수정, 기각된 시안들, 형상과 비례를 다듬어간 흔적이다.
역설적이게도 AI가 결과물을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시대에, 권리의 무게중심은 결과물에서 '과정의 서사'로 이동하고 있다. 프롬프트 로그는 단순한 백업 파일이 아니라, 창작의 저자(著者)가 나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도면이 된다. 한 가지 경고도 함께 새겨야 한다. 허위의 기재는 권리의 소멸로 돌아온다. 사람의 실질적 기여가 없음에도 창작자로 사람을 기재해 등록받은 디자인권은,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 무효가 될 수 있다. 껍데기만 갖춘 권리는 결국 벗겨진다는 것, 이 시리즈가 반복해서 확인해 온 명제가 여기서도 유효하다.

< 디자인의 기록 | Design Sketch – Carl liu >
AI의 함정: 신규성과 도면의 일관성
실무적으로 주의할 함정은 신규성이다. AI 서비스에 입력한 디자인 초안이나 제품 이미지가 해당 서비스의 학습데이터로 활용되어 외부에 공개되면, 정작 출원 시점에는 '이미 공지된 디자인'이 되어 거절될 수 있다. 내 손으로 입력한 스케치가 나의 출원을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되는 셈이다. 보안이 담보되지 않은 AI 툴에 미공개 시안을 던져 넣는 습관은, 이제 창작의 편의가 아니라 권리의 자해에 가깝다. 두번째로는 공업상 이용가능성이란 규정이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원근감과 조명, 배경 요소가 뒤섞여 있고, 정면도와 측면도 사이에서 형상과 비례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을 등록받기 위해 출원할 때에는 도면 간에 전체적인 형상이나 비례가 일관되지 않으면 '공업상 이용가능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럴듯한 렌더링 한 장은 디자인이 아니다. 여섯 개의 도면이 하나의 물품으로 구현이 가능할 때, 비로소 그것은 산업에 활용 가능한 '디자인'이 된다. AI의 이미지를 출원에 적합한 선과 면, 비례와 구성으로 다시 벼려내는 마지막 디테일은,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여기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 AI는 기존에 공개되었거나 이미 출원·등록된 디자인과 닮은 결과물을 아무렇지 않게 생성한다. 그러한 AI결과물을 사용하는 것의 책임은 온전히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에, AI로 생성된 디자인을 사용함에 있어 타인의 등록디자인을 확인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AI라는 도구를 쓰는 자의 최소한의 책무가 되었다.

< AI로 단순히 도면 생성시 불일치가 일어남 | AI Generated by 필자 with Gemini >
관점을 가진 자가 창작자로 남는다
이번 가이드를 규제의 언어로만 읽는다면 절반만 읽은 것이다. 행간에 담긴 메시지는 오히려 창작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 선언에 가깝다. AI가 형태를 무한히 공급하는 시대에, 등록요건이라는 관문은 '형태를 가진 자'와 '관점을 가진 자'를 구분하는 필터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도구는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연필이 CAD가 되었고, CAD가 프롬프트가 되었다. 그러나 어떤 심미감을 세상에 내놓을 것인지, 그 형태가 사용자와 어떤 관계를 맺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단 한 번도 도구의 몫이었던 적이 없다. 법이 보호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사람의 판단이다. 결국 프롬프트는 주문서가 아니라 설계도여야 한다. 수십 장의 시안 앞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기준, 그 기준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곧 창작자의 자격이 된다. 관점을 기록하고, 판단을 증명할 수 있는 디자이너에게 AI의 시대는 위협이 아니라 가장 넓은 캔버스다. 도구가 아무리 진화해도, 디자인의 저자는 형태를 결정한 사람의 이름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