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 스튜디오 창업노트 저자,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늘 있었지만, 홍대 앞 거리는 언제나 먼저 움직였다. 누군가 허락하지 않아도 음악이 흘렀고, 정해진 무대가 없어도 공연이 열렸으며, 젊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기 방식의 문화를 만들었다. 홍대는 계획된 문화공간이라기보다, 계획을 넘어서는 에너지로 만들어진 장소이다. 그런 홍대에 ‘레드로드’가 생겼다는 것은 단순히 길 하나를 정비했다는 뜻이 아니다. 흩어져 있던 거리의 에너지에 이름을 붙이고, 색을 입히고, 하나의 도시 경험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RED’라는 색을 통해 열정과 젊음, 활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홍대입구역 일대의 여러 장소를 하나의 관광 동선으로 묶었다는 점에서 레드로드는 분명 긍정적인 가능성을 가진 프로젝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공공디자인은 눈에 띄는 색을 입히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름을 붙이고, 바닥을 칠하고, 조형물을 세우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평가는 그 공간에서 시민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서로를 배려하게 되는가에서 시작된다. 거리의 브랜드가 만들어졌다면, 그 안에서 흡연자는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비흡연자는 어떻게 보호받는지, 공연을 보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충돌하지 않는지, 관광객은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레드로드의 시각 이미지는 강하다.

‘레드’라는 색은 즉각적이고, 관광지로서의 인지 효과도 분명하다. 그러나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그래픽 언어와 조형적 표현이 과연 홍대라는 장소의 복합성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흡사 캘리그래피처럼 날려 쓴 듯한 ‘레드로드’의 표현, 혹은 강력한 록 페스티벌을 연상시키는 ‘Red Road’의 이미지가 홍대의 자유로움과 젊음을 표현하려는 시도였을 수는 있다. 다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거리 브랜딩이라기보다 일시적 이벤트나 축제 장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디자인은 어느 정도 주관적인 영역이다. 누군가에게는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공공디자인에서 문제는 ‘좋다’와 ‘싫다’가 아니라, 그 표현이 장소의 맥락, 이용자의 행동, 장기적인 운영 기준과 얼마나 정합적인가이다. 홍대를 단순히 록, 버스킹, 청춘의 이미지로만 압축한 것은 아닌지. 홍대가 가진 독립출판, 시각예술, 클럽문화, 골목상권, 대학가, 관광상권, 지역주민의 일상까지 함께 고려했는지. 그리고 그런 복합성이 실제 디자인 언어와 운영 시스템 안에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묻고 싶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 중 하나는 흡연과 관련된 풍경이었다. 담배꽁초를 줄이기 위한 수거함이나 재떨이는 필요할 수 있다. 공공공간에서 흡연 행위를 무조건 외면할 수 없고, 현실적인 관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이해한다. 다만 재떨이나 담배꽁초 수거 장치가 거리의 주요 시각 요소처럼 인식되는 순간, 그 거리는 문화의 거리보다 흡연이 전제된 거리로 읽힐 위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시설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다. 그 시설이 어떤 위치에, 어떤 밀도로, 어떤 안내체계와 함께 놓여 있는가이다.
공공디자인의 관점에서 흡연 문제는 단속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 설계의 문제다. “피우지 마세요”라는 문구만으로는 시민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흡연이 가능한 공간과 불가능한 공간이 명확해야 하고, 비흡연자의 보행권이 보호되어야 하며, 담배꽁초를 버리는 장치가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통합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시민 스스로가 “이곳은 함께 쓰는 거리”라는 감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공공디자인이 시민의식을 높이는 방식이다. 레드로드가 가진 가장 큰 기회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본다. 홍대처럼 젊은 세대와 관광객이 밀집하는 공간에서, 흡연·쓰레기·소음·보행 질서·거리공연 관람 태도까지 하나의 공공문화로 제안할 수 있었다. 레드로드는 단순한 관광특화거리를 넘어 “즐기는 거리에도 품격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그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되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특정 담당자나 디자이너를 탓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공공디자인 사업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공공디자인을 결과물 중심으로 판단한다. 무엇을 설치했는지, 어떤 색을 썼는지, 사진이 잘 나오는지에 집중한다. 그러나 좋은 공공디자인은 결과물보다 과정과 운영에서 완성된다. 시민 의견은 어떻게 수렴되었는지, 지역 상인과 주민은 어떤 불편을 말했는지, 흡연·쓰레기·소음·야간 안전 같은 문제는 설계 초기에 어떻게 검토되었는지 설명될 때 비로소 공공디자인은 신뢰를 얻는다.
레드로드의 보완은 거창한 재시공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다. 우선 흡연과 담배꽁초 문제는 지정 흡연구역, 수거함, 바닥 안내, 다국어 사인, 야간 조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한다. 재떨이를 많이 두는 방식이 아니라, 흡연 행위가 거리 전체로 퍼지지 않도록 흐름을 유도해야 한다. 쓰레기 문제 역시 청소 인력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버리는 행위를 쉽게 만드는 디자인으로 접근해야 한다. 버스킹과 보행의 충돌도 공연 공간, 관람 공간, 이동 동선의 구분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레드로드의 문제는 “빨간색이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공공디자인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취향과 전문적 검토가 충분히 구분되고 있는가. 전문적인 검토와 시민의 경험 사이에 충분한 연결이 있었는가. 보기 좋은 거리와 실제로 작동하는 거리 사이의 차이를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가. 레드로드는 실패한 거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가능성이 큰 거리다. 홍대라는 강력한 장소 자산이 있고, 이미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문화와 관광을 연결하려는 행정의 의지도 읽힌다. 다만 가능성이 큰 만큼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 공공디자인은 도시의 표면을 장식하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행동과 관계를 조율하는 전문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화관광 정책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치적 환경이 바뀌더라도 이미 시민의 일상과 지역 상권 안에 자리 잡은 문화 자산은 정파적 시선으로 재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성과인가가 아니라, 시민에게 더 좋은 공간으로 남길 수 있는가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레드로드와 공공디자인은 결국 이 지점에서 만난다. 색으로 시작한 거리는 운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행정이 만든 브랜드는 시민의 행동으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공공디자인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도시를 함께 쓰는 사람들의 품격을 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