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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 |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생활 속 시각디자인 저자,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심사위원

 

 

 


 

 

 

완벽함을 거부하는 시대, ‘어글리 디자인’이 새로운 미학이 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균형 잡힌 비례, 정제된 색채, 세련된 타이포그래피가 ‘좋은 디자인’의 불문율처럼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공식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오히려 삐뚤고,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이 소비자들의 감성을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다. ‘못생긴 디자인’은 이미 단순한 유행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강력한 미학적 트렌드로 공고히 자리 잡았으며, 캐릭터·패션·식품·그래픽·인테리어 등 디자인 전 영역에 걸쳐 그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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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글러에서 라부부까지 : 못생긴 캐릭터들의 반란

 

오늘날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캐릭터 인형을 꼽으라면, 단연 ‘퍼글러(Fuggler)’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퍼글러는 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Funny Ugly Monster’의 줄임말로, 직역하면 ‘웃기게 못생긴 괴물’이다. 부리부리한 눈, 단추로 표현된 엉덩이, 비대칭적인 몸통, 그리고 무엇보다 섬뜩할 만큼 사실적인 이빨이 매력적으로 보이면서 이것이 바로 퍼글러가 세계 시장을 석권한 외형적 정체성이다.

 

퍼글러의 탄생 배경은 놀라울 만큼 소박하고 우연적이다. 영국의 루이스 맥게트릭(Louise McGettrick)은 성탄절 선물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상어 이빨 이미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 이빨을 인형에 붙이면 어떨까?’라는 엉뚱하고도 기발한 발상이 발단이 되어, 그녀는 가짜 이빨을 직접 구입한 뒤 집에서 손수 제작한 테디베어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듯 지극히 소박한 수공예 작업으로 탄생한 괴물 인형을 온라인 핸드메이드 플랫폼 Etsy에 올렸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퍼글러는 디자인마다 고유한 이름과 개성 있는 캐릭터 설정을 부여받아 ‘수집하는 재미’라는 강력한 소비 욕구를 자극하며, 오늘날 전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유명 연예인이 이를 소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적 인지도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퍼글러의 열풍과 함께 반드시 언급해야 할 캐릭터가 바로 ‘라부부(Labubu)’다. 날카로운 이빨과 기괴한 표정을 가진 이 캐릭터는 글로벌 셀럽들의 인증 사진을 타고 SNS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일부 한정판 제품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에 거래될 만큼 강렬한 소비 열풍을 일으켰다. 라부부의 성공은 ‘못생긴 것이 곧 희소하고 힙하다’는 MZ세대의 미적 감각이 글로벌 소비 시장에서 유효한 경제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사례로 기록된다.

 

국내에서는 ‘망그러진 곰’ 이 주목할 만한 사례로 부상하고 있다. 선명하지 않고 흐릿하게 번진 듯한 형태,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이 캐릭터는 그 이름처럼 ‘망가진’ 외모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 인스타그램 팔로워 42만 명 이상을 확보하였다. 2024년 5월에는 두산베어스와의 IP 콜라보레이션을 전개하며 다양한 MD 상품을 출시하는 등, 기업과의 협업 영역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적극 확장하고 있다. 이로써 ‘못생긴 캐릭터’는 단순한 팬덤의 소비재를 넘어, 강력한 IP(지식재산권)로서 비즈니스 생태계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여기에 크라잉(Crying) 캐릭터 계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눈물을 줄줄 흘리거나 과장되게 찡그린 표정의 캐릭터들이 카카오톡 이모티콘, 굿즈, SNS 스티커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못생기고 기괴해야 뜬다’는 현상은 이제 미디어가 공식적으로 진단할 만큼 뚜렷한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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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제품·그래픽·식품을 관통하는 ‘어글리 코드’

 

패션의 세계에서도 같은 흐름이 강하게 감지된다. 한때 ‘아재 신발’의 대명사로 조롱받던 ‘크록스(Crocs)’는 MZ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두툼하고 투박한 밑창, 기능성을 전면에 내세운 어글리한 형태미가 오히려 ‘힙함’의 상징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뉴발란스 530과 각종 어글리슈즈 역시 마찬가지다. 둔중한 실루엣과 촌스러운 색채 조합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스테디셀러로 공고히 자리매김하였다. 일부러 투박하고 거친 타이포그래피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의도적으로 어색한 색채 배합을 구사하는 브랜드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못생김’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 자산으로 삼는다.

 

패션 트렌드에서는 ‘그래니 시크(Granny Chic)’ 혹은 ‘그랜마 코어(Grandma Core)’ 라 불리는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낡고 촌스러운 카디건, 플로럴 패턴, 크고 두꺼운 안경테, 실용 위주의 투박한 핸드백이 MZ세대 패션 피플들에게 빈티지 감성의 세련된 아이템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이는 경제적 합리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가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어,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철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Y2K 레트로 트렌드 역시 이 맥락에서 독해된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원색적 팔레트, 픽셀 기반의 조악한 그래픽, 번쩍이는 메탈릭 소재, 지금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세련되었다 보기 어려운 서체들이 패션·제품·영상·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디지털 과잉의 시대에 아날로그적 불완전함이 선사하는 온기와 향수,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낭만적 재해석이 MZ세대의 감수성과 정확히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는 ‘무지개 보노보노 PPT’가 대표적 화제 사례로 꼽힌다. 조악한 워드아트 폰트, 무질서한 색채 배열, 절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레이아웃까지 이 모든 요소가 정제된 디자인 문법을 정면으로 역행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못생김’ 덕분에 폭발적인 화제성과 광범위한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이는 디자인의 미적 완성도보다 콘텐츠의 개성과 날것의 감각이 MZ세대에게 훨씬 강한 정서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나아가 SNS와 숏폼 콘텐츠 환경에서는 ‘의도적으로 못 만든 것처럼 보이는’ 영상과 디자인이 알고리즘 상위에 노출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완성도 높은 광고보다 거칠고 즉흥적인 핸드폰 촬영 영상이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식품·유통 분야에서도 어글리 코드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규격 외 채소, 즉 모양이 비뚤고 크기가 불균일한 ‘못난이 채소’ 를 전문으로 유통하는 플랫폼들이 MZ세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어글리어스(Uglys) 를 비롯한 농가직거래 못난이 채소 마켓은 ‘못난이’라는 키워드를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우며, 소량 구매·합리적 가격·친환경 소비라는 가치를 동시에 구현한다.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본질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이 흐름은 어글리 디자인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아 있으며, 미적 감각을 넘어 지속가능한 소비 철학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식품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일부러 삐뚤어진 손글씨체나 낡은 복사본처럼 보이는 인쇄 효과를 적용해 ‘수제’와 ‘진정성’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브랜드들이 증가하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 안에 있다.

 

 

 

새로운 미학의 언어 : 불완전함의 크리에이티비티

 

이 모든 현상의 저변에는 공통된 시대정신이 흐른다.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과잉 정보와 완벽하게 가공된 이미지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진정으로 끌리는 것은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감각,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미학, 그리고 주류 코드를 유쾌하게 전복하는 크리에이티비티다. 못생긴 디자인은 곧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정체성 선언이며, 기성 미학의 권위에 대한 유쾌한 저항이고, SNS에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바이럴 콘텐츠의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퍼글러, 라부부, 망그러진 곰, 크록스, 그래니 시크, Y2K 그래픽, 무지개 보노보노 PPT, 못난이 채소 플랫폼 등 다채로운 사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 바로, 디자인의 가치는 더 이상 미적 완성도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신선한 개념을 제안하는가, 얼마나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를 발현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진정성 있는 감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것이 지금 MZ세대가 디자인에 요구하는 핵심 기준이다.

 

못생긴 디자인은 결코 퇴행이 아니다. 그것은 완벽함이라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된,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미학적 언어다. 새로운 시대의 디자인 문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가리키는 나침반이 지금, 우리 일상의 가장 엉뚱한 자리에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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