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공공 디자인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다 보면 종종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유럽의 오래된 거리에서 마주했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공공 시설물들이 왜 어떤 도시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도시에서는 시작조차 어려운가에 대한 의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미감의 차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행정의 보수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을 섣부른 비판보다 서로가 디자인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로 바라보고 싶다. 디자인의 본질이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조율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라면 과연 한국의 도시들은 지금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틀린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의 방향 자체가 다른 것일까.

런던 뱅크사이드의 비스포크 벤치 : 파격적인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가 만들어내는 장소의 조화
< 이미지 출처 : Bankside London >
유럽의 선진 도시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자인의 독창성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태도였다. 그들에게 공공 디자인은 단순히 규정을 충족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도시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새로운 감각과 철학을 덧입히는 행위에 가깝다. 파격적인 형태와 예상 밖의 색채가 등장하더라도 행정은 그것을 위험 요소나 관리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장소의 활력과 도시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자산으로 받아들인다. 사회가 디자이너를 단순한 용역 수행자가 아닌 도시의 문화와 품격을 함께 만들어가는 전문가로 신뢰하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실제로 런던이나 파리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벤치와 조형물들은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다. 거칠게 노출된 금속의 질감이나 과감하게 비틀어진 형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색의 대비는 도시를 하나의 살아있는 전시 공간처럼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낯섦이 시민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고 방문객들에게는 오래 기억될 도시의 인상을 남긴다. 그곳에서 디자인은 규정을 지키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도시의 언어에 가깝다.
강남구 상가 간판 개선 사업: 규격화된 질서를 통해 구현된 시각적 정돈과 형태의 조화
< 이미지 출처 : Gangnam-gu Office >
반면 한국의 공공 디자인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통일성과 안정성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옥외광고물 정비 사업을 보면 그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거의 중구난방이었던 간판들은 하나의 가이드라인 아래 정돈되었고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심의 풍경은 이전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나 역시 디자이너로서 이러한 방향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높은 인구 밀도와 복잡한 도시 환경을 고려하면 한국형 공공 디자인의 체계성과 관리 중심 접근은 분명 현실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 없이 뒤섞여 있던 거리들을 하나의 질서 아래 정리하는 과정은 도시의 시각적 피로를 줄이고 시민들에게 안정감과 쾌적함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 정제된 서체와 규격화된 간판들은 거리의 흐름을 보다 명확하게 만든다. 이는 행정적 효율성을 넘어 도시라는 공공재를 관리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정돈된 질서 너머에 보이는 한국적 역동성
< 이미지 출처 : Reddit (r/SouthKoreaPics) >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늘 묘한 딜레마를 느낀다. 모든 것을 하나의 기준 안으로 정리해가는 과정 속에서 한국 도시 특유의 역동성과 동네마다 가지고 있던 고유한 개성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정돈된 신도시의 매끈한 풍경보다 오히려 오래된 간판과 빽빽한 골목,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는 거리에서 더 강한 한국적 인상을 받곤 한다.
우리에게는 지워야 할 대상으로 보이는 무질서한 요소들이 그들에게는 도시가 살아 숨 쉬는 증거이자 독특한 문화적 매력으로 읽히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순정'의 상태가 단순히 모든 것을 지우고 똑같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행정적 통제에 가깝다. 정돈이 주는 쾌적함은 가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가 가질 수 있는 우연성 그리고 고유한 미학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결국 공공 디자인의 역할은 모든 것을 규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공간들이 가진 저마다의 에너지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고유의 색을 낼 수 있도록 질서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 팔자란 결국 이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내는 운명이다. 최근 성수동이나 을지로 일대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희망적인 대안으로 읽혔다. 오래된 산업 구조와 낡은 흔적들을 완전히 지우기보다 현재의 감각과 공존시키려는 시도들이 서울을 더욱 흥미롭고 다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수동의 카페 거리: 낡은 공장 지대의 흔적과 현대적 감각의 결합
< 이미지 출처 : DKL Group Blog >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딜레마를 마주한다. 성수동이 성공하자 제2, 제3의 성수동을 표방하며 그 외형을 빠르게 복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붉은 벽돌과 노출 콘크리트가 공식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획일화된 유행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에서 오히려 한국적 디자인의 흥미로운 정체성을 발견한다. 과거의 것을 송두리째 없애고 새로 짓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유럽의 리노베이션 사례조차 우리식으로 빠르게 모방하고 응용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그 역동적인 기민함 말이다. 이러한 모방과 응용력은 지금의 한국을 만든 근거이자 독특한 디자인 언어이기도 하다.

영국 배터시 발전소 쇼핑센터 리노베이션 : 과거와 현대의 공존
< 이미지 출처 : Visit London >
그 나라의 도시를 보면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를 넘어 디자인 관점에서 그 나라 디자이너들의 성향까지도 유추해볼 수 있다. 일본 디자이너들의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이나 북유럽 특유의 인간 중심적인 감성이 그들의 도시 풍경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듯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빠르게 흡수해 우리만의 방식으로 변주해내는 지금 한국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모호한 질문 앞에 선뜻 답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가장 명확하고 실질적인 답변이 되어줄 것이다.
진정한 디자인의 완성은 유행하는 감각의 이식이 아닌, 지역이 가진 시간의 결을 존중하고 그 땅에 축적된 고유한 서사를 보호할 때 실현된다. 과거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벽돌 위에 현대적 미학이 얹히고 이질적 요소들이 어색함 없이 대화하며 공존하는 풍경. 이렇듯 과거를 역동적으로 재해석해내는 모습이야말로 내가 현장에서 목격하는 2026년 한국의 진면목이다. 이제는 단순한 공간의 정비를 넘어 풍성한 디자인 서사가 겹겹이 쌓인 한국만의 정체성을 담은 도시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