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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영 | 디자인소리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K-디자인 어워드> 파운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 관리를 생산성의 문제로 생각한다. 더 빨리 일하고,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며, 빈틈없이 하루를 채우는 것. 하지만 작은 브랜드를 오래 운영해본 사람일수록 알게 된다. 시간은 단순히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특히 1인 브랜드와 마이크로 스튜디오에게 시간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자본은 부족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한 번 소모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의 창작자는 대부분 자신의 시간을 과소평가한다. 작은 수정 요청 하나, 짧은 미팅 하나, 갑작스러운 연락 하나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그러나 이런 작은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하루의 리듬은 쉽게 무너진다. 문제는 업무량이 아니라 집중이 끊기는 빈도다. 실제로 창작자의 가장 큰 비용은 노동 시간이 아니라 몰입이 깨지는 순간에 발생한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하는 상태. 많은 작은 브랜드가 성장의 정체를 경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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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펜타그램 >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글로벌 디자인 그룹 펜타그램이다. Pentagram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중 하나지만, 운영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각 파트너 디자이너는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자신의 시간 구조를 매우 철저하게 관리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아니라, 가장 깊은 사고와 판단이 가능한 시간을 어떻게 보호하는가다. 미팅, 제작, 리서치, 리뷰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시간을 쉽게 침범당하지 않도록 설계한다. 결국 최고의 결과물은 더 많은 시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집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 AI 시대에는 시간 설계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과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이유가 생산 속도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AI는 초안을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콘텐츠 생산 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생산 속도가 빨라질수록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즉, 시간 설계는 단순히 일정을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을 지키기 위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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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K-디자인 어워드 >

 

 

 

아시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로 불리는 K-디자인 어워드 역시 시간 설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시상식 운영에서는 공개된 타임스케줄 기준으로 각 세부 일정이 3분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구조를 설계한다. 이는 단순히 행사를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한 운영 기술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태도 자체가 곧 브랜드의 신뢰와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는 세계 각국의 심사위원, 수상자,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누군가는 긴 비행 끝에 도착하고, 누군가는 촘촘한 일정 속에서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시상식의 작은 지연은 단순한 운영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 전체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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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K-디자인 어워드 >

 

 

 

그래서 K-디자인 어워드는 무대 연출, 수상 동선, 영상 길이, 발표 간격, 조명 전환, 심지어 사진 촬영 시간까지 초 단위로 계산해 운영한다. 모든 순서는 사전에 반복 리허설을 거치며, 예상 변수까지 포함해 흐름을 설계한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행사’보다 ‘끊기지 않는 리듬’이다. 실제로 좋은 시상식은 거대한 이벤트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매우 정교한 시간 설계 위에서 완성된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브랜드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시간을 단순히 소비되는 자원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브랜드 경험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일정이 정확하게 진행된다는 것은 단순히 운영이 깔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태도이며, 브랜드가 스스로의 기준을 얼마나 엄격하게 유지하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결국 시간 설계는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에 가깝다.

 

실제로 글로벌 작가이자 브랜드 전략가인 오스틴 클레온(Austin Kleon) 역시 자신의 작업 루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반복 가능한 리듬’을 강조한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고, 같은 방식으로 기록하며, 불필요한 일정과 외부 자극을 최소화한다. 창의성은 영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시간 구조 안에서 나온다는 철학이다. 이는 작은 브랜드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브랜드는 결국 창작자의 리듬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간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선순위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실제로는 반대다. 우선순위란 하지 않을 일을 결정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모든 요청에 응답하지 않고, 모든 기회를 잡지 않으며, 모든 플랫폼에 동시에 반응하지 않는 것. 이것이 브랜드의 시간을 지키는 방식이다.

 

작은 브랜드일수록 시간의 밀도가 중요하다. 대기업은 인력을 분산할 수 있지만, 1인 브랜드는 창작자의 집중력이 곧 브랜드의 생산성이다. 따라서 시간을 단순히 관리하려고 하기보다, 집중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간에는 오직 창작만 하고, 어떤 시간에는 운영만 처리하며, 어떤 시간에는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몰아서 처리하는 식의 구조가 필요하다. 시간에도 워크플로우가 존재하는 셈이다. 결국 시간 관리의 핵심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일에 가장 좋은 시간을 남겨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간 설계다. 좋은 브랜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창작자의 집중이 낭비되지 않도록 구조를 만든다.

 

슈퍼 마이크로 브랜드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 설계에 유리하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불필요한 보고 체계가 없으며, 바로 구조를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쁜 브랜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깊이 집중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브랜드는 결국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완성된다. 어떤 브랜드는 늘 바쁘지만 방향이 없고, 어떤 브랜드는 느려 보여도 꾸준히 축적된다. 그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시간 구조에서 나온다.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쉽게 흔들린다. 반대로 시간을 스스로 설계하기 시작하는 순간, 브랜드는 비로소 자신만의 리듬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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