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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혁 | ASIA DESIGN PRIZE 미디어 편집장

로컬브랜딩 전략 저자오컴스브랜딩 대표

 

 

 


 

 

 

이번 2026-2027년 아시아 디자인 트렌드 리포트의 분석 결과를 들여다보면, 빛은 더 이상 마감을 위한 보조 요소가 아님을 명확히 시사한다. 수많은 수상작들의 디자인 설명과 키워드는 빛이 이제 디자인의 1차 재료로 격상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공간 디자인과 분위기, 그리고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 리포트는 이 거대한 흐름을 'LUMINSCAPE'라는 단어로 명명하기로 했다. Luminous(빛나는 감각)와 Landscape(인공적 환경)가 결합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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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INSCAPE는 단순히 두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가 아니다. 빛나는 감각과 공간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이 단어는 새로운 디자인 재료의 탄생을 선언한다. 빛 자체를 조형 요소로 다루겠다는 태도, 건축과 공간을 구성하는 핵심 소재로 빛을 활용하려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겨 있다. 텍스트 분석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시한다. 공간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white’라는 단어는 전체 분석 텍스트 142,290개 가운데 911회 등장하며 최상위 빈도를 기록했다. 한국 수상작에서는 559회, 중국에서는 119회, 일본에서는 62회, 홍콩에서는 40회, 대만에서는 98회 나타났다. 하나의 단어가 주요 권역 모두에서 상위권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다. 여기서 흰색은 단순한 색채의 선택이 아니다. 흰색은 빛을 받아들이고, 반사하며, 드러내는 가장 근원적인 바탕(Canvas)으로 기능한다. 하얀 벽, 하얀 천장, 하얀 가구의 표면 위에서 빛은 사용자에게 의도된 감각을 연상시키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번 분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white'는 비어 있는 무색(無色)이 아니라, 빛을 가장 정확하게 온몸으로 받아내는 매질에 가깝다는 트렌드 분석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디자인은 빛을 1차 재료로 쓰기 시작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기술의 진보다. LED와 OLED, 정교한 광량 제어 기술, 자연광과 인공광의 통합 시스템, 시간에 따라 색온도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장치들이 일상화되면서 디자이너들은 비로소 빛을 마감 단계가 아닌 초기 설계 단계부터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는 이유의 절반에 불과하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디자인이 다루는 핵심 대상이 '사물'에서 '분위기'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물은 형태로 정의되지만, 분위기는 빛으로 정의된다. '분위기를 설계하는 디자인'의 시대에 빛이 최우선 재료로 부상하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여기에 또 다른 핵심 요인인 다변화된 '사용자의 시선'이 더해진다. 현대의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장면 안에 오랫동안 정지해 머무르지 않는다. 도시의 동선은 숨 가쁘게 흐르고, 우리의 시선 역시 단일한 사물에 고정되기보다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부유하듯 스쳐 지나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자인이 하나의 '장면(Scene)'을 구축한다는 것은, 결국 유동하는 시선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빛을 통해 공간의 '좌표'를 설정하는 작업과 같다. 한국 수상작 데이터에서 'visible', 'scene', 'side'와 같은 단어들이 최상위권에 포진한다는 사실은, 디자이너들이 사용자의 시각적 동선과 흐름 자체를 공간 설계의 핵심 변수로 상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빛은 그 무형의 흐름을 조각해 내는 가장 정교한 도구로 격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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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 OASIS, ASIA DESIGN PRIZE 2026 Design of the Year >

 

 

 

국가별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올해 ADP의 Design of the Year로 선정된 한국의 'PARK OASIS'는 LUMINSCAPE의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대변하는 사례다. 이 작품은 주거 단지, 공공 공원, 기업 브랜드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요소를 두 개의 동심원 구조 안에 통합한다. 여기서 동심원은 단순한 조형 장치가 아니라 공간의 동선과 시야, 사용자의 체류 경험을 조직하는 핵심 구조로 작동한다. 낮에는 자연광이 곡면을 따라 확산하며 공간의 개방성과 연속성을 강조하고, 저녁에는 인공 조명이 내부 면을 따라 그림자의 층위를 형성하며 보다 차분하고 밀도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공간에서 빛은 형태를 보완하는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공간의 방향성과 깊이,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하는 설계 요소다. PARK OASIS는 빛을 초기 설계 단계부터 핵심 재료로 다루며, 동시대 공간 디자인 안에서 LUMINSCAPE가 어떻게 완벽히 구현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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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town Foshan Begonia Exhibition Center,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중국의 'Greentown Foshan Begonia Exhibition Center'는 LUMINSCAPE가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넓은 실내 공간, 유려한 곡선 구조, 절제된 조명 연출을 결합해 하나의 거대하고 통합된 경험 환경을 직조해 낸다. 중국 수상작 데이터에서 'large', 'wall', 'scene'과 같은 단어가 동반 상승했다는 점은 웅장한 벽면과 넓은 내부를 기반으로 빛을 설계하는 방식이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았음을 방증한다. 다만 한국 사례가 비교적 정제된 체류 경험과 조용한 몰입을 중심에 둔다면, 중국은 압도적인 공간의 규모와 조명 연출을 무기로 보다 극적이고 적극적인 몰입 환경을 구축하며 다른 궤적을 그린다. 빛의 그라데이션 변화가 관람자의 감각을 단계적으로 고조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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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inimalists Cave,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

 

 

 

홍콩의 수상작 'The Minimalists Cave'는 또 다른 층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홍콩 수상작들의 텍스트 분석 결과, 'space'보다 'room'의 빈도가 높고 'interior'가 상위권에 위치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홍콩의 디자인이 넓은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제한된 '방(room)'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빛을 통해 깊이 있게 확장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음을 뜻한다. 절제된 광량은 사용자를 내밀한 사색의 차원으로 안내하며, 비좁은 공간은 빛의 호흡을 매개로 밀도 높게 응축된 감각으로 재해석된다. 협소한 물리적 면적이 빛이라는 1차 재료와 결합했을 때, 어떻게 더 깊고 넓은 경험적 차원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례다.

 

이러한 권역별 사례를 종합해 보면, LUMINSCAPE는 획일화된 표면적 트렌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의 LUMINSCAPE가 '장면을 직조하는 빛'이라면, 중국은 '몰입을 유도하는 빛', 그리고 홍콩은 '응축의 빛'이라 할 수 있다. 주요 권역 모두 'white'가 최상위 키워드로 도출되었으나, 그 하얀 바탕 위에서 빛이 투사해 내는 결과물은 철저히 지역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러한 흐름이 비단 공간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light wave' 사례처럼, 빛은 이제 제품과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며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light wave'는 빛의 파동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조형 언어로 치환하여, 빛이 제품의 형태감과 감성적 페르소나를 형성하는 근원적 재료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주변 광량에 반응해 표면 질감이 변하는 가전, 사용자의 생체 리듬에 동기화되는 디바이스 등은 모두 빛을 능동적인 조형 재료로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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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ght wav, ASIA DESIGN PRIZE 2026 Gold Winer >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흐름은 LUMINSCAPE가 '조명 디자인'이라는 별도의 영역을 서서히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조명은 공간 디자인 안에서도 독립된 전문 영역으로 여겨졌고, 공간 디자이너는 그 결과물을 인계받아 미세 조정하는 위치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LUMINSCAPE의 시대에는 이 경계가 점차 허물어진다. 공간 디자이너가 초기 스케치부터 빛을 구조의 축으로 상정해야 하며, 그래픽 디자이너는 하얀 표면 위의 타이포그래피가 빛 아래에서 어떻게 보여지는 것을 계산해야 한다. 디자인 직군 사이의 견고했던 경계가 부드럽게 용해되는 그 자리에, LUMINSCAPE는 새로운 공통의 언어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계의 주체인 디자이너 관점에서 요구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LUMINSCAPE의 시대에 디자이너는 두 가지 새로운 감각을 체화해야 한다. 첫째, 빛을 사후적으로 '추가(Add)'하는 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공간과 함께 '설계(Design)'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표면적인 밝기로서 빛을 단순히 '보는(See)' 것을 넘어, 그 이면의 공간적 맥락을 '읽어내는(Read)' 감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절대적인 광량의 제어를 아득히 넘어선다. 빛의 미세한 색온도와 질감, 그림자가 빚어내는 심연의 깊이, 나아가 빛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겨지는 여백과 침묵의 영역까지 총체적으로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하얀 바탕 위에 어떤 조형물을 덧댈 것인가"만을 묻지 않는다. "하얀 바탕 자체를 어떤 빛의 결로 호흡하게 만들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진정한 LUMINSCAPE는 바로 그 본질적인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발현된다. 그리고 이 시대적 질문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응답해 낸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해답이, 이번 ADP 2026 수상작들 곳곳에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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