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대학교 최종우 교수. ffd랩 디렉터
전) 영국 맥라렌 시니어 제품운송 디자이너, 로지텍MX 시리즈 제품 수석 디자이너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디자인 감각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아마도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고민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질문이 과거보다 훨씬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학생들은 역사상 가장 풍부한 시각적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있다. Pinterest에는 수많은 레퍼런스가 저장되고 Instagram에는 전 세계의 최신 트렌드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생성형 AI는 몇 초 만에 전문가 수준의 무드보드와 콘셉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데이터의 양만 놓고 본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과거보다 더 뛰어난 안목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고 있는 것일까.

안목은 이미지를 수집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 Image courtesy of Pinterest >
나는 AI나 Pinterest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해외 디자인 전문지를 어렵게 구하거나 전시를 찾아다녀야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들이 이제는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나 또한 현업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Pinteres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학생들은 이런 서비스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수백 개의 사례를 비교할 수 있고 AI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각화 할 수도 있다. 과거의 디자이너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준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늘 묘한 딜레마를 느낀다. 그렇게 많은 이미지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결과물은 종종 비슷한 분위기와 비슷한 언어를 공유한다. 세련되고 매끄럽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마치 수많은 레퍼런스의 평균값을 정교하게 계산해낸 결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대하는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미지를 보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본다는 것과 관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학생들이 레퍼런스를 수집하는 과정 자체를 학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안목은 저장된 이미지의 개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디자이너는 결과물을 소비하는 대신 해체한다. 멋진 제품을 보며 단순히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왜 이런 비례가 선택되었는지, 왜 이 재료가 사용되었는지, 왜 사용자는 이 제품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제조 공정과 엔지니어링 구조가 이러한 형태를 가능하게 만들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안목은 감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매일 손에 쥐는 지하철 손잡이도 디자이너에게는 질문의 대상이 된다. 왜 이 크기와 형태여야 했는지 묻는 순간 관찰은 시작된다.
< Image courtesy of Unsplash’s Pradamas Gifarry >
흥미로운 것은 많은 학생들이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무의식적으로 ‘정답’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Pinterest에서 가장 많이 저장된 이미지, 유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사례, AI가 제안하는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과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좋은 디자인의 공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우수한 사례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디자인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정답을 향해 수렴하는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때로는 기존의 정답을 의심하는 순간 새로운 관점이 시작되기도 한다. 안목이란 결국 좋은 답을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발견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과연 디자인의 눈은 디자인만 바라본다고 성장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비례감은 제품 디자인 사례집보다 고전 건축물에서 배울 수 있고, 여백의 아름다움은 UI 화면보다 미술관의 캔버스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기능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형태적 긴장감은 가구보다 항공기 엔진이나 로봇 공학의 정교한 메커니즘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디자인은 디자인 안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분야를 관찰하고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시선이 탄생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 낯선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자신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관점을 의심하는 자세가 안목을 성장시킨다.

복잡한 구조와 정교한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기능의 아름다움. 디자인의 영감은 종종 디자인 밖의 영역에서 발견된다.
< Image courtesy of Unsplash’s Luka Slapnicar >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학교 밖에서도 디자이너로 살아보라고 이야기한다. 주말에 걷는 성수동의 골목길, 무심코 지나치는 상점 간판의 서체, 카페의 조명과 동선, 지하철 손잡이의 두께와 재질, 노인들이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까지 세상의 모든 풍경은 디자인을 위한 거대한 리서치 필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질문했느냐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는 수많은 디자인적 의도와 타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숨어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는 과정이야말로 안목을 키우는 가장 현실적인 훈련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빛과 공간의 조화. 디자인의 영감은 예상치 못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 Photograph by the Author >
여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비평을 수용하는 능력이다. 학생들의 크리틱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의 시선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다. 디자이너는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인 동시에 끊임없이 해석당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유연함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안목을 성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좋은 디자이너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더 나은 관점을 발견하는 데 열린 태도를 보인다.
AI는 앞으로 더욱 똑똑해질 것이다. Pinterest에는 더 많은 이미지가 쌓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관찰할 것인지, 무엇에 호기심을 가질 것인지, 그리고 세상의 경험을 어떻게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로 번역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 디자이너의 몫이다. 결국 안목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수천 장의 이미지를 저장하는 것보다 하나의 사물을 깊게 관찰하는 태도에서 시작되고, 정답을 찾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습관 속에서 성장한다. 스크린 속 레퍼런스와 현실 세계의 경험이 만나고, 관찰과 질문, 비평과 수용이 반복되며 축적될 때 비로소 자신만의 시선이 만들어진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는 배우는 사람으로, 학교 밖에서는 세상을 해석하는 디자이너로 살아가길 바란다. 디자인의 눈은 강의실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디자인 툴을 배울 수 있고, AI를 활용해 멋진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안목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것은 정답을 따라간다고 얻어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향한 관심과 질문,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는 관찰의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디자인은 쉽지만 어렵고, 어렵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