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어 김주황 대표 (브만남)
<K-디자인 어워드> 심사위원
최근 공개된 제네시스 ‘GV90 네오룬’. 앞문과 뒷문이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열리면, 그 사이를 가로막던 차체의 고정 기둥 없이 실내가 넓게 드러난다. 차에 올라탄다기보다 잘 꾸며진 라운지에 들어서는 듯한 인상이다. 2024년 네오룬 콘셉트에서 보여줬던 아이디어가 2026년 8월 공개한 양산형으로 이어진 것이다.

< 앞뒤로 열리는 GV90 네오룬의 도어와 넓게 드러나는 실내 | 사진: Genesis >
차의 생김새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다. 제네시스는 GV90의 디자인을 한국의 달항아리와 연결한다. 눈에 띄는 장식을 더하기보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절제된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는 설명이다. 첨단 전기차가 보여주는 고급스러움의 출발점에 오래된 한국의 미감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 뿐만 아니라 제네시스는 해외에서도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2025년 전 세계 소매 판매는 22만1,482대였고, 미국에서는 전년보다 약 10% 늘어난 8만2,331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대 연간 실적을 기록했다. 2026년에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J.D. Power’가 신차 소유 첫 90일의 품질 경험을 평가하는 초기품질조사에서 전체 브랜드 2위에 올랐다.
고성능 영역으로도 발을 넓혔다. 2026년 1월에는 GV60 마그마를 한국에 출시했고,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같은 해 세계내구선수권 WEC에 출전하며 도로를 넘어 레이스 무대에서도 브랜드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0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열린 WEC 바르셀로나 6시간 레이스 예선에서는 출전 차량 두 대가 1위와 3위에 올랐다. 데뷔 첫해에 결승의 첫 번째 출발 자리인 ‘폴포지션’까지 확보한 것이다. 결승 우승과는 다르지만, 페라리와 토요타 등이 경쟁하는 무대에서 고성능의 가능성을 실제 기록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 2026 다보스 포럼에서 전시된 GV60 마그마와 GMR-001 하이퍼카 | 사진: Genesis >
해외 시승 영상에서도 독일차와 나란히 비교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개별 리뷰의 평가이지만, 제네시스가 익숙한 럭셔리 브랜드들과 함께 비교하고 선택할 대상으로 다뤄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제네시스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독립된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고급 세단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어떻게 여러 자동차와 전시장, 문화 공간, 이제는 경주차까지 아우르게 되었을까.
이 브랜드 시작, 과연 어땠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등장한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세단을 만나게 된다. 당시 제네시스는 현대가 고급차 시장에 도전하며 내놓은 차종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독립 브랜드를 검토했지만 금융위기 등의 영향으로 미뤄졌다는 것이 당시 출범을 취재한 연합뉴스의 설명이다. 독립 브랜드의 출범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15년 11월이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별도의 럭셔리 브랜드로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자동차를 떠나 다른 회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같은 회사의 기술과 자원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제시하는 이름과 기대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이때 모델의 계보도 정리됐다. 현대 제네시스 세단은 G80으로 이어졌고, 에쿠스 계보의 플래그십은 국내에서 EQ900, 해외에서는 G90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후 G70이 더해지면서 세단의 선택지도 넓어졌다. 지금의 제네시스 브랜드와 예전의 제네시스 차종이 헷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대의 차를 통해 알려진 이름을 여러 차가 공유하는 브랜드로 확장한 셈이다. 하지만 이름을 나눈다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가치까지 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2015년 출범 당시 국제 뉴스통신사 로이터(Reuters)는 저렴한 자동차로 알려진 현대가 고급 시장으로 올라서려 한다는 점을 짚었다. 회사에는 수익성을 높여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고객에게는 이미 벤츠와 BMW, 렉서스 같은 선택지가 있었다. 새로운 브랜드가 더 높은 가격을 받으려면 좋은 차라는 설명에 더해, 그 이름을 선택할 이유까지 만들어야 했다.
판매 현장에서도 독립은 간단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별도의 제네시스 판매망을 만드는 과정이 이어졌지만, 2019년 Cars.com의 취재 당시 320개 쇼룸은 여전히 기존 현대 딜러 시설의 일부였다. 자동차에는 새로운 브랜드의 이름이 붙어도 고객이 찾아가는 공간과 만나는 사람은 한 번에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이 대목은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자동차의 디자인과 성능은 회사가 직접 설계할 수 있지만, 차를 사러 갔을 때의 응대와 수리를 맡기는 과정까지 같은 기대를 충족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제네시스의 독립은 발표장의 새로운 로고만으로 끝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뒤 제네시스가 어떤 경험을 레이어링(Layering)해왔는지 살펴보면, 먼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 보인다. 루크 동커볼케와 이상엽처럼 글로벌 자동차 디자인을 경험한 인재들이 합류했고, 제네시스는 여러 모델에 이어지는 디자인 언어를 구체화했다. 2020년 공개한 G80의 설명에는 크레스트 그릴과 두 줄의 램프, 실내의 여백이 등장한다. 차의 종류가 달라도 제네시스로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 2020년 공개된 G80의 크레스트 그릴과 두 줄 램프 | 사진: Genesis >
브랜드를 관찰하는 입장에서 두 줄이라는 단순한 요소가 흥미롭다. 모든 고객이 모델 이름이나 엔진의 차이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멀리서 다가오는 차의 불빛만으로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다면, 그 반복되는 모습은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제네시스는 자신을 설명할 문장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을 일관되게 레이어링(Layering)해왔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책 ‘레이어링’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과정이다. 고객이 서로 다른 순간에 만난 경험들이 같은 인상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하나의 브랜드에 대한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그 얼굴이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은 상품군의 변화였다. 세단을 중심으로 출발했던 브랜드에 GV80과 GV70 같은 SUV가 더해졌다. SUV를 원하는 사람이 제네시스 안에서도 자기 생활에 맞는 차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회사 자료를 인용한 판매 집계를 보면 글로벌 연간 판매는 2020년 13만2,450대에서 2021년 20만1,415대로 커졌고, 2024년에는 22만9,532대가 됐다. SUV 확대와 함께 브랜드의 규모가 달라졌다는 흐름은 확인된다. 다만 그 증가를 특정 디자인이나 신차 하나의 효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자동차 밖에서 제네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도 만들어졌다. 2021년 문을 연 뉴욕의 제네시스 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차를 전시하는 공간에 한국의 차와 음식, 책과 문화를 경험하는 장소를 함께 구성했다. 차를 당장 구매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제네시스가 생각하는 생활과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접점이었다.

< 한국의 책과 문화를 소개하는 뉴욕 제네시스 하우스 내부 | 사진: Genesis >
이런 선택들을 함께 놓고 보면 달항아리 이야기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한국적 럭셔리는 자동차에 전통 문양을 붙이는 것으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간을 어떻게 비워두는지, 사람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게 하는지가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 제네시스는 자동차의 형태와 브랜드 공간에 같은 감각을 레이어링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제네시스는 세계 어디서나 인정받는 럭셔리 브랜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판매 자료를 보면 답은 조금 더 복잡하다. 도입에서 살펴본 미국의 성장과 달리, 2025년 유럽 판매는 현지 보도 기준 약 2,500대 규모였다. 유럽 진출이 더 늦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시장의 성과가 다른 시장에서 곧바로 반복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국도 계속 성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5년 국내 판매는 11만8,395대로 전년보다 9.4% 줄었다. 국내 기사들은 주력 모델의 노후화와 하이브리드 선택지의 부재 등을 과제로 지적했다. 익숙한 브랜드가 된 뒤에도 고객이 지금 원하는 상품을 계속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살펴본 마그마와 레이싱 진출을 오래된 레이싱 전통을 이미 갖췄다는 이야기로 볼 수는 없다. 이제 그 기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제품의 설명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기에서 버텼는지, 실패한 뒤 무엇을 바꿨는지 같은 시간을 통해서도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다. 모터스포츠는 제네시스가 도로 위의 경험에 도전과 성능의 이야기를 레이어링할 새로운 무대라고 볼 수 있다.
나도 GV90을 보기 위해 ‘제네시스 수지’를 찾아 직접 차를 보고 왔다. 미래적이고 기계적인 인상을 강조하는 자동차 디자인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제네시스가 한국의 역사와 미감에서 다음 방향을 찾는 모습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첨단 전기차의 형태를 고민하며 달항아리를 돌아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오래된 문화 안에서 앞으로도 자기다울 수 있는 모습을 발견하려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 방향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달항아리는 신차를 소개할 때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그 절제된 미감이 세대가 바뀌어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으로 이어지고, 실내에서는 편안한 소재와 쓰기 쉬운 조작 방식으로 느껴져야 한다. 브랜드가 말하는 한국적 환대 역시 전시장의 응대부터 정비 예약, 수리 과정의 안내까지 고객의 시간을 아끼는 경험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객이 만나는 여러 순간에 같은 약속을 지켜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에서 느낀 아름다움이 실제로 타는 편안함으로, 구매할 때의 기대가 오래 소유하는 신뢰로 이어질 때 제네시스라는 이름에도 더 선명한 기억이 남을 것이다. 디자인이 만든 첫인상을 품질과 서비스가 반복해서 확인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오래된 아름다움에서 미래의 자동차를 그려가는 제네시스가, 세계적인 명차로 우뚝 서기를 희망한다. 그 이름을 선택하는 이유가 우리의 자부심을 넘어, 세계의 고객들이 직접 경험하고 다시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