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영 | 디자인소리 대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K-디자인 어워드> 파운더
브랜드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 처음 사업을 시작한 창업자일까.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구성원일까. 아니면 브랜드를 선택하고 지지해 온 고객일까. 사업 초기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비교적 명확하다. 창업자가 이름을 짓고,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시간과 자본을 투입한다. 하지만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며, 고객과 협력사의 영향력도 커진다. 어느 순간 브랜드는 창업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브랜드는 분명 여러 사람의 기여로 성장한다. 뛰어난 구성원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전문가의 통찰이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기도 한다. 고객의 신뢰와 선택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브랜드도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브랜드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기여에는 정당한 인정과 보상이 따라야 하지만, 그것이 곧 브랜드 전체에 대한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작은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쉽게 흐려진다. 처음에는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시작한 협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한 이해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역할을 브랜드의 성과와 동일하게 생각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기여를 근거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기대한다. 반대로 창업자가 함께한 사람들의 노력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한쪽의 문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역할과 권한, 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을수록 브랜드는 불필요한 갈등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나는 2008년, 디자인소리 미디어를 시작했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좋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세상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2012년에는 K-디자인 어워드를 시작했고, 10년 전에는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를 출범시켰다. 디자인소리는 디자인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는 미디어로, K-디자인 어워드는 프리미엄 국제 디자인 어워드로,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는 디자이너의 성취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해 왔다. 세 브랜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심사위원과 협력사, 운영진과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의 전문성과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랜드가 성장한다는 것은 창업자 혼자 모든 일을 해내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힘을 모으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경험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브랜드의 규모와 영향력이 커지면서 역할과 권한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협력의 범위와 보상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고, 때로는 브랜드의 장기적인 방향보다 개별적인 이해관계가 앞서는 상황도 있었다. 처음에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반드시 브랜드를 위한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기여가 더 컸는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그 방향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외부 전문가의 의견은 존중해야 하지만 모든 의견을 따를 수는 없다. 협력자의 기여는 정당하게 인정해야 하지만, 개별적인 이해관계가 브랜드의 원칙보다 앞설 수는 없다. 무엇보다 브랜드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에는 그 결과를 책임질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면 창업자의 권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단지 브랜드를 먼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결정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창업자는 브랜드를 시작한 사람일 수 있지만, 그 사실만으로 언제나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감당할 책임도 함께 있어야 한다. 성과는 여러 사람과 나누면서 실패의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창업자라면, 그 권한 역시 신뢰받기 어렵다. 나는 브랜드의 진짜 주인을 판단할 때 법적인 소유권만큼이나 책임의 무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가장 오랫동안 브랜드의 미래를 고민하는가. 누가 어려운 순간에도 원칙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가.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마지막까지 남아 해결하는가. 브랜드를 소유한다는 것은 성과를 누릴 권리만 갖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여기서 고객의 역할도 중요하다. 창업자가 브랜드의 운영 방향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 브랜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브랜드의 약속이 진정한 가치를 갖는지는 결국 고객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다. 창업자가 아무리 좋은 철학을 이야기해도 고객이 그 가치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브랜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반대로 고객이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하고 반복해서 선택할 때, 창업자의 생각은 비로소 시장에서 의미를 얻는다. 따라서 브랜드에는 서로 다른 차원의 주인이 존재한다. 법적인 권리와 경영의 책임을 가진 사람이 있고, 브랜드의 가치를 실제로 경험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둘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창업자가 분명한 원칙과 책임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고객이 그 가치를 신뢰하며 선택할 때 브랜드는 성장한다. 브랜드의 운영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것과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마이크로 브랜드에서는 이러한 균형이 더욱 중요하다. 창업자의 생각과 판단이 브랜드의 정체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창업자의 결정 하나가 사업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를 흔들기도 한다. 그래서 창업자의 권한이 커질수록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의견을 듣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협력하되 원칙을 잃지 않으며,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세 개의 브랜드가 각자의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더 명확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운영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더 무거운 책임을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의 협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만 그 협력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브랜드의 원칙을 공유하는 관계여야 한다.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창업자는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 브랜드의 성과는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만,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과 그에 따른 최종적인 경영 책임은 분명해야 한다. 책임의 주체가 명확할 때 협력도 건강해지고, 브랜드가 지켜야 할 가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브랜드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 이 질문에 단순히 창업자라고 답하고 싶지는 않다. 브랜드는 창업자의 결심으로 시작되지만, 수많은 사람의 기여와 고객의 신뢰를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다만 브랜드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는 그 선택의 결과를 끝까지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의 주인이라는 말은 권리를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